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일단
2019년 많은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했고, 꿈꾸던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고, 신혼 생활을 즐기던 나날들... 지속되는 힘든 출퇴근... 그냥 하루하루 똑같이 지나가는 하루들이었는데...
19년도 말, 20년도 초 갑자기 일상은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어진 듯 뒤바뀌었다.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병원도 가기 어렵고, 진단 키트도 없고, 두려움과 막막한 시간을 모두가 보냈으리라.
내가 하는 업무는 코로나19와 관련이 매우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 한복판에 서 있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외딴곳에 있기도 했다.
당시 모든 초점은 코로나19 백신이었다. 치료제도 중요했지만, 치료제는 기존의 치료제를 활용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먼저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개발도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걸려도 덜 아프도록 백신 개발과 보급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전 세계 사람 그 누구도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알기 어려워 서로서로 아는 정보를 시시각각 공유하는 시스템이 빠르게 구축되었고, 갖가지 회의가 시시각각 열리고, 자료가 쏟아져 번역을 수시로 해야 했다.
그렇게 평소와는 다른 업무가 늘었고, 평소 하던 업무 중 해외 출장이나 국내 대면 행사는 모두 온라인화 원격화되어 다른 상황에서 일을 해야 했다. 원격회의는 전 세계(몇 나라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간대를 조율해서 진행해야 하는데 내가 하는 업무의 경우 우리나라는 주로 8시 이후 밤늦은 시간이 자주 걸린다. 유럽의 정오, 미국 동부는 이르면 새벽 4~5시나 7시 정도가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기차 타고 셔틀 타고 출근을 하는 통근자였기 때문에, 코로나 기간에는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에 비해 감염 위험이 높아 재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재택을 하기도 하고 상황이 심각할 때는 연속으로 며칠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나를 출퇴근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사실 내 업무는 누군가와 교류하는 시간보다 혼자 앉아서 번역하고, 자료 찾고, 그런 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재택근무에 적합하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지 않아서 많이 못했을 뿐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난 집에서 일하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금이야 재택근무를 가끔 할 때 적응이 돼서 이상하진 않지만 당시에는 뭔가 불편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내 사무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한다는 게 어려웠고, 사무실의 인프라에 비해 집에선 작은 노트북 하나로 일을 해야 했고, 사무실에 있으면 그냥 찾아가서 할 말을 일일이 전화나 카톡을 이용해야 하고(전화는 착신전환 해 놓아서 사무실로 전화를 걸면 폰으로 전화가 온다), 아무래도 비대면이다 보니 아무리 내가 나 혼자 하는 일이 많다고 해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이것은 장거리 통근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불규칙한 생활이 되어서 힘들어지는 부분도 생겼다는 사실이다. 연속 4일 사무실 1일 재택 이렇게 하면 괜찮지만, 월요일 출근, 화요일 집, 수요일 출근 이런 식으로 하면 몸이 적응을 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렇게 드문드문 나가면 정기권을 끊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되어 출퇴근 때마다 N카드를 사용해서 표를 구매해야 하는 데 이것도 영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난생처음으로 긴 출퇴근 시간에서 벗어나게 되어 사실 정말 좋았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열차를 놓치지 않을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고, 일을 마치고 힘들게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내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에 산책도 하고, 저녁에 느긋하게 장도 보고, 집안 살림도 하고, 취미도 하고 그런 생활을 가져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 역시 장거리 출퇴근은 나를 좀먹는 일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