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조울증 환우가 입시를 결심한 계기

by 언노운


* 4년 차 조울증 환우로, 2형 양극성 정동 장애를 진단 받았습니다. 현재는 입원 없이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다들 스무 살은 꽃 같은 나이라고 말한다.
뭐든 할 수 있고, 돌도 씹어 먹을 기세라고 한다.

나도 그럴 줄만 알았다.
어린 첫사랑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벅찬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스무 살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다.

코로나로 시작된 재수 생활 속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조울증’이었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고3 때부터 느낀 무기력함을 단순한 게으름으로만 생각했고,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증상들에, 결국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도 모르게 10kg이 증가했고, 매일 도서관에서는 잠과의 전쟁이었다.
머리를 박아도, 뺨을 때려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글자가 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온통 흐릿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경조증은 ‘대학 입시’라는 끈을 놓지 못하게 했다.
울증이 “도저히 못 버티겠다, 여기서 멈추자”고 외쳐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뒤엉켜 나를 압박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바닥까지 추락했다.
성적표에는 7등급이 가득했다.

고등학교 때, 명문고에 다니던 내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결국 부모님은 아무 대학이나 가라고 하셨고,
나는 경기도 외곽의 한 사회복지학과 대학생이 되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낮은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이를 돌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꿈꾸던 미래와는 너무 달랐다.
나는 더 높은 곳을 날고 싶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각이 조증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복지학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소중했지만,
내가 진짜 가고 싶은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서는, 전공을 바꾸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학교로 가야 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또 다시 입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조증으로 밤새워 공부하는 날도 있었고,
울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루 종일 울기만 한 날도 있었다.

약 부작용으로 토하고, 두통에 시달리고,
정신이 멍해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날들이 반복됐다.
(* 나와 맞는 약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자습실에서 졸다가 혼난 적도 수십 번이었다.
아무리 손을 꼭 쥐어도, 모래가 새어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그 시간이 쌓여 결국 합격증을 받았다.




4년의 노력 끝에, 나는 증상을 다루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에게 맞는 약도 찾았다.

학점은 4점대를 유지하고 있고,

여러 대외활동을 병행하며 작은 수입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더 구체적인 꿈’이 생겼다.



물론 아직도 울증과 조증은 내 일상 속에 있다.
그럼에도 아주아주 조금은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사실 대학 입시가 끝났을 때는
“이제 다시는 입시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결국 또다시 편입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내가 입시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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