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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여행자의 생에 첫 히치하이킹 (2)

by 미나리즘


하지만 그곳에서부터가
'진짜 진짜 고생 길'의 시작이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 경과, 파노라마 포인트를 지나 투르날루 호수(Turnaluu Kol)까지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했다. 길은 제대로 다져져 있지 않았고, 방향 이정표 하나 없었다. 지도 앱 ‘맵스미(Maps.me)’를 열심히 보았지만, 사람의 발길이 채 익지 않은 풀숲이 이어지다 보니 가던 길이 막혀 다시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잠깐만 방심해도 길을 잃을 것 같은 덤불과 초원이 이어졌다. “여기가 맞을까?” “아니야, 이쪽인 것 같아” 같은 말을 수없이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길을 헤매고, 되돌아가고, 다시 올라섰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끝내 도착한 곳—투르날루 콜(Turnaluu Kol). 그곳에 고요한 호수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람에 잔물결이 스치며 반짝거리는 그 물빛을 보는 순간, 울컥 눈물이 솟았다. 너무 힘들어서, 너무 지쳐서,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Turnaluu Kol


하지만 투르날루 콜(호수)에서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곧 해가 질 시간이었다. 호수의 고요와 반짝임이 잠시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였지만, 감동은 오래갈 틈은 없었다. 호수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이쯤이면 끝나겠지 싶었지만 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흙은 비에 젖어 질척거렸고, 발을 디딜 때마다 진흙이 신발을 붙잡듯 늘어졌다. 신발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고, 진흙탕은 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가도 가도 길이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끝이 보일까 싶어 고개를 들어봤지만, 눈앞엔 또 다른 진흙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흡수되는 힘, 지쳐가는 몸, 그리고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겹겹이 쌓여왔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서로를 다독이며 걸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길이 정말 끝나기는 할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제대로 된 트레킹 길이 다져지지 않았다.
지르갈란 트레킹 후반부, 끝이 없이 이어지는 길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진흙탕을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도로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승선이 아니라, 숙소까지 여전히 한참을 더 걸어야 하는 비포장 도로의 시작이었다. 이미 힘은 다 빠져 있었고,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히치하이킹을 해보자.


열 살 아이의 난생처음 히치 하이킹


우리는 아이에게 제안했다. “히치하이킹을 해보자.” 차량이 많이 다니는 길도 아니었기에 차 한 대가 보일 때마다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두 대는 그냥 지나쳤다. 그 짧은 순간조차 좌절이 밀려왔다. 하지만 세 번째 차가 드디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낯선 이의 차 안에 몸을 싣자, 무겁게 가라앉았던 어깨가 풀리고 긴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는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히치하이킹에 두 눈을 반짝이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몸은 먼지투성이였고, 다리는 돌처럼 무거웠지만, 그날의 기억은 묘하게 빛났다.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도착했던 파노라마 포인트와 호수, 그리고 마지막에 마주한 구원의 차 한 대. 지르갈란 하루는 스펙타클하게, 그리고 기묘하고 따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투르날루 호수에서 만난, 가족 나들이 나온 현지인 가족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르갈란 후반부 트레킹
B&B 주인 아주머니와 그녀의 시어머니


트레킹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숙소에 돌아왔을 땐 이미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차갑게 식어 있던 밥상을 주인장이 다시 정성껏 데워 내어주었다. 그 따끈한 집밥 한 그릇이 피로에 짓눌린 몸과 마음을 단숨에 녹여주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힘겨웠던 트레킹과 대비되는 그 따뜻한 밥상의 기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지르갈란에서 묵었던 그 B&B,
그리고 그 집에서 받은 한 끼의 따뜻한 저녁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 중입니다. 앞으로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게요.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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