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겉으로 공감하는 척 하지만, 공감은 많은 인간에게 있어서 본성이 아니다. 모종의 이유로 추악하다고 알려진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를테면 사디즘)을 억제하기 위한 개인간의 정서적 합의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공감하는 자는 광장에 없다. 그들은 그저 방 안에 머물며, 다가오는 이들에게 따스한 온정을 나눌 뿐이다. 그것이 공감이기 때문이다. 공감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사회적인 공감은 감정의 통제를 위한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니 광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라. 사람들은 그 눈물을 비웃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감사를 표할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연민이 아닌 감사를 표할 것이다. 당신의 눈물이 그들의 이익의 명분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감사할 뿐이다. 연민은 광장에 없다.
가끔 나는 내가 광장의 시끄러운 군중의 일부가 되고싶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의 나약함은 어쩔 수 없이 나를 군중의 품으로 잡아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쾌락 따위에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저들 중 하나가 될 수 없다. 나는 저들에게서 풍기는 추악한 냄새에 너무나도 예민하며, 그로 인해 찡그린 표정에 그들은 나를 배척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시끄러운 선동가만큼 그의 추종자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나약함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눈물에 감사한다. 그들은 서로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공감받지 못하고 있따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공감을 바라며, 연민을 기대하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예상대로 돌아오는 것은 감사 뿐이다.
광장은 악당의 추종자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라.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울어라. 혹시나 운이 좋게 그곳에 진정으로 공감할 줄 아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그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 하지만 그런 이가 없더라도, 스스로의 눈물흘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행여나 누군가에게 당신의 눈물이 보이는 순간, 당신은 '감사'의 대상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