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om P Jun 16. 2024

고양이처럼 살아보고 싶습니다

오늘만 사는 고양이처럼.

 고양이는 주인이 집에서 나가면 슬퍼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반가워합니다. 늦잠을 자면 깨우고 싶어 합니다. 마지못해 일어나면 기뻐합니다. 츄르를 주면 행복해합니다. 그뿐입니다. 그뿐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부럽습니다. 고양이는 어제에 대해 후회하지도 않고 내일에 대해 희망하지도 않습니다. 벌어진 일에 연연하지 않고 벌어지지 않은 일에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끊임없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어제의 일을 후회하고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며 내일을 희망하고 불안해합니다. 특히 정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이 말이 와닿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내일을 '희망'하지는 않겠지요. 이 부분이 바로 사람이 고양이를 부러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적으로 보여지는 '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나', 안전지대에 있는 '나', 성취하는 '나'...


 하지만 고양이는 그저 오늘을 살아갑니다. 어제와 같아도 그만 달라도 그만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만입니다. 그저 눈앞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놀랄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놀라고 하악질을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도 부처님도 아닌 고양이에게 기도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모든 번민을 가져가주세요. 당신처럼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럴 수가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하루 일정을 꽉 채워놓고 꾸역꾸역 살아내고는 '이렇게 살았으니 오늘도 보람찼어'라고 말합니다. 그 말 이면에는, 그 하루에 대한 보상이 내일로 이어지리라는 신앙이 숨어있습니다. 또는 주의를 환기하기도 합니다. 산책을 하거나 명상을 하면서 번민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이는 교회에서 주기도문을 외우거나 절에서 법문을 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 번민으로부터 해방되리라는 신앙이 숨어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종류건 신앙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어떠한 종류건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안 좋은 생각들에 잡아먹힐 것입니다. 신앙의 방패로 그것들로부터 우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신앙은 꼭 종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만의 부적이건, 습관이건, 의미부여된 행동이건, 그 어떤 것이든 믿을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을 구석이 없습니다. 워낙에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기질에다가 여러 종교들의 안 좋은 부분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종교나 교인을 펌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몇몇 종교인들이 종교라는 집단적 믿음을 통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고양이처럼 말이죠. 고양이처럼 어제를 보내주고 오늘을 만끽하며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보려고 합니다.


이 무거운 뇌 덩어리가 끊임없이 어제와 내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 무거운 뇌 덩어리가 끊임없이 어제와 내일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굳이 통에 담아내지 않고, 저를 투과해 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동안은 잠깐 멍하고 말이 없습니다. 


 그 순간은 마치 제가 일시정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물론 내 몸에는 어제와 내일의 잔여물들이 묻어있지만, 이전보다 낫습니다. 이전보다 한결 가볍습니다. 이것이 명상이라면 명상인가 봅니다.

이전 06화 밥 한 술 넘기기도 힘들 정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