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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조 Oct 30. 2022

6. 스테이크 파이의 그 손님

잊을 수 없는 기억

우웩! 사건과 도시락 도둑에 대한 글을 읽고 사람들이 호주에 대한 편견을 가질까 걱정이 된다. 

꼭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저 때 나도 친구들도 모두 고작 12-13살 밖에 되지 않았단 사실이다. 

그 친구들이 내게 주었던 상처들은 그냥 그 나이대 고유의 미성숙함에 의한 것이지 국적, 나라, 인종과는 상관이 없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호주에도 이상한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호주는 그 이상한 무리들을 다 덮을 정도만큼, 딱 그만큼의 괜찮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은사들과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 나와 딱 한 번 마주친 것뿐인 무수히 많은 타인들이 존재한다. 

사실 이 ‘괜찮은 사람’의 구성원의 대다수가 타인들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예상치도 못한 배려. 그것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오고 가는 따듯한 배려와는 다른, 아주 강렬한 온도를 가슴에 남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는. 

그런 온도를 내 마음에 지펴주었던 아주 소중한 배려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학 친구들 대부분이 일찍이 시니어 스쿨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스스로 돈을 벌었는데, 나만 아직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창피해서 그랬던 것 같다. 


9학년 영어 시험 중 하나가 ‘이력서와 CV(Cover Letter 커버레터-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모의면접 보기’였는데, 나는 그때 제출했던 내용들을 응용해서 제법 그럴싸한 이력서와 CV를 완성해내었다. 

난 동네 카페와 식당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그럴싸한 이력서와 CV를 열심히 돌렸고, 감사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빵집에서 일하러 나와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빵집은 작고 오래되었지만 기차역 바로 앞에 있어 손님들이 꾸준히 많은, 나름 동네의 인기 베이커리였다. 

나도 통학할 때 이 빵집을 종종 지나쳤다. 보통은 아빠께서 차로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곤 했는데, 통학길을 따라 터덜터덜 걷고 있노라면 이 빵집에서 갓 구운 빵과 파이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었다. 그 냄새가 참 포근하고 다정했다.


빵집의 여자 사장님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유쾌하고 친절한 분이셨지만 성격이 좀 급하셨다. 

내가 “연락받고 왔는데요...” 이 한 마디를 하자마자 나를 오븐실로 끌고 가시더니, 이탈리아 악센트가 섞인 빠른 말투로 취급하는 빵의 종류, 해야 할 일들, 빵집의 역사, 사장님의 가족 관계를 비롯해 사장님이 왜 호주로 왔고 어째서 빵집을 열게 되었는지까지를 알려주셨다. 

이 모든 과정에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사장님의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고, 안에 들어가서 둘러본 가게는 그냥 지나치면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맘에 들었다. 어쩐지 정감이 가는 친근한 느낌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아 정직한 만듦새의 빵들도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가 제일 중요한 페이도 제법 쏠쏠했고. 사장님으로부터의 속성 교육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내가 이 빵집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렸던 것 같다. 



다음날 빵집에 출근했을 때 카운터 너머엔 사장님이 아닌, 나와 같은 동양계 여성이 있었다. 나보다 앞서 가게에 들어선 손님에게 싹싹하고 노련한 태도로 응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저 사람이 바로 내 선배님이겠구나’싶어,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자 한껏 밝게 웃으며 "안녕, 오늘부터 일하게 된 J야."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더니, 대뜸 내게 노트를 가져왔냐 물었다. 당황한 내가 “무슨 노트?” 하고 반문하니, ‘사장님이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어제 다 가르쳐주지 않으셨냐, 그걸 받아 적은 노트가 있을 거 아니냐’는 답이 되돌아왔다. 그녀가 뱉어내는 단어 하나하나가 뾰족하게 날이 서있었다. 

나는 순순히 ‘받아 적지 못했다,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준비가 안 돼있을 수가 있어?”라고 쏘아붙이곤, 등을 휙 돌려 오븐실로 가버렸다. 

황당하여서 잠시 가만히 서있었더니, 오븐실에서 왜 빨리 따라 들어오지 않느냐는 고함이 들려와 나는 황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날카로워져만 갔다. 

사장님께서 포스기 사용에 대한 건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신경질적으로 포스 기를 내리치며 “너 바보야?”라고 했다. 

손님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더니 “그런 거 하지 말고 오븐실에서 빵이나 옮겨”란다. 그래서 열심히 빵을 옮기고 꼼꼼히 포장해두었더니 “나는 카운터에서 바쁜데 여기서 뭐해?”라며 윽박을 질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되려 “sorry, sorry” 하면서 연신 사과했다.


아침에 가게에 들어설 때만 해도 쭉 펴져있던 어깨가 점점 굽어 들었고, 빵을 옮기고 손님들로부터 돈을 건네받는 손끝이 달달 떨렸다. 아마 내 입꼬리도 묘하게 부들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주눅이 든 게 아니었다.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웃다가, 돌아서서 내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는 그녀가. 나를 향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의 가혹함이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손님들이 계속 오고 가는 환경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는 태연하게 나를 조롱하며 면박을 주었다. 일부 손님들은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때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손님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몇 분 전부터 가게 앞을 서성거리던 그는 스테이크 파이를 하나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건 내가 아닌 그녀였지만, 등 뒤에서 주문 내용을 알아들은 나는 곁눈질로 봤던 것처럼 파이를 집게로 집어 종이봉투에 담아내었다. 그녀는 내가 내민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네 마음대로 할 거면 네가 직접 포스기에 입력도 하고 계산도 하고 다 하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며, 덜덜 떨면서 서투르게 포스기의 버튼을 눌렀다. 카운터 너머에서 남자 손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한심스럽게 보일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였다.



“Are you alright? (너 괜찮니?)”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그 한마디에 여태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내 대답을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그는 이번엔 내 옆에 서있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이번엔 이렇게 말했다.


“You shouldn’t treat her like that. Treat her with respect. (얘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마. 예의를 가지고 대해.)”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그러자 그녀가 억울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I’m sorry, but I’ve been having a rough day today—(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오늘 너무 힘든 하루라서—) “ 


“I’m sorry to hear that, but that doesn’t give you the right to be disrespectful to her, okay? (그건 참 안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그 애한테 무례하게 굴어도 된단 건 아냐.)” 


그 손님은 한 번 더 그녀에게 “You shouldn’t be treating her that way(그런 식으로 그 애를 대하지 마)”라고 말하곤 스테이크 파이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아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더 이상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은 그런 일을 겪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해주셨다. 사장님의 잘못이 아닌데. 참고로 그녀로부터 사과 같은 건 없었다. 끝내 그녀의 이름도 듣지 못했으니, 사과받기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나는 그렇게 딱 하루만 일하고 빵집을 관두게 되었다.




이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영영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되면 어쩌지? 싶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후 나는 다양한 카페와 식당들에서 일을 했는데, 새로운 일터에서도 다정한 손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음료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내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고 “괜찮아, 긴장하지 마! 고작 우리야!”라고 유쾌하게 말하던 회사원들. 

내가 거스름돈 계산을 헷갈려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괜찮아, 익숙하지 않으면 헷갈리지? 나도 그랬어.”라며 계산을 도와주었던 젊은 아이 엄마 등등. 

정말 많은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래도 역시 빵집의 그 남자 손님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그 빵집에서 온갖 인신공격을 받아가며 일을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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