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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Sep 27. 2024

생애 첫 직장

취직의 기쁨도 잠시

대학교 휴학 1년, 졸업 후 공부 2년, 대학원 2년 후 첫 직장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대학 졸업 후에는 공부하는 시간이 정말 대부분이었다. 팍팍한 현실만큼 월급 받는 직장 생활이 정말 기다려졌다.


통번역사를 꿈꾸며 졸업 후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상 백수지 뭐.

첫 해에는 시험에 떨어졌다. 떨어졌다고 바로 관두긴 뭐해서 1년만 더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두 번째 도전에서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격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때 떨어졌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지 늘 궁금하다.


통번역대학원 생활은 살면서 가장 힘들고 비참한 시기였달까.  동기들과 서로서로 실력을 체크해 주고 교수님 앞에서 발표하며 하루에도 수차례 내 퍼포먼스에 대한 지적/조언을 받으며 2년을 보냈다. 내 통역과 번역 실력에 대한 지적이지만 자꾸 듣다 보면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느껴져 스트레스가 어마무지했다.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드디어 졸업!

졸업시험을 보고 두 달 뒤 나는 취직했다.

분명 들어가고 싶어 지원한 게 맞았지만, 이게 정말 맞나 싶었던 나의 직장 위치.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면 바로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반 사기업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정부기관에 취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일터의 위치는 우선 차치하고 지원을 했다.  당시 주요 정부기관 절반 정도가 지방으로 이전한 상태였고, 산하기관, 공기업 등에서도 지방 이전을 계획하는 분위기였다. 내 계획은 다녀보고 아니면 관두고 혹은 실력을 쌓고 이직하자였다.


면접 보러 가는 길은 설레고 떨려서 그 먼 길이 멀다고 느끼진 못했다.


다 끝나고 돌아가려니 그 거리가 실감이 났다. 우선 KTX 오송역까지 이동하고, 미리 가서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다시 집까지 지하철을 타야 하는 상황. 지하철에서도 우리 집까지 마을버스로 이동(도보도 가능하다).


우와. 이거 가능한가? 붙으면 고민하자.

이때 나는 두 번째 면접이었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합격해 버렸다.

합격은 너무나 기뻤고, 나도 이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구나 싶어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나는 통역, 번역, 국제협력 업무를 하는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의 전문용어에 허덕이고, 밤늦게 진행되는 원격회의를 할 때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억양을 스피커 너머로 들으며 헤매는 나날들이었다. 부족한 실력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해 나가려고 애썼다.


일 배우기도 힘든 중에 고된 출퇴근은 늘 디폴트였고 나는 8시 가까이 되어 집에 오면 늦게 저녁을 먹고(이미 기차 탈 때부터 허기졌다) 씻고 나면 그냥 너무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또 아침엔 7시~7시 반엔 기차를 타야 하고 6시 반 전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3개월쯤 통근을 하다가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국제회의가 밤에 주로 있어 야근까지 종종해야 했던 상황에 이렇게는 도저히 못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기 시작한 직장을 당장 때려치우기는 그러니 조치를 취하자. 부모님께 내려가 살고 싶다고 독립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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