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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율용 Nov 29. 2024

건축가 유동룡의 자취를 밟다

유동룡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제주의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는 신문을 보고 '유동룡미술관'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서 미술관 몇 곳을 가 보았지만 이곳은 조금 특별한 것 같았다. 미술관인데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은 건축, 그리고 놓인 소품 그 자체를 보는 곳이다. 이 미술관은 이름이 '유동룡미술관'인데 건축가였던 유동룡이 지은 것이 아니다. 그의 딸이자 역시 건축가였던 유이화가 자신의 이름을 딴 문화재단, 기념관, 건축상을  만들라는 아버지 유동룡의 유언에 따라 직접 설계하고 지은 곳이다. 이제 유동룡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재일 건축가로 일제강점기 시절 도쿄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살았다. 그의 일본 이름은 이타미 준. 그래서 이 미술관은 '이타미 준 뮤지엄'이라고도 불린다.

ITAMI JUN MUSEUM이라 적힌 미술관 외관
전시소개 팜플렛, 오디오 도슨트도 제공한다

그는 일본에 살며 한국국적을 유지했고, 프랑스 국립 기메박물관에서 건축으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고 프랑스와 한국, 일본 등에서 인정받고 초대형 규모의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충남 아산의 온양박물관이 있고, 그가 특히 제주를 사랑하여 제주에 '방주교회', '포도호텔', '수풍석박물관'을 지었다. 연예인 홍진경의 현 평창동 저택과 전 제주도 집도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는 유동룡미술관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했으나 가는 김에 방주교회와 포도호텔도 들르며 건축가 유동룡이라는 사람을 더 알아보고 싶었다. 먼저, 유동룡미술관을 갔다. 위치는 지난번에 방문했던 '김창열 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과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유동룡미술관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며 30분 간격으로 입장이 된다. 가격은 성인 19000원으로 제주도의 지원을 받거나 기부를 받은 미술관(보통 2000원)보다 비싼 편이지만 건축물에 매료돼 홀린 듯 가보고 싶었다. 들어가 보니 사진으로 봤던 것과 달리 원형공간 라이브러리에 이미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분위기는 조용하고 고요했다.

원형공간라이브러리

사람들이 없고 한산할 때 찍은 원형공간라이브러리의 사진이다. 한쪽 면으로는 통창을 통해 밖과 연결되며 계절마다 바뀌는 제주의 풍경도 건축의 일부가 된다. 유동룡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지향하는데 이 창은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밖에는 둥근돌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돌은 유동룡이 자연을 나타낼 때 사용했던 소재이다. 한쪽면은 원형을 따라 책꽂이가 있다. 여기에 그가 쓴 책, 그가 영감 받은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달항아리. 그가 한국적인 것 중 매료되었던 소재 중 하나이다.

나선형 계단과 먹의 공간

원형라이브러리 공간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먹의 공간'이 나온다. 미술관의 천장은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유동룡은 제주도 지형이 타원형이라는 점을 의식해 그의 작품에 타원형을 많이 이용했고, 딸도 타원형을 사용하였다.

건축도면

2층부터 본격적인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먹의 공간'이 나오고 먹을 표현한 조형은 먹으로 칠해져 아래로 먹이 한 방울씩 떨어져 그릇에 담기기도 한다. 미술관 내 오디오를 통해 먹이 떨어지는 소리도 난다. 유동룡의 작품들 중 '먹 시리즈_먹의 집, 먹의 암' 등에는 먹이 나오고 그의 건축은 먹색을 자주 이용한다. 그리고 딸 유이화는 아버지의 창작 공간이 먹색인 점을 고려해 해당 공간을 '먹의 공간'이라 불렀다.

오디오 청취와 상설전시관

수(水)풍(風) 석(石)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던 돌과 바람이 실내에서도 등장했다. 돌에 앉아 진열된 헤드셋을 끼고 바람의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먹의 공간 옆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먹의 공간 옆에 상설전시관에는 그가 어떻게 스케치를 하고, 자연과 건축을 조화시키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 있었다.

'바람의 노래' 티라운지

전시가 끝나고 내려오는 마지막 공간에는 티라운지가 있다. 티켓을 예매할 때 티까지 같이 신청하는 표도 있는데 사실 처음에는 미술관 관람만 신청했었다. 그런데 갈증이 나 녹차아이스크림과 양갱을 주문했다.

