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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사고 박물관에 가다

기억하지 못하면 아픔은 반복된다

by 타이준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전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나 또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예정된 직장 활동이 취소되고 다른 곳으로 취업하면서 어떻게 보면 인생의 방향이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예정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큰 재앙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을까?

오늘 소개할 곳은 과거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게 인류의 크나큰 재앙이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참상이 보관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체르노빌 박물관이다.


자네 학생 같아 보이는데? 학생요금 내고 들어가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이라 적혀있는 간판이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입장하고 매표소로 갔는데 매표소 아주머니가 혹시 학생이냐고 물어보았다. 학생은 맞지만 (대학원생도 학생이니까) 학생증을 안 가져와서 그냥 성인 가격으로 하겠다고 하니 그냥 학생 가격으로 받겠단다. 유럽을 다니면서 느끼게 된 생각인데 한국 사람이 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이나 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사복 입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버스 타면 성인 요금을 받던 내게는 이런 대접이 낯설기만 했다.


입구부터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


그렇게 표를 사고 오른쪽으로 돌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본격적인 박물관 전시는 2층에 있다. 지금 올라가는 계단 위로 글자가 써져 있는데 이곳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실제 도시의 이름들이라고 한다. 이곳을 잘 기억하고 있으면 나중에 큰 반전을 맛볼 수 있다.


끔찍한 사고의 시작 : 1986년 4월 26일 01시 24분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방호복과 그리고 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났던 1986년 4월 26일 01시 24분에 멈춰 있다. 당시 사고 직후에 계속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방사능 방호복을 갖추고 원전 안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의 희생으로 인해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실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의 연구원들과 관리자 인부 등의 사진들도 있는데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 거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사고 수습을 위한 수많은 희생


체르노빌 관련된 전시물들이 을씨년스럽게 공중에 걸려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냥 바닥에 난잡하게 뿌려져 있다. 그 참혹했던 현장을 간접적으로 나마 표현한 듯싶다. 체르노빌 사고의 수습을 위해서 지금으로 생각하면 정말 무자비한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소련 가맹국 전역에서 60만 명 이상의 장병을 차출하여 체르노빌 사고 수습에 투입되었다. 제대로 된 방호복도 갖추지 못하고 많은 인력들이 방사능에 피폭되었고 그 후유증을 않는 사람이 아직도 수백만에 달하고 있다.


당시 소련의 무자비한 조치를 풍자하는 짧은 글이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원격 로봇을 투입했다.

미국에서 가져온 로봇은 5분 정도 작동하다가 강한 방사능에 의해 회로가 타서 멈추었다. 일본제 로봇은 10분 정도 작동하다가 멈추었다.

그런데 소련 로봇은 1시간째 작동 중이었다. 사고 현장에 취재를 온 전 세계의 기자들이 소련제 로봇의 성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확성기가 울려 퍼졌다.

"이바노프 이병!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시오."


그 주변에 거주하던 수많은 주민들은 고향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서 신체장애를 가지게 된 아이들도 많이 생겨났고 그들은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끔찍한 사고에 경악한 전 세계 : 이제야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였지만.....



냉전에 의해서 서로 대립하던 1 세계 국가들도 소련이 겪은 대 참사를 위로하며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 사고를 목격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의 위력을 실감한 전 세계 국가들은 이때 비로소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사고로 인해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이곳의 바닥은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수가 잠겨있는 그 바닥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곳에는 당시 체르노빌 일대의 거주했던 주민들 특히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생활이 자세히 담겨 있었다. 그들이 성인이 된 지금에도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큰 트라우마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것들



처음 관람하러 올라왔던 계단을 기억하는지? 다시 위의 사진과 확인하시면 섬뜩함을 느낄 수 있다. 아까 입장 때 봤던 그 지명의 이름은 체르노빌로 피해를 입은 마을과 도시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한 번의 끔찍한 사고가 났고 그것이 지금은 수습되었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던 소중한 마을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2050년이 넘어야 겨우 들어가 볼 수 있을 거 같다는데 어쩌면 영원히 그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다른 것보다 내려갈 때의 이 모습이 정말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다.


사고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나가는 곳에는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고는 체르노빌로 끝나지 않았고 다시 일본에서 발생하고 말았는데 무서운 점은 이 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아픔을 끊어낼 수는 없을까?



박물관을 나가서 왼쪽 길로 당시 체르노빌 사고 수습 때 사용했던 차량들이 보인다. 전시된 사물이 우리에게 뭔가 조용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거 같다. 과거의 큰 참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게 된다면 제2의 제3의 사고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도 마음을 놓는다면 다시 우리가 피눈물을 흘리며 그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아니 사태가 진정이 되고도 조심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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