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준 Nov 15. 2024

구르 아미르: 정복왕 티무르의 마지막 안식처

이곳에 잠든 정복왕, 그의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다


구르 아미르 : 정복왕 티무르의 마지막 발자취를 찾아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아미르 티무르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생애를 탐구해 보았다. 이곳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웅의 흔적을 좇으며, 그의 이름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한편, 그 또한 결국 세상을 떠나 묻혔다는 점에서 삶의 아이러니와 덧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타슈켄트의 티무르 박물관에서는 그의 정복과 업적을, 샤흐리삽스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이 담긴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여정의 마지막으로 사마르칸드의 구르 아미르 영묘를 찾았다. 


이곳은 티무르와 그의 후손들이 잠든 장소로, 티무르 제국의 위대함과 그의 마지막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르 아미르: 왕의 무덤이 된 장소


구르 아미르 영묘는 사마르칸드 중심 레기스탄에서 서남쪽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왕의 무덤’을 뜻하는 구르 아미르는 티무르 제국의 황제 아미르 티무르와 그의 후손들이 안치된 곳으로, 페르시아와 이슬람 건축 양식이 결합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외벽을 장식한 청색 타일과 정교한 문양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눈부신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웅장함과 장엄함이 어우러진 건축물



구르 아미르의 건축은 15세기 초, 티무르가 손자 무함마드 술탄을 위해 세우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티무르는 고향인 샤흐리삽스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그의 유언과는 달리 이곳에 안치되면서 구르 아미르는 왕조의 가족 묘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름 10미터가 넘는 돔과 웅장한 외벽의 푸른 타일 장식은 이슬람 건축의 미학을 절정으로 보여준다.



이곳에는 티무르의 아들 샤루흐와 손자 울루그벡을 비롯한 왕조의 주요 인물들이 함께 안치되어 있으며, 티무르의 스승 미르 사이드 바라카 또한 묻혀 있어 그가 스승을 존경했던 마음이 엿보인다.


중앙에 놓인 티무르의 묘



사진 속 중앙에 있는 검은색 묘가 바로 티무르의 무덤이다. 돔 아래 자리 잡은 이 묘비는 그가 남긴 업적과 전설로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제 티무르의 유해는 지하에 묻혀 있으며, 중앙의 검은색 묘비는 그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생전에 강대한 제국을 일구었던 티무르도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는다. 그가 남긴 유산이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지만, 결국 모든 것은 흘러가고 사라진다는 덧없음이 깊은 울림을 준다.


티무르의 저주 :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41년, 소련의 고고학자들이 구르 아미르 영묘를 발굴하며 티무르의 무덤을 열었는데, 전설에 따르면 그의 무덤을 열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어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실제로 무덤이 발굴된 며칠 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는 티무르의 저주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퍼졌다. 


놀란 고고학자들은 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이슬람식 장례를 치르고 티무르의 유해를 다시 안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설은 오늘날까지 구르 아미르에 대한 신비한 매력을 더해 주고 있다.


사라진 육신, 남겨진 이름의 무게


구르 아미르에 서서 티무르의 유적을 바라보면, 그의 육신은 이제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힘을 가진 채 시대를 넘어 울려 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묘비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티무르의 목소리가 아닌, 그가 남긴 유산과 영향력이다. 육신은 사라져도 그의 이야기는 남아,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마르칸트의 보석, 레기스탄 광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