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하는 덩어리
“식물은 자신이 무엇이고 누구인지 알고 있다”란 구절을 보았다. 부러웠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식물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배운다. 산불, 홍수, 심지어 방사능 같은 재해 속에서 동물은 살 수 없어도 식물은 다시 싹을 틔우고 숲을 이루며 자연을 회복시킨다. 눈앞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칠 능력은 없지만 생태적 경쟁에 대응하고 살기 힘든 환경이 되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행동까지 할 수 있다니… 존경스럽기도 했다.
생존에는 경쟁이 필요하지만 경쟁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경쟁하면서도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공생(共生)’이 필요하다. 느타리버섯을 다듬으면서 공생하는 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햇빛이 아니라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오래된 나무에 붙어 기생하면서 돋아나는 일종의 곰팡이 덩어리. 감정의 비약이기도 하지만… 아기 손톱만 한 작은 갓으로부터 커져 늘어진 갓을 보고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가족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한 덩어리 가족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숭고’ 미를 발견한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만나는 먹거리들은 일상의 출구이자 상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입구가 되어 숨통이 트였다.
버섯처럼 그늘을 좋아하는 콩나물을 키워보았다. 얽히고설킨 콩나물은 거미줄에 얽힌 것처럼, 당시 육아와 박사 과정 수업으로 늘 시간에 쫓겼던 나의 자화상 같았다. “물이 흡수도 못하고 그대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영양분으로 자라나?” 신기했다. 아이들도 그럴까? 언뜻 보면 별로 크는 것 같지 않은데 어느 날 갑자기 성장하려나..? 버섯이나 콩나물은 고온에서는 빨리 자라고 저온에서는 단단하게 성장한다고 한다(고온보다도 저온 성장으로,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아이들이 자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 군집으로 피어나는 버섯과 실처럼 엉켜 있는 콩나물 그림은 문예진흥기금 후원으로 2008년 <군집 공간> 개인전에 전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식용으로 쓰였고 서양에서는 ‘신의 식품’으로, 동양에서는 ‘불로장생’으로 사랑받았던 버섯.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다. 특히 요즘엔 쫄깃한 식감으로 동물 대체육으로도 인기다. 그런데 이 먹거리에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름다운 독버섯, 음지의 고목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 때문일까. 이런저런 잡념을 지우고… 단순하게, 감사히 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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