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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 Lee Oct 20. 2024

갈라 포라스 김

고대 유물과 근대 박물관 제도의 화해를 꿈꾸는 작가

갈라 포라스 김(Gala Porras-Kim, b.1984)은 박물관이라는 제도와 유물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멕시코 식민 시대의 문학을 연구하는 한국인 어머니와 콜롬비아 역사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박물관을 자주 다니며 자연스럽게 유물과 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LA와 런던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길리포리스 김은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되었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현의 대표 연례전으로 1995년의 올해의 작가를 모태로 한다. 2012년부터 SBS와 함께 올해의 작가상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4팀의 작가를 선정해 수상하는 수상제도로 바뀌었다. 첫해에는 3000만 원 이듬해부터는 4000만 원의 지원금을 주고 신작만을 전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2022년 10주년을 계기로 몇 가지 제도 개선을 했다. 우선, 신작만을 전시하다 보니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전문가와 관람객의 의견을 반영해 과거의 작품부터 신작까지 전시하는 제도로 바꾸었다.그리고 한국국적이나 외모가 아니라도 한국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를 포함하게 되었다.


뮤지엄에서 전시되고 있는 유물은 원래는 박물관이 아닌 태생의 목적이 있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근대시기 박물관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유물들을 발굴해 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면서 유물 본래의 목적은 제거당한 채 전시와 연구의 목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 포라스 김은 고대의 유물들을 원래의 장소로 다시 되돌려 놓을 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본래 유물이 수행했던 목적과 근대의 뮤지엄이라는 제도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고자 한다.

작가는 이를 화해시키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갈라포라스 김의 작품은 본인의 생각과 제안을 담은, 박물관에 보내는 편지에서 출발한다.


아래 작품은 하버드 대학 소속의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들을 드로잉 한 것이다. 작가는 코로나 기간 동안 피바디 박물관에 취직해 소장 유물들을 연구하고 드로잉 했다.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비’를 위한 301점의 제물들〉, 2021, 종이에 색연필과 플래시, 183 x 183cm

멕시코 체첸시아(Chichén Itzá)라는 지역에는 세노테(cenote)라는 자연 연못이 있다.

매우 영험해서 신들에게로 가는 통로로 여겨졌다. 물은 죽고 사는 문제와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대 마야 문명인들은 이 세노테에 금이나, 옥과 같은 귀한 것들을 넣어 비의 신 차크에게 가뭄이 오지 않도록 빌었다.

그런데 1904년, 미국은 이 세노테에서 유물 3만여 점을 발굴해 피바디 박물관으로 가져왔다.

알다시피 박물관은 습도를 엄격히 제한한다. 물속에서 비가 내리도록 기원하는 역할을 하던 이 유물들은 박물관이라는 제도 안에서 물과 완전히 차단된 환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갈라포라스 김은 피바디 박물관에 편지를 보내 유물들이 과거와 같은 빙식은 아니더라도 물과 어떤 식으로든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자고 제안했다. 어떤 방법으로 화해를 제안했을까? 바로 이 방법이다.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량〉, 2021

세노테 안에는 오래된 나무 수액이 굳어진 코펄도 들어있었다. 코펄은 천연수지의 화석으로 보석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태워서 신에게 드리는 의식에서 향으로 사용했다. 작가는 작품이 전시되는 뮤지엄에서 코펄이현대적인 방법으로나마 물을 만날 수 있는 장치를 제안했다.

코펄로 유물의 형태를 만들어 전시장에서 물을 만날 수 있도록 전시한 것이다. 작품은 전시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물을 만났다. 어떤 곳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물을 붓도록 하기도 하고 바닥타일로 만들어 물을 만나게 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가습기를 설치해 물과 만나게 했다.

작품 위에 하얀 가루 같은 것들이 뿌려져 있다. 이것은 작가가 유물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를 모아 코펄위에 뿌린 것이다.


갈라 포라스 킴은 다시 한번 제도에 질문을 던진다. 박물관 유물들은 역사가 오래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이 드로잉처럼 파손된 유물들이 전문 복원사의 손을 거쳐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다.

그러면 완전히 가루가 되어 복원이 어려운 것들은 더 이상 유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 떨어져 나온 유물들의 가루는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 걸까? 그것을 분류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 걸까?

작가는 코로나 기간 동안 피바디 박물관에 취직해서 수장고의 유물에서 떨어져 나온 유물의 가루를 모두 모아 이 위에 뿌렸다. 박물관 제도를 파기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유물이 비의 신 차크와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2023 올해의 작가상 전시 전경

또한, 갈라 포라스 김은 특히 제의나 장례와 관련 있는 유물에 관심을 가진다. 올작에서는 전라북도 고창의 고인돌에 관심을 가졌다. 고창에는 500기가 넘는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최초의 의미는 무덤의 표식이었다. 무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를 영원히 연결하기도 한다.

