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과 양, 건괘와 곤괘
아이 낳기 전에도, 아이들 낳고도 참 힘들었다. 아이들 먹이고 재우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너무 무거웠고, 그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러서 힘들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데 쌍둥이를 잘 키우고 나보다 잘 살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아이들이 한 돌이 될 때까지 항상 조급하게 살았다. 이런 부담과 조급함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고자 취미에도 없던 책을 들었다. 책을 많이 읽고 이것저것 뭐라도 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1주일에 3권씩 읽고,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막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그중 '주역' 공부도 있었다.
사자성어 위편삼절(韋編三絕)의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는 고사와 사서삼경 중 삼경의 으뜸으로 꼽히는 것만 보아도 주역은 꽤나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자가 '주역을 좀 더 젊을 때 접했더라면...'하고 한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주역을 통달한 자는 점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현재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미래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흐름으로 파악한다고 한다. 그래서 주역을 공부하면 뭔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무언가 답을 찾고 그간 쌓였던 답답함이 해소될 것 같은 부푼 기대를 안고 중국 주역 일인자라고 불린다는 장치정 교수의 주역 해석 책을 구입하였다. 한문을 몰라도 될 정도로 한글로 잘 풀이되어 있었지만, 역시 한 번 읽고 통달할 정도로 내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음과 양의 이치를 통해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깨우쳤다고 생각한다.
주역은 특히 음과 양의 이치는 우리 생활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만 보아도 주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위치한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문양이 바로 음과 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음과 양을 가르는 물결모양은 바로 음과 양의 상호 순환을 의미한다. 빨간색이 가장 많은 부분이 양이 가장 가득 찬 것을 의미하고, 파란색이 가장 많은 부분이 음이 가장 가득 찬 것을 의미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해가 뜨면 지고, 사계절이 순환하듯 양의 기운이 가득 찬 후에는 음의 기운이 강해지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같다. 결국 음과 양은 서로 대체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고 상호 보완하는 존재인 것이다. ‘너무 세면 부러진다.’, ‘고이면 썩는다.’ 이런 말들은 참으로 맞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항상 비우면 채우고, 채우면 비우며 한 기운이 너무 강해지지 않게 순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역은 이런 음과 양의 이치를 바탕으로 64괘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음과 양을 대표하는 괘가 있다. 바로 태극기 왼쪽 상단에 위치한 ‘건괘’와 태극기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곤괘’다. 두 괘는 여러 상징이 있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부모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건괘는 순양의 괘로 아버지와 하늘을 상징하고 곤괘는 순음의 괘로 어머니와 땅을 상징한다. 아버지와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는 강건함을 의미하여 굳세고 강하며 중심을 잡고 거침없이 뻗어 나아가는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한다. 어머니와 땅을 상징하는 곤괘는 땅과 유순함을 의미하며 따뜻하게 만물을 품어주는 땅과 같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는 평소 아이를 낳기 전에 강건함을 추종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곤괘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과연 강건하기만 한 것이 바람직한 아버지의 모습이고, 유순하기만 한 것이 바람직한 어머니의 모습일까?
결국 기본은 음과 양의 이치이다. 상호 보완하며 순환해야 하는 것이다. 강건하기만 해서는 부러지고, 품기만 해서는 썩는다. 하늘에서 비를 뿌려주고 그것을 받아들여 땅에서 비와 씨앗을 품어주어야 생명이 싹을 틔우는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오롯이 하나의 자연이 되어 강건하기도 하고, 유순하기도 한 모습을 갖추고 상황에 맞게 순환해야 한다. 아버지가 혼내기만 하고 어머니가 달래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인가? 아버지가 강건하기만 해서는 아이가 반항을 하고, 어머니가 유순하기만 해서는 버릇이 없어진다. 부모는 혼자서 강건하며 유순해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으로 아이에게 강건한 모습을 보였다면 스스로 유순함을 보여 아이의 마음을 포용해줄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