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콘서트나 공연 같은 것을 예전에는 많이 보러 가지 않았다. 지방에 살고 있어 그런 기회가 자주 없었고 비용도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에 유학하면서는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극장도 가까운데 있었고 티켓값도 한국의 절반 이하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기회가 있다면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있다.
구소련 3대 발레단 키이우 셰브첸코 발레단
오늘은 공연 중에서도 발레를 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보통 발레 하면 생각나는 나라는 러시아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단,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우크라이나 또한 발레로 유명한데 구 소련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발레단원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크라이나의 발레가 러시아 발레의 원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이우의 셰브첸코 발레단은 160년 역사의 발레단으로 볼쇼이, 마린스키와 함께 구 소련의 3대 발레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키이우에 방문하였으니 발레 공연을 보기로 하고 예약을 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민족 예술가 타라스 셰브첸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타라스 셰브첸코 국립 극장에 도착하였다.
이 극장의 이름으로 알려진 타라스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민족 예술가로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능통했던 사람이다. 특히 셰브첸코는 그저 러시아어의 방언 정도로만 여겨지던 우크라이나어를 하나의 민족 언어로 확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어로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인들에게 그의 작품들이 사랑받고 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정도의 위상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국민작가인 셈이다.
그런 셰브첸코의 이름을 따서 1867년에 국립극장을 건설하였고 극장의 이름을 딴 발레단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볼쇼이 극장이 1825년, 마린스키 극장이 1890년에 설립되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극장이 건설되고 발레단이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극장 앞 거리 모습이다. 공연시간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하나둘 극장 앞으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으로 받은 표를 미리 인쇄한 다음 표를 지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레스 코드는 까다롭지 않다. 해변 복장이나 샌들 슬리퍼만 아니면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검은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입장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점점 차서 공연 시작 전에는 관객들이 거의 가득 찼다.
저 무대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무대 아래에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준비하며 최종적으로 조율을 하고 지휘자가 각 파트를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우크라이나의 인기 영화 '두 마리 토끼를 쫓다'를 발레로 직접 보다
그때 내가 본 발레는 '두 마리 토끼를 쫒다.'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61년 소련 우크라이나 시절 엄청난 흥행을 했던 영화를 모티브로 재창조한 발레 작품이다. 다른 유명한 발레도 많지만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등) 이왕 우크라이나에 왔으니 우크라이나 고유의 발레 작품을 보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하였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나 관객들을 위해서 공연 종료 후 극장 공식 홈페이지에 공연의 주요 장면들을 편집해서 업로드를 해준다. 다시 사진들을 보면서 공연 내용을 되새길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이 작품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주인공은 사업에 실패하고 돈을 잃은 어떤 한 남자다. 그리고 한 백만장자 사업가가 등장하는데 그 부자의 걱정거리는 자신의 딸이었다. 부자의 딸은 오랫동안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부자는 자신의 딸이 못생겨서 결혼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큰 결심을 하였는데 사위가 될 사람에게 엄청난 재산을 주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주인공 남자는 돈을 노리고 결혼을 하고자 한다.
그렇게 결심하고 난 후에 남자는 블라디미르 언덕에서 갈리야 라는 예쁜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백만장자의 사위가 돼서 돈을 얻은 다음 갈리야 와 몰래 만나는 불륜을 저지를 것이라 계획한다.
제목 그대로 돈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쫒겠다는 나쁜 계획을 세운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계획이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결혼식 당일 그의 계획이 탄로 나 파혼당하고 마을에서 빈털터리로 쫓겨나게 된다.
못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들
분명 작품에는 미녀와 추녀가 나온다고 했는데 모두 잘생기고 멋진 배우들만 있어서 당황했다. 부자의 딸을 연기한 배우도 그냥 못생기게 연기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것이 완벽한 이 공연에서 내가 느끼는 자그마한 흠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좌석 기준으로도 500 흐리브냐 (한화 약 18,000) 정도이다. 수준 높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여행 중 만난 한 일본인 노부부는 발레를 보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찾는다고 했다. 발레만 여행 내내 쭉 보고 가도 이득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공연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정상적으로 공연 중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현재 여행경보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방문하기 어렵다. 만약 여행경보가 가까운 미래에 풀리고 우크라이나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공연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