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를 즐겨본 팬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에서는 한때 축구 변방으로 인식되곤 하였다. 하지만 유럽의 변방이었던 곳에서 세계 축구계에 한 획을 그은 팀, 선수, 감독이 배출된 적이 있었다.
오늘은 세계를 놀라게 한 우크라이나의 축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크라이나의 국민구단 디나모 키이우
디나오 키이우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구장
디나모 키이우의 홈 경기장이자 훈련장인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구장 입구이다. 당시 겨울이고 아직 시즌이 아니라서 경기나 훈련은 없었다. 당시 키이우를 떠나고 일주일 뒤에 시즌이 개막했는데 그때 축구를 직접 보고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당시 경기가 없던 시즌이라 썰렁했다. 지금은 디나모 키예프의 홈구장 경기보다는 주로 훈련장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경기가 없어서 그냥 경기장만 구경하고 나왔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언젠가는 여기 다시 오게 되어 선수들의 움직임과 관객들의 함성을 듣고 느껴보고 싶다.
디나모 키이우는 1927년 창단된 축구팀으로 소련 프로리그를 거쳐 현재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축구구단이다. 창단 이래로 소련리그 우승 13회 우크라이나 리그 우승 15회, 유럽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다회 진출 등의 성과를 보인 명실상부한 우크라이나 최고의 국민 구단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소련 시절부터 키이우 시민들의 이 축구팀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키이우 시민들은 디나모가 러시아 클럽들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선수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에 임했는데 그것이 소련 리그 최다 우승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UEFA 선정 최고의 감독 5인 선정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구장 입구 옆 디나모 키이우의 명감독 발레리 로바노브스키의 동상이 있다. 구장의 상징이자 홈구장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이 감독은 디나모 키이우를 명문구단의 반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감독이다. 유럽축구연맹 UEFA에서 정한 역사상 최고의 명장 10명 중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그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축구 역사에 기여한 바는 엄청 컸다.
축구인들이 로바노브스키를 평가할 때 한마디로 '축구 과학자'라고 한다. 이 사람 이전까지는 축구를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저 공차고 쫓아다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로바노프스키 감독은 체계적인 선수들의 기량 강화 훈련, 식단 조절 등을 최초로 실시했다. 그리고 경기 내에서는 선수의 움직임, 패스 성공률, 점유율 등의 수치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도입한 인물이다. 모두 현대 축구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사용하지 않는 감독이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것이다. 그러니까 축구라는 스포츠를 체계화 한 선구자인 셈이다. 로바노브스키는 축구의 체계를 확립하고 발전시켰다는 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우크라이나 사람들 거의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무결점 스트라이커 '안드레이 셰브첸코'
디나모 키이우 출신의 감독 말고 선수로써 축구계에 한 획을 그은 우크라이나인이 있다. 바로 '안드레이 셰브첸코'. 그는 디나모 키이우에 입단해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19살이던 97-98 시즌 유럽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 스페인의 축구 강호였던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전반에만 헤트트릭을 넣는 파괴력을 보이며 유럽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 후 키예프에서 이탈리아 AC 밀란으로 이적하여 유럽 최고 선수상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등의 절정기를 보냈다. 이후 잉글랜드 첼시로 이적해서 그 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키이우로 돌아와서 은퇴하였다. 잉글랜드 첼시의 선수생활이 정말 부진했기에 저평 가되는 감도 있지만 어쨌든 셰브첸코는 당당히 축구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의 셰브첸코는 '무결점 스트라이커'로 불렸다. 로바노브스키는 셰브첸코를 평가하기를 '축구선수들은 자신만의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셰브첸코는 특징이 없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수이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리고 유럽 축구의 변방이었던 우크라이나 대표팀을 이끌어서 06년도 독일월드컵에 처음 진출하여 8강에 오르는 등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다.
은퇴 후에도 축구감독 등 축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축구선수로 그랬던 것처럼 축구 감독으로도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전쟁 이후 재개된 우크라이나 축구리그.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와서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격변과 동부 국경에서는 친 러시아 세력과의 군사 교전이 있는 등의 혼란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축구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그에 보답하듯 프로리그도 흥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리그는 중단되고 말았다. 잔여경기를 치르지 않고 우승팀 없이 그대로 리그를 마친다는 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전쟁 6개월 후 2022년 8월 리그가 재개되었는데 축구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의 축구리그의 전망은 아직 그렇게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8월 24일의 루크 리비우와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경기는 공습경보로 인해 4차례나 중단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에 점령되었던 지역에 있는 일부 구단들은 리그에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