제의적 기능의 고인돌은 시간이 지나며 실제 기능은 잊혔고, 누군가는 냉장고로, 누군가는 빨래를 말리는 곳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2000년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2004년부터 유적지를 정비하고 고인돌 박물관이 조성되어 CCTV와 펜스로 다시 보호를 받으며 관리되고 있다. 관리를 위해 행정 번호가 매겨졌다. 예를 들면  문화재 01A12호 등등...유물의 번호체계도 고도화되면서 바뀌게 된다. 갈라 포라스 김은 만약 더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거나 혹은 유물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면 유물의 번호는 어떻게 될까? 유물의 중요성은 누가 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2023, 종이에 납화법, 흑연과 색연필, 228.6x182.8cm. 작가와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소장

세 점의 드로잉이다. 첫 번째는 고인돌에 묻힌 사람의 시선에서, 두 번째는 인간의 관점, 제도권 안에서 제의적 기능은 제거되고 역사적 유적으로서 존재하는 고인돌이다 세 번째는 무엇일까? 인간과 역사를 벗어난 자연, 즉 고인돌의 관점이다. 고인돌의 표면에 생긴 이끼를 그렸다. 이 이끼들은 자연물인가? 아니면 이 역시 고인돌의 일부로서 유산인가?

2023 올해의 작가상  전시 전경


2020년 갈라 포라스 김은 영국 박물관에서 5세기경 이집트와 누비아 고대문명의 장례 예식에 관한 유물을 접했다. 이집트에서는 왕이 신적인 존재였고 왕이 세상을 떠나면 본래 떠나왔던 신의 세계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신의 세계로 가 본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육신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미라를 만든 것이고, 그 미라를 이 석관에 넣어 피라미드의 중심에 매장했다.  

특히 이들은 철저한 법칙을 가지고 이러한 믿음을 수행했기에 꼼꼼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석관의 창문은 항상 해가 뜨는 동쪽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데 영국박물관이 석관을 소장하게 되면서 고대의 믿음을 무너뜨린 것이다.

작가는 대영박물관에 편지를 써 석관을 이집트로 되돌려 놓을 수 없다면  석관의 창문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전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영국 박물관의 5세기경 기자 석관을 위한 일출›, 202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당시 석관은 동쪽 장향을 향해 전시했다. 그리고 바닥에는 영국박물관이 석관을 얼마만큼 돌려야 동쪽을 향하는지 방향을 표시했다.

2023 올해의 작가상 전시 전경
〈우리를 묶어두는 곳으로부터의 영원한 탈출〉,  2021


〈우리를 묶어두는 곳으로부터의 영원한 탈출〉,  2021


2021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당시 제작한 작품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은 2018년 광주 신창동 농경유적지에서 발견된 약 2000년 전의 인골을 소장하고 있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 자신의 육체가 공공에게 공개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당사자의 의견과 무관하게 사후 박물관의 유물로 분류되어 일련번호가 매겨진 이 인골에게 주술행위를 통해 영혼을 불러내어 박물관이 아닌 자신의 육신이 있기를 희망하는 위치를 표시하도록 했다. 잉크가 물의 표면에 떠있는 상태에서 종이 마블링 기법을 이용해 점치는 엔크로만시(encromancy)를 사용해 만든 지도이다. 살아 있는 자의 방식이 아닌 영적인 접근방식을 취한 것이다.

신체에 대한 소유권, 영적존재에 대한 권리 등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갈라 포라스 킴은 올해의 작가상이 개최되는 기간 동안 리움미술관에서도  국보 전을 함께 개최했다. 남북한의 국보 530점을 모으고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소환하는 드로잉 작업이다. 이를 통해 국가가 문화유산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제도와 분단이라는 역사가 문화재에 부여한 맥락을 살펴보는 작업이다.

본래 이들은 한 곳의 유물이었으나 분단, 강점기로 인해 남한, 북한, 일본에서 제각기 다른 번호가 부여되어 관리 보존되고 있다.

<국보 530점> , 2023, 종이에 색연필, 플래쉬 물감. 패널 4개, 각 181x300cm

남한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제일 먼저 그려져 있고 그다음이 북한 국보유적 1호 평양성을 그렸다. 다음 순서는 남한 국보 2호 원각사지 십 층 석탑, 북한 국보유적 2호 안학궁터 ... 이런 식으로 남한과 북한의 국보들이 번갈아가며 그려져 있다. 아래줄로 갈수록 그림이 빼곡하지 않고 듬성해지는 것은 북한의 유물수가 남한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보 530점>, 2023, 첫 번째 패널
<국보 530점>, 2023, 두 번째 패널
<국보 530점>, 2023, 세 번째 패널
<국보 530점>, 2023, 네 번째 패널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유물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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