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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인 Hye in Choi Sep 10. 2022

햇빛을 흡수하다, 바다를 건너다

레몬, 망고, 바나나, 아보카도, 올리브

바다를 건너온 식재료들. 햇빛을 흡수해 이를 우리 몸속까지 전달해준다.


2009년 미국 서부에서 1년 정도 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햇빛이었다. 강렬하고 직선적이며 투명했다. 햇빛의 순도가 이런 것인가 싶었다. 자외선 크림 차단 지수가 85-100인 제품을 보고 신기해하는 나에게 이스라엘에서 온 친구는 자신의 고향에 비하면 이것은 밍밍하고 햇빛도 아니라며 웃었다. 역시 모든 것은 상대적…! 그리고 강한 햇빛에 노출된 눈 회복을 위해 밤에는 조도를 낮추어 충분히 쉬고 눈을 위한 비타민이라 여겨지는 아보카도를 많이 먹으라고 조언해줬다. 


멕시코와 가까운 LA에서는 아보카도가 늘 시장에 있었다. 현재 발을 딛고 있는 땅에서 생산되는 음식은 그곳에서 사는 인간과 상관관계가 있구나, 햇빛이 강하니 눈이 손상되기 쉽고 그래서 아보카도가 많이 생산되나 싶었다. 몸과 땅이 연결된, 자신이 사는 땅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체질에 맞는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생각났다. 몸에 맞는 필요한 영양소들이 담긴 먹거리들이 그 지역의 땅에서 자란다. 몸과 땅, 먹거리 궁합이 자연스럽게 맞는다.


 아보카도의 표피는 악어 가죽처럼 울퉁불퉁하다. 그 안의 연둣빛 속살과 씨앗을 장지에 금분, 백토, 안료를 사용하여 그렸다.


아보카도 씨앗들. 시간이 흐르면서 허물을 벗듯 껍질이 벗겨진다.


신대륙이라 지력(地力)이 다른가? 아기자기한 우리나라의 식물과 달리 모든 게 억세고 컸다. 식물은 엄청난 자외선을 받으며 살기 위한 본능으로 색(色)을 발한다. 열대 지방에서는 동물도 색이 화려하다. 망고나 아보카도 같은 먹거리들을 보면서 ‘젊은 땅’의 지기(地氣)와 ‘태양을 흡수한 덩어리’란 생각이 들었다(망고는 햇빛을 좋아하지만 아보카도는 의외로 반 양지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미끄덩거리는 과육과 달리 가운데 씨는 또 얼마나 크고 단단한 지… 마치 금강앵무의 무지개 색 깃털 속에서 존재감 드러내는 큰 부리 같다.


다른 풍토의 식재료들이 바다를 건너온다. 물류의 흐름과 그 속도에 감탄한다. 요즘은 아침 식사 대용으로 흔하지만 어릴 때 바나나는 귀한 음식으로 소풍날의 대표 과일이었다. 노란 껍질을 살살 까서 드러나는 하얀 속살을 아이스크림 녹여 먹듯 천천히 먹었던 향긋한 기억이 있다. 든든한 포만감은 여전히 좋고...


<욕망 덩어리>는 바나나를 소재로 순지에 황벽 염색 후 먹, 안료를 사용하였다. 120x167cm_2019  염색은 뒷면까지 색이 배어 나와 자연스러운 바탕을 만드는 장점이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식탁에 국경이 점점 사라진다. 특히 지중해의 두 개의 토템(totem)적 식재료라는 레몬, 올리브를 보면서 ‘그럼 우리나라의 토템 식재료는 쑥과 마늘인가? 마늘, 양파는 동, 서양 모두 애용하는 채소네.’ 란 실없는 생각도 해보고… 바다를 건너온 올리브, 치즈, 토마토를 접시에 담다 ‘이거 완전히 이탈리아 국기네!’란 생각으로 찍은 사진도 있다. 


지중해의 햇빛을 전해주는 달큼한 토마토와 태평양을 건너온 숲 속의 버터 아보카도는 빨강, 초록 보색의 색감으로 눈도 즐겁고 영양학적 궁합도 훌륭한, 레몬과 함께 요즘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식재료들이다. 근거리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과 먼바다를 건너온 식재료들이 극과 극처럼 식탁을 넘나들며 삶에 호기심과 활력을 준다.


망고, 올리브를 소재로 한 그림들. 초록 올리브와 빨강 토마토를 먹다가 이탈리아 국기가 연상되어 찰칵!


http://www.hyeinch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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