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나는 참 속담이나 격언, 고사성어 등을 좋아한다. 옛 성현들과 조상들의 지혜가 한껏 녹아있기 때문이다. 대충 ‘이런 뜻이겠지.’ 하고 넘어가면 별 게 아닌 말들이지만, 선조들의 지혜를 곱씹고 곱씹다 보면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되며 큰 깨달음을 주는 좋은 스승이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통상적으로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들도 본받아 바르게 ‘행동’한다.’는 뜻인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또 다르게 해석이 되어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물을 사랑으로 대입하여 해석하니 참 재미있고 뜻있게 해석이 되었다.
노자는 물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노자는 물은 돌과 다투지 않고 돌아가며, 담는 그릇에 맞게 모양이 변하고, 영양을 공급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고, 무엇보다 항상 낮을 곳으로 향하는 고귀한 존재로 여겼다. 노자는 물을 보며 ‘도’와 ‘삶’에 대해 사색했지만, 나는 노자의 물에 대한 생각을 읽고 참 사랑과도 같다고 느꼈다. 육아를 하던 중에 도덕경을 읽어서인지 사랑 중에서도 단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치에 대해 느꼈다. 아이가 뭔가 위험한 것을 하려고 할 때 다투기보다는 다른 안전한 장난감으로 신경을 돌리며 돌아갈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내 아이의 가치관에 맞게 가치관의 모양이 변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안팎으로 영양을 공급하여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도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이 그렇듯이 부모의 사랑도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윗물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꼭대기의 샘이 철철 흘러넘쳐야 강줄기도 거대해지는 것처럼 먼저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마음만큼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은 언제 멸망하는가? 핵전쟁이 발발했을 때? 운석이 떨어졌을 때? 아니다. 다 부족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죽었을 때다. 핵전쟁이 발발해도, 운석이 떨어져도 내가 살아있다면 아직 세상이 멸망한 것은 아니다. 나의 세상에서 세상의 중심은 나다. 교통사고만으로도 나의 세상은 멸망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우친 후론 자존감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하고 사상의 중심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혔다. 그 이후로는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도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을 거 같았고, 현재까지도 항상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가짐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사실을 깨우치고 나니 타인들 또한 그들이 그들의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나에 대해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남들의 가치도 알아보는 법이다. 진정으로 나의 아이를 바라보고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진정으로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난 후로는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사랑이 흘러가게 되는데 타인에 대한 사랑은 특히 배우자에게 먼저 흐르도록 물꼬를 돌려야 한다. 배우자는 단순히 혼인관계를 맺은 사람이 아니다. ‘촌’이란 친족 상호 간의 혈연 연결의 멀고 가까움의 차이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이 촌수로도 배우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이 된다. 부모는 1촌이고, 형제는 2촌이다. 그런데 배우자는 무촌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처럼 부부는 한 마음, 한 몸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배우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부모든 형제든 자식이든 결국에는 다 떠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부는 한쪽이 죽을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게 배우자다.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배우자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부부의 도리다. 만약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아는데 배우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는 부부 각자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다. 사랑은 엄청난 포용력을 지녔다.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차고 넘쳐흐르는 사랑에는 여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데 배우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이미 부부 각자가 자기 자신을 잘못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경우는 이런 지 저런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부부 일심동체, 배우자가 무촌인 것처럼, 윗물이 아랫물로 흐르는 과정에서도 배우자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 각자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부부관계에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안쓰럽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할 수가 없는 이유도 그렇다. 부부싸움은 아이들에게 생존 위협의 수준이다. 하다못해 우리 집 반려견 흰둥이와 로이도 나와 아내가 싸우면 엄청 불안해하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더 무섭겠는가.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알고, 잉꼬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우자와 관계가 돈독해야 가정이 평안해지고 그 울타리 안에서 깨끗한 사랑이 아이들에게 흘러 내려갈 수 있다.
나 스스로와 배우자에 대한 깨끗한 사랑이 넘쳐흘러내려 우리 아이들이 대해(大海)에서 듬뿍듬뿍 사랑받으며 헤엄치도록 항상 우리는 우리 자신부터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