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 여행지에 도착하면 도시가 모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를 꼭 찾아간다. 인간의 삶을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다르듯 풍경도 그런 것이 있다. 멀리서 도시를 본 풍경 그리고 골목과 거리 사이사이를 다니며 느낀 풍경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렇게 도시의 풍경을 마음에 새기고 여행을 시작하면 기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안드레이 언덕길을 처음으로 가 보기로 했다. 안드리 언덕길은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으나 교통수단 푸니쿨료를 체험하기 위해서 푸니쿨료 승강장을 찾았다.
케이블카와 비슷하게 생긴 이 대중교통은 노면에 난 철로를 따라서 언덕길을 오른다. 한국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교통수단이라 매우 신기했다.
안드레이 언덕길 위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안드레이 성당으로 갈 수 있다. 안드레이 성당 앞에는 이런 동상이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국민 영화인 '두 마리 토끼를 쫒다'의 한 장면을 표현한 동상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성 안드레이 교회와 안드레이 언덕길
키이우 성 안드레이 교회. 18세기에 건립된 성당인데 특이한 점은 동유럽식 교회의 모습이 아닌 로마 이탈리아식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며 종교를 금지하던 소련 시절 1932년에 성당이 폐쇄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독립 후에 비로소 교단의 소유로 변경되어 운영되고 있다
교회도 아주 아름답지만 교회 언덕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키이우의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안드레이 성당 옆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곳을 안드레이 언덕길이라고 부르는데 언덕길 양옆으로 상인들이 기념품 및 기타 잡화들을 팔고 있다. 내려가는 중간중간에도 도시를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내려가는 길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모티브로 한 공원이 있다. 아이들이 노는 미끄럼틀의 모습인데 디자인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편 눈이 쌓여있고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조금 을씨년스러운 느낌도 났다. 날이 좋을 때 와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우크라이나 국립미술관
언덕길을 내려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우크라이나 국립 미술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과거 골동품 박물관으로 시작하여 세계대전 이후 역사박물관으로 바뀌었다가 미술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미술품까지 수집하여 보관하였으나 스탈린 치하에서 예술품 수집과 박물관 운영이 잠깐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보관하고 있는 예술품의 일부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도 하고 일부는 분실하는 등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에 남아있는 유물을 다시 모아 이곳에 보관하여 이제 명실상부한 우크라이나 최고의 미술관이 되었다. 최근에는 이곳의 미술품 일부로 네덜란드, 캐나다, 프랑스 등 해외 전시도 하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민족 중 하나인 카자크족의 그림이다. 카자크족 하면 잘 모를 수 있는데 카자크의 전통 춤 게임 '테트리스' 나온 '코사크 댄스' 하면 모두가 알 수 있을 듯하다. 앉은 자세에서 왼발 오른발을 앞쪽으로 뻗는 춤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가? 카자크족은 과거 동유럽 일대에 거주하던 유목민족으로 근대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에 나타나 그들과 함께 전쟁을 겪기도 하고 일부는 러시아인과 동화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소수민족으로 차별을 받기도 하였지만 2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입대하여 용맹함을 보여주어 모든 소련 가맹국들에게 공동체로써 인정을 받았다. 많은 전투에서 선봉으로 나서 공을 세웠고 많은 카자크 인들이 소련군에서 고위직으로 진급하였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지역에서 카자크의 전통문화를 복원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커졌고 카자크 족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크라이나의 예술품들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의 작품과 대체로 흡사하지만 조금 수수한 느낌이 든다.
오래된 급수탑을 개조해서 만든 우크라이나 물 박물관
미술관을 나와 뒤쪽으로 난 길로 조금 걸어올라 가면 우크라이나 물 박물관이 있다. 저기 보이는 빨간색 탑이 있는 건물이다. 과거에는 급수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물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일정 이상 모이면 가이드가 나와 설명을 하면서 투어를 진행한다. 중간중간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는 코너가 있어서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의 치수 시스템 그리고 환경오염 등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었다. 멀리 타국까지 와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철거되어 버려 이제는 볼 수 없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우정의 아치'
우정의 아치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철거되어 버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
박물관을 나와 길을 걸었다. 흐레샤칙 공원에 있는 우정의 아치다.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상징하는 노동자 두 명이 소련의 상징 낫과 망치가 그려진 배찌를 들고 있다. 1982년 소련 설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우호의 상징으로 이곳에 설치하였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이 되었고 반러 감정이 고조되고 있어 이 동상을 철거하자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래서 2016년에 철거하기로 결정하였지만 예산 문제와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갈등관계이지만 민간 개개인들 대부분은 서로서로 잘 지내고 있었기에 (실제로 러시아 친구들, 우크라이나 친구들 대부분은 서로의 지방 출신이라던지, 친척이 살고 있다던지 연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거작업은 이리저리 연기되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두 나라 사이는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이 우정의 동상도 전쟁 발발 2개월 뒤에 철거되어 버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형제나 다름없던 두 나라가 민족적, 정치적 갈등 때문에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개인들은 얼마나 슬플까? 나는 더 이상의 희생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다시 예전처럼 돌아기를 매일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