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아빠 Aug 24. 2022

별아, 빛아 아빠 먼저 좀 챙길게

아내 혼자 쌍둥이 별이와 빛이를 보려면, 밤잠이 확실히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100일 밤잠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행하기 위해 회사에 3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당시 우리는 7시를 기점으로 맞교대를 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당연히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수면 교육 교관인 내가 육아를 전담하였다. 날 샘 육아 후 아침 7시 남들 출근할 시간에 육아 퇴근하던 나는 오후 1시~2시까지 취침을 하였다. 그런데 일어나는 오후 1시~2시는 항상 아비규환이었다. 울고 찡찡거리는 별이와 빛이, 짜증을 억누르며 이를 꽉 깨문 아내. 잠을 좋아하여 잠에 잘 취하여 재부팅이 오래 걸리는 나에게는 최악의 각성 환경이었다.


"가서 좀 쉬고 와." 그 당시 항상 내가 일어나면  아내에게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었다.  그러면 아내는 기를 들지 못하고 쉬는 척하면서 우리 주위를 전전긍긍하였다. 아이 낳기 전 아내와 계약한 조항 중에 아내의 강제 개인 활동 조항이 있었다. 아내에게 강제로 부여한 개인 활동 시간이라는 것은 아내가 혼자 나가서 친구들은 만나든 혼자 영화관을 가든 혼자 운동을 하든 아니면 혼자 방에서 공기를 쳐다보든 하루에 1~2시간 정도 자유의 시간을 강제로 부여한 것이다. 분명 나의 아내는 아이를 낳으면 하루 종일 붙어있으려고 할 것이 눈에 선하여 내가 욱여넣은 조항이었다. 잘 안 지켜질 줄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안 지켜질 줄이야.




도끼도 벼려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용광로에서 몇 번이고 담금질된 강하고 단단한 도끼보다 연약한 사람은 조금만 휘둘러도 날이 빠지기 십상이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스스로의 상태는 건강상태, 체력, 정신력, 감정상태 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어느 분야에서 연료가 부족한지 파악하여야 한다.


터넷에 떠도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여유는 잔고에서 나오고, 상냥함은 탄수화물과 당분에서 나온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 최고의 현자라고 할 수 있다. 애쓰지 않아도 넘쳐흐르면 누구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게 나의 평소 지론이다. 내가 아내에게 강제 개인 활동 시간을 부여하며 강조했던 뜻을 그대로 함축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긍정은 스스로의 욕구가 만족스러운 상태라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 스스로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다는 건데, 스스로도 돌보지도 못하면서 누가 누굴 돌본다는 말인가? 스스로를 살필 줄 모르면서 아이를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내가 억누를지라도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자아가 발달하기 전 6개월까지는 엄마와 자신이 동일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모든 일을 자기가 했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이 시기는 엄마가 나고 내가 엄마인 셈이다. 아기가 스스로를 엄마로 여기는데 엄마의 무의식을 아기가 모를까? 아기는 엄마 자신보다 더 엄마의 심리를 잘 파악할 것이다. 내 눈빛만 봐도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아기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내가 아무리 짜증을 억누르고 이 악물어봤자 아기는 모든 것을 안다. 내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통제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부정의 기운은 아기에게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양육자들이 아이를 달래면 달랠수록 더 우는 일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달래지지 않는 아기를 달래려 할수록 초조함, 짜증, 답답함 등 부정적 감정이 절로 흘러나오고 아기는 그 부정적 감정을 놓치는 법이 없다. 결국 이런 부정적 감정은 달래면 달랠수록 달래지지 않는 악순환의 굴레를 불러온다. 나 역시 그런 부정적 감정에 사로 잡히곤 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알고, 그 고리를 빨리 잘라내고 싶었다.


나는 수면교육을 하던 새벽에 기저귀도 갈고, 열도 재고, 밥도 먹이고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후 모든 게 정상임에도 별이와 빛이가 달래지지 않으면, 헤드셋을 끼고 아이들 옆에 살을 대고 누워 잠시 음악 감상을 하며 편안하게 길게 길게 호흡했다. 아이들 울음소리로부터 귀를 보호하며 나의 평안부터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아이들은 안을 얻고 곤히 잠에 들어 있었다. 지금도 아이들은 안정을 원할 때면 엄마보다 나를 더 찾는다.




나를 돌보는 것이 아기를 돌보는 것이고, 나의 상태가 곧 아기의 상태이고, 아기의 상태가 곧 나의 상태다. 나를 돌보는 것부터가 육아의 시작이다.


이전 07화 주역으로 본 가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