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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여행자의 생에 첫 히치하이킹 (1)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 위기의 순간

by 미나리즘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에요?


키르기스스탄 배낭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지르갈란,에서 묵었던 B&B”라 답하겠다. 멋지고 근사한 숙소도 아니었고, 남들도 똑같이 감동할 거란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장 좋았다”는 기억은 단연 그곳이다.


지르갈란의 아이들, 드론을 보자 모두 달려나와 인사를 한다


간판 없는 집

마을 중심에서 십여 분 더 걸어야 닿는 작은 부락. 스무 채 남짓한 집들 가운데 숙소라 표시된 곳은 단 네 곳. 처음 계획한 숙소는 비싼 가격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른 숙소들을 기웃거리다 결국 간판조차 없는 어느 집에 짐을 풀었고,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그곳의 이름이 ‘Guest House Grezzle’임을 (구글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곳은 B&B에 가까웠고,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추천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간판 하나 없는, 노부부가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에 이끌려 들어갔다.
영어를 못하는 주인 아주머니, 끊임없이 번역기를 통해 대화해야 했다.


주인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번역기를 손에 꼭 쥔 채 우리 곁을 오가며 끊임없이 물었다. 음식은 입에 맞는지, 방은 불편하지 않은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서툴고 기계적인 번역 문장이 이어졌지만, 그 뒤에 숨은 진심은 분명히 전해졌다. 정성껏 차린 밥상과 세심한 눈빛 속에서, 나는 ‘환대’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 그것은 완벽한 서비스가 아니라, 낯선 이를 진심으로 맞아들이려는 마음이었다. 반듯한 호텔식 친절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따뜻함. 서툴고 부족해 보이지만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드는 진심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입에 가장 잘 맞았던 집밥


그날 저녁, 식탁에는 유럽에서 온 노부부가 함께했다. 다행히 그들과는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세 차례나 1년씩 세계여행을 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주었다. 이미 자녀들을 다 키운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내일 지르갈란에서 할 트레킹 계획은 호수까지 다녀오는 세 시간 남짓의 짧은 코스였다. 무리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는 길,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부부는 지르갈란의 순환 코스, 일곱 시간이 걸리는 긴 트레킹을 권했다. 처음엔 고개를 저었지만, “우리도 해냈지 않느냐”는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다음 날, 호수가 아닌 순환 코스를 택했다.


여행하며 가장 힘들었던 날

지르갈란은 해발 약 2,500미터에 자리한 마을이다. 트레킹 초반 1~2시간은 괜찮았다. 발아래로 펼쳐진 마을은 파노라마처럼 아름답게 내려다보였고, 완만한 오르막길은 오히려 걷는 재미를 더했다. 푸른 능선을 타고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며 길동무처럼 곁을 지켰고, 초원의 양과 말들 또한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지르갈란 트레킹, 초반부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노부부가 알려준 길로 살짝 틀어 들어서자 산길은 돌연 성격을 바꿨다. 경사는 눈앞에서 치솟듯 가팔라졌고, 발 아래는 발목만 삐끗해도 그대로 미끄러져 굴러갈 듯한 기울기가 이어졌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숨은 가빠지고 가슴은 돌덩이로 눌린 듯 묵직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경을 곤두세운 건 곁에 있는 열 살 딸이었다. 되돌아 갈 수도, 멈춰 설 수도 없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지르갈란 트레킹, 중반부터 경사가 엄청 가팔랐다.


마침내 능선에 올라섰을 때 바람은 더 이상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하는 힘이었다. 아이가 날아갈까 두려워 손을 단단히 붙잡고 한 발 한 발을 힘주어 옮겼다. 앞으로도 뒤로도 포기할 수 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눈빛으로 “괜찮다”를 수없이 주고 받았다. 길은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졌다. 비가 흩뿌리고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사진은 멋있지만, 아이가 날아갈까봐 손을 놓을 수 없었던 바람 바람 바람


그때 문득 시야가 열렸다.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포인트였다. 멀리서부터 이어져 온 푸른 초원과 설산의 능선이 중첩되며 빚어내는 장엄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온몸이 부서질 듯 힘들었지만, 그 풍경만큼은 그날의 모든 고생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곳부터가

'진짜 진짜 고생 길의 시작'이었다.


함께 걸어가는 이 기록이, 누군가의 다음 발걸음에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열 살 여행자의 생에 첫 히치하이킹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 중입니다. 앞으로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게요.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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