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조증상은 10월부터였다. 우리 지역에 비가 우수수 떨어진 그 순간부터 내 우울은 시작됐다. 거기에 N잡러 일까지.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몸을 혹사시켰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에피 13화에서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우울을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우울은 자리를 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암세포가 증식하듯 내 몸 전체를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의 피로더니, 점점 몸의 힘이 없어지고, 종국에는 졸음이 쏟아져 수업 시간에 질타를 받기 일쑤였다.
상담쌤과 부모님은 버티라고 했다. 힘들 때마다 약을 찾는 것은 의존이라고 했다. 그 말에 동의했고, 나는 한 달을 참았다. 증상은 오히려 심해졌고, 나는 바다에 깊이 잠기는 기분이었다. 기억을 하나씩 잃어갔다. 병원에서는 괜찮은 척했다. 괜찮은 척했더니, 선생님은 정말 괜찮은 줄 아시더라고. 저번에 갔을 때는 기분조절제만 왕창 처방 받았었다. 이 정도면 안정적이게 보인다고 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도저히 못참겠어서 병원에 찾아갔다. 처방 받은 약은 '애드피온', 아침에 먹는 항우울제다. 아침에 죽을 만큼 힘들기에 꼭 아침에 처방해달라고 했다. 몇 년 전에도 먹은 적 있었는데, 효과는 괜찮았지만 조증 증상이 올라왔었다. 증상을 잘 지켜봐야겠다.
병원 선생님이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N잡은 어떻게 하냐고 했다. 내가 봐도 스트레스가 원인 같긴 하다. 동생은 나에게 제발 일을 줄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N수를 실패한 이유도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 일 병행하면서 PT 받고, 재수학원에 다녔었다. 그때는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미련한 짓이었다. 오히려 효율을 낮추는 행위같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느낌이랄까? 뭐 하나 특출난 것 없이 모든 걸 저공비행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편입 공부를 많이 못하고 있다. 9월 중순부터 11월 지금까지 한 번도 목표 달성을 해본 적이 없다. 10월에는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누워 있던 적도 많았다.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편입을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지금의 월급으로 적금 넣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충분히 먹고 살만 하고, 지금 대학에서 학점 4점대 받고 최선을 다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어린 생각들... 그 어린 생각의 시작에는 말을 듣지 않는 몸이 있었다.
나는 너무 무리하고 욕심 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