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번째 부스, 중국. 호주식 중식 요리의 매력
호주는 자타공인 Multi-cultural, 다문화적 국가이다.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한데 섞여있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호주에 뿌리를 내리며 각자 삶의 터전을 일궈나갔고, 그러다 보니 호주에는 다양한 나라의 식문화가 발전해 있었다. 그래서 호주의 거리를 걷다 보면 멕시코 식당 옆에 일식당, 그 옆에 중화요리점, 그 옆에 피자집, 베트남 식당, 맞은편에 프랑스 요리점, 그 옆에 피시&칩스 가게가 서있는 기묘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흡사 월드 식품박람회에 온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나라들의 음식들을 접해볼 수 있었다.
호주식 중식
빵집에서의 짧은 경력을 마치고 내가 바로 일을 하게 된 곳은 우리 동네 쇼핑센터 1층에 있던 중국집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베이징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토의 음식이 너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파라다이스 룸살롱> (충격적이어서 이름까지도 기억난다)이라는 곳에서 페킹덕을 먹었었는데 그 기름기와 독특한 향 탓에 한 번 씹어 넘기는 데에도 깨나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개량되지 않은 중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 아닌 거부감이 내심 있었는데, 이 가게의 중국 음식은 호주인들의 입맛에 맞춰 절묘하게 로컬라이징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스위트 앤 샤워 포크는 이름만 보고 탕수육인가? 싶었는데 한국의 탕수육과는 많이 달랐다. 고기를 감싸는 튀김옷이 무척 두껍고 포슬포슬해서 튀긴 빵 속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느낌이었고, 소스에서는 케첩의 맛이 강렬하게 풍겼다.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매력이 있었다.
레몬 치킨은 넓적한 닭고기를 통으로 튀겨 큼지막하게 썰어낸 다음 그 위에 새콤달콤하고 걸쭉한 레몬소스를 끼얹는 요리로, 내가 정말 좋아해서 점심시간에 자주 먹었다.
그 밖에도 코코넛의 풍미가 일품인 락사, 바비큐 포크(차슈)와 새우가 듬뿍 들어가 고슬고슬 볶아져 불맛이 나는 볶음밥 등등, 맛있는 메뉴가 정말 많았다.
나는 홀 스태프로 주문받기, 계산하기, 음료 서빙, 간단한 주방 보조일을 맡았다. 나만 한국인이고 나머지 스태프들은 전부 중국인이었는데 다들 무척 친절하셨다. 특히 나와 같이 홀 스태프로 일하셨던, 40대 중반 정도의 W 아주머니께서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다. 영어가 서투르셔서 처음엔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지만 이내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가까워졌다. W 아주머니의 노련함, 손님을 대하는 자세, 유연하게 스태프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태도, 홀 전체를 살피는 기민함 등등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홍차에 연유를 타 밀크티를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는 걸 알려주신 것도 W 아주머니다. 내 앞치마 주머니나 손에 간식을 슬쩍 넣어주시던 것도 W 아주머니셨고.
아주머니와 함께 같이 저녁 시프트를 하던 날이었다.
단체 손님 테이블 주문을 받으랴, 워크인(walk-in) 손님들 받으랴, 픽업 전화 주문을 받으랴. 우리 둘 다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지쳐서 카운터에 살짝 기댄 채 손님들로 붐비는 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내 옆에 다가온 W 아주머니께서 내 손에 사탕을 하나 쥐어주셨다.
붉은 야자수 그림과 중후한 필체로 적힌 중국어가 인쇄되어있는 포장지. 중국어 밑에 영어로 코코넛 캔디라고 적혀있긴 했지만 어쩐지 한방약의 냄새가 날 것 같은 그 디자인에 먹기가 꺼려졌다. "Try! It's good! (먹어봐, 맛있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반신반의한 채 포장지를 벗기자 캐러멜 빛깔의 윤기가 나는 사탕이 드러났다. 우려한 한방약의 냄새도 나지 않았기에 나는 그것을 쏙 입에 집어넣었다.
"How? (어때?)" 아주머니께선 묘하게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고,
"It's so good...(너무 맛있어요...)" 나는 이 고소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사탕이 혀 위에서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맛있다며 감탄했다.
그런 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던 W 아주머니는 그다음 날 코코넛 사탕 한 봉지를 사 오셔서 내 품에 안겨주셨다. 나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W 아주머니에게 와락 하고 안겼고, 아주머니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셨지만 이내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셨다.
아주머니의 품에서는 미세하게 코코넛 캔디의 향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