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볼 수 있게 아파서 감사합니다.
아프다는 것은 다양한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마음이 아프다, 발에 돌부리가 걸려서 아프다, 병에 걸려서 아프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은 한 가지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피하고 싶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아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아프기 때문에 아픈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떠나간 연인때문에 아프다면, 그 연인이 주고 간 소중한 추억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몸에 병이 걸려 아프다면, 그제서야 등한시 했던 내 몸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겨낼 수만 있다면, 아픔은 선물이 되곤 합니다.
아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아프기 때문에 슬프지만,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기쁩니다. 특히 아픔은 주목받을 때에 감사한 선물입니다. 아픔을 외면하면 그 놈은 점점 더 커져서 우리를 압도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아픔을 포용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삶은 우리에게 돌아볼 시간을 쉽게 내어주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앞으로 달리라고만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레일 위에서 달리고, 레일의 마찰열은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그 사회속에서 우리는 행복한가요? 충만한가요? 어느 날 레일에서 나가 떨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아픈 순간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레일과 레일위를 달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저기, 미소를 뛰고 달리고 있는 이가 한 명 보이는군요. 그렇게 행복은 숨어있습니다.
돌아본다는 것과 돌본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이지만, 크게는 같은 의미입니다. 돌아보아야 돌볼 수 있습니다. 돌보아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씨앗은 발아하여 새싹이 되고 그것이 자라 꽃이 됩니다. 꽃은 점점 시들어가며 자신의 뿌리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꽃잎들이 떨어지고 나면 열매가 남습니다. 꽃은 뿌리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꽃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열매를 맺고 씨앗이 되고 다시 꽃을 피우는 과정을 반복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아름다움입니다. 무의미한 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이제 그 과정이 너무도 아름다워보입니다. 만일 저 과정이 무의미해보인다면, 꽃에 다가가 향기를 맡아보고, 열매를 따서 과즙을 맛보지 못한 탓입니다.
저는 영적 지도자라거나 깨달은 승려가 아닙니다. 사회를 위한 레일 위를 달려야하는, 하지만 중간에 잠깐 나가떨어진 하나의 점입니다. 그 점이 다시 부풀어 사람이 되어 레일 위를 달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과 다른 표정일 것입니다. 분명 그래야만 합니다. 이제 그것이 저에게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레일 위에서 너무 빠르게 달리려고 애를 씁니다.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큰 일이 날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겁고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백 번의 계절을 겪고서 지는 꽃입니다.(사실 백 번도 많이 쳐준 거겠지요!) 그 사실을 떠올리고나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계절의 소중함을, 이 계절의 향기의 소중함을, 그리고 모든 소중하던 것들의 무상함을 말입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짓고 살아가실 준비가 되셨나요? 저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재활치료입니다.
괜찮습니다. 최소한 가방은 열었으니까요. 이제 무엇을 담을지 고민중입니다. 물론 아직 준비하지 않으신 분들도 괜찮습니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삶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건, 미소가 얹어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 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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