사실 미술관에 왜 카페가 있는지 의아했으나 이 역시 유동룡을 나타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차를 즐기고 차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웠으며, 귀한 손님에게 녹차를 내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 기반의 티 브랜드 '우연못'의 티라고 한다. 관람이 끝나고 리뷰를 쓰며 유동룡의 스케치가 그려진 노트를 받았다.

연못이 개발한 시그니처 티를 맛볼 수 있으며,

유동룡 미술관 외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외관이 너무나도 예뻐 찍었다. 들어오기 전 담에 보인 외관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이라 그런지 집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전달하려는 자연과 인간사이 세계, 그리고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다음 목적지는 유동룡의 2009년작 방주교회였다. 실제 주말에 예배도 드리는 교회였다. 실제 우리 가족이 크리스천이기도 한지라 더 관심이 갔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아닌지라 무료로 관람을 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으나 관람시간은 짧았다. 방주교회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의 그의 다른 작품들인 수풍석박물관과 포도호텔도 있었다. 안덕면에는 별장으로 이용되는 타운하우스인 비오토피아가 위치해 있고 주변에 각종 레스토랑, 미술관, 그리고 제주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유동룡 미술관은 제주시에 위치해 있어 거리가 있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은 다 인접해 있어 하루에도 충분히 둘러보기 쉬운 코스였다.

방주교회 외관

방주교회에 도착했을 때 이런 외관이 보였다. 큰 교회는 아니었지만 역시 이 건축물도 예술적이었다. 교회 앞에 돌멩이들이 보이는데 원래 여기도 물을 채워 놓는다. 물이 있으면 교회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며 교회를 성경에 나오는 방주 형태로 지어놓아 교회가 하나의 방주처럼 보인다. 방주는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며 대홍수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이 노아에게 지으라고 한 네모난 선박을 말한다. 건축 앞쪽에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아 아쉬워했는데 뒤켠으로 가니 물이 채워져 있었다.

방주교회 뒷면

물이 있는 것을 보니 더 방주 같았다. 물에 떠있는 것 같이 보이는 모습은 전에 방문했던 '제주도립미술관'을 연상케 했다. 건축의 색감도 청색계열로 비슷해 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타미 준은 물과 빛을 중요시했는데 빛에 따라 바뀌는 지붕의 색깔도 인상적이었다.

기도 중이신 아버지

내부로 들어가니 찬송가 반주가 흐르고 있었다. 예배는 당일하고 있지 않았다. 기독교인이신 부모님은 교회 장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하고 나오셨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포도호텔이다. 일정상 문제도 있고 유동룡미술관을 갔기에 수풍석미술관은 가지 않았다. 포도호텔 역시 실제 호텔로 쓰이고 있는 곳이고 관람시간은 길지 않았다. 숙소에 머물거나 호텔 내에서 식사를 했다면 내부도 자세히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기에 외부만 잠깐 보고 나왔다. 호텔에서 투숙하면  건축 관련 큐레이터 설명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포도호텔 외관

제주의 7대 건축물 중 하나인 포도호텔은 위에서 봐야 왜 포도호텔인지 알 수 있다. 항공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에 계단 몇 개를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호텔은 한옥을 연상케 했다. 내부도 한옥식이라고 한다. 실제로 유동룡은 포도호텔을 지을 때 제주전통집과 오름의 형태를 생각하며 지붕을 지었으며 지어놓고 보니 위에서 포도송이처럼 보여 이름을 포도호텔로 했다고 한다. 포도의 꼭지는 호텔 현관으로 연결된다.

포도호텔 외관

한옥적인 건축물, 그리고 그 앞 전통적인 한국을 연상케 하는 장독대들까지. 한국적이다. 전통적인데도 자연과 어울리고 세련되며 현대와도 이질감이 없었다. 다음에는 포도호텔에서 묵어보고 싶기도 했다.


유동룡과 관련된 세 건축을 보며 그와 가까워진 듯했다. 일본에서 살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던 그. 경계인이었기에 한국을, 그리고 제주를 다른 한국인들보다 한 발짝 떨어진 시선에서 바라보아 남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부분들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계인이었던 그는 마치 제주에 온 육지사람인 나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았다.

자연과 건축, 그리고 그 속의 사람은 이질감을 이루지 않고 각자가 자리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는 화산폭발로 자연스레 생긴 제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름다운 제주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건축물도 아름답지만 그 속 사상과 이야기를 따라가니 더 재밌었던 이번 투어, 제주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연스럽게 기억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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