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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계획하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키르기스스탄 여행자를 위한 조언

by 미나리즘


키르기스스탄 여행.
계획한 것도 없지만, 계획대로 된 것도 없다.


지르갈란. 대부분의 여행자는 카라콜에서 첫 차를 타고 넘어와 반나절 트레킹을 즐긴 뒤, 막차를 타고 돌아간다. 그러나 직접 가본 그곳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도 아쉬운 풍경이었다.


푸른 초원과 언덕의 펼처진 지르갈란


평소, 오래 머문 만큼 오래 남는다는 우리만의 여행 철학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 2박 3일을 지냈다. 무엇보다 그곳의 B&B가 마음에 쏙 들었기에, 우리가 더 머물 이유는 충분했다.


1박에 3만원짜리 지르갈란의 B&B


1박에 3만 원짜리, 그러나 마음은 그 이상

지르갈란의 B&B 아주머니는 영어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번역기 앱을 켜놓고, 미소와 몸짓으로 하루를 이어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온도는 금세 전해졌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는 우리가 필요한 걸 말하기 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경험에서 오는 다정함이었다. 여행이란 결국 ‘대화가 통하는 언어보다 마음이 통하는 시간’이라는 걸, 이런 순간마다 다시 느낀다.


[지르갈란에서의 2박 3일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inarism0070/41



지르갈란의 B&B 아주머니와 왓츠앱 친구가 되었다.


지르갈란을 떠나는 날

우리는 인터넷에서 ‘지르갈란 → 카라콜 마슈르카(미니버스)’의 출발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30분. 하지만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10시 30분”이라며 손가락 열 개를 펼쳐 보였다. 우리는 ‘아주머니는 카라콜에 갈 일이 없으니 예전 정보를 알고 계시겠지’라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최신 정보도 확인했고, 같이 묵고 있던 외국인 여행자도 자신이 찾아본 정보가 11시 30분이라고 말했기에 우리는 더욱 확신했다.


생각 보다 처참했던 지르갈란의 버스(마슈르카) 정류장


지르갈란을 떠나는 날 아침,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일찍 나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는 천천히 짐을 꾸려 11시가 조금 넘어 마슈르카 정류장으로 향했다. 11시 10분 도착. 11시 3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차는 오지 않았다. 동네엔 인기척이 없었고, 길엔 흙비만 묻어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믿었던 인터넷 정보는 사실상 ‘카더라’였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오전 8시 반 차를 타고 카라콜에서 넘어와 트레킹을 마치고 오후 4시 반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즉, 11시 반차는 ‘누군가 써놓은 이론상의 시간표’일 뿐, 실제로 타 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탈출 실패 직전의 구세주

그제야 부랴부랴 택시 앱을 켰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마을은 너무 작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량이 아니면 택시가 없었다. 그때였다. 길가에 한 승용차가 서더니,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운전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몇 마디 하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보였다. "카라콜, 500솜."


악수에서부터 2,000솜에 타고 왔던 걸 생각하면, 손해는커녕 이득이었다. 남편과 나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타자.” 알고 보니 그는 현지 가이드로, 다음날 카라콜에서 손님을 태우고 다시 지르갈란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지르갈란에서 탈출을 못할 뻔했지만 낡은 구세주를 만났다.


하지만... 출발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차는 금방이라도 멈춰 설 것처럼 덜덜거렸다. 운전자는 웃으며 “노 프라블럼”을 반복했지만, 우리는 이미 불안했다. 기어가 들어가지 않는 차는 카라콜까지 가는 동안 스무 번쯤 멈춰 설 뻔 했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매번 가슴을 졸였다. 한 시간 남짓한 길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어찌됐건,

마침내! 무사히 카라콜의 ‘에르킨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알틴 아라샨과 지르갈란으로 떠날 때 짐을 맡겨두었던 게스트하우스다. 기약 없는 여정이었고, 3박 4일 만의 귀환이었다. 떠날 때 "이틀 혹은 사흘,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었는데, 하루 전날 "내일 돌아갈게요" 하고 연락을 남겼을 때 그곳은 마치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방 한 칸을 따뜻하게 비워두고 있었다.


“오~ 웰컴 백!” 게스트하우스 식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검은 고양이는 없었다

아쉽게도 마당에 잠시 머물렀던 카라콜의 검은 고양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제 살길을 찾아 떠났겠지.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떠남은 여전히 익숙치 않다. 짧은 인연이라도 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카라콜의 검은 고양이가 궁금하다면? ↓↓↓

https://brunch.co.kr/@minarism0070/35


에르킨하우스 가족과 함께 다녀온 제티오구즈에서


혼란 속에서도 리듬은 있었다

지르갈란에서 카라콜까지의 그 하루는 한 편의 영화, 아니 시트콤 같았다. 예상치 못한 장면이 이어지고, 대사는 늘 즉흥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즉흥이 모여 결국 자연스러운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멈출 듯 달리던 낡은 차와 아주머니의 열 손가락 — 그 혼란스러운 하루의 모든 장면이 맞물리며 여행의 하루가 완성됐다.



키르기스스탄 여행은
계획한 것도 없지만, 계획대로 된 것도 없다.


함께 걸어가는 이 기록이, 누군가의 다음 발걸음에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를 합니다.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 거예요. 사진은 최대한 현장 느낌이 잘 나는 것으로 골라봅니다.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앙아시아 여행이나 아이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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