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피터 팬, 법정에 서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않아 살인범이 된 어느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간병과 사랑이야기
검찰 수사 결과 내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언론은 소년의 범죄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소년에 의해 희생된 환자를 치료한 병원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병원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분명 원장이 미리 언론에 줄을 대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의 병원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일부 언론은 이전과는 영 딴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칭찬 일색이었다. 원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창성시 지방 언론은 물론이고 중앙 언론의 기자들도 병원으로 찾아왔다. 원장은 각 방송사와 신문기자들이 올 때마다 납작 엎드려 겸손하게 말했다.
― 모름지기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은 환자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오직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료인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자 본분입니다. 저는 비록 부족하지만 이러한 의료인의 사명과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매일 아침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암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는 다만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본분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본색을 숨기고 이재에 밝은 원장의 입에 발린 거짓 술수가 뻔히 눈에 보였다. 원장이 기자들에게 어떻게 손을 썼는지는 몰라도 신문과 방송은 하나같이 원장을 치켜세웠다. 낙도의 가난한 어부인 전신마비 식물인간 환자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병원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VIP 병실에 입원시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준 원장의 선행은 모든 의료인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원장의 이러한 선행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병원에서 몰래 빼돌려 목선에 태워 보내 살해한 소년의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인륜을 저버린 존속살인 범죄 행위라고 비난했다. 원장은 졸지에 이 시대의 의인으로 둔갑하고, 소년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패륜아들이 되고 말았다.
내가 검찰의 ‘혐의 없음’ 처분통지서를 받은 지 한 달여가 지난 후, 나는 소년의 재판이 열린다는 신문 보도를 보았다. 그 전날 섬마을 분교의 그 여선생이 네게 전화하여 소년의 재판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개학이 되어 다시 학교에 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도 사건의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비록 ‘혐의 없음’으로 내 혐의에 대한 수사는 종결되었지만, 소년이 법정에서라도 내 차를 타고 병원에서 나갔다고 실토하면 나는 낭패였다. 곧바로 다시 수사가 재개될 것이었다.
물론 검사실에서 소년이 하는 말을 들어서 소년을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내가 법정에 있으면 소년이 차마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 편한 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소년이 걱정되기도 했다. 나는 혹시나 내가 처벌받을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을 졸이며 법정으로 갔다.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법정의 느낌은 어둡다는 것이었다. 높은 판사석과 그 아래 좌우에 있는 변호인석과 검사석을 치워 버리고, 판사석 뒤쪽 벽에 화면을 설치한다면 영락없이 영화관이 되겠다 싶을 정도로 법정은 어두침침했다. 언론의 보도 때문인지 법정은 방청객들로 꽉 차 있었다.
소년의 재판은 이미 전국적인 이슈가 되어 있었다. 창성시 지방 언론은 물론이고 중앙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나는 분명 미리 와 있을 여선생과 아이들을 찾아 법정 안을 빙 둘러보았다.
그녀와 아이들은 방청석의 제일 앞줄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왼쪽 방청석 하나가 비어 있고, 그 좌석 위에 그녀의 손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며 자리를 잡아 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자리로 갔다.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가방을 들어 무릎 위에 얹었다. 그녀의 오른쪽으로 어린 마이클, 존, 웬디, 투틀즈, 슬리가 차례로 앉아 있었다. 나를 보고 마이클이 밝은 얼굴로 옆에 앉은 존에게 말했다.
― 환상의 새 의사 선생님이야.
마이클은 병원에서처럼 짧은 나무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와 긴장이 풀어지면서 잠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 선생님.
웬디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아이들을 보면서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갖다 댔다. 개정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이윽고 검사와 국선변호인이 먼저 법정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정리(廷吏)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사람의 판사가 들어와 판사석에 앉았다. 중간에 앉은 재판장이 사건번호와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이 법정 왼쪽의 쪽문을 통하여 들어와 판사 앞에 섰다. 소년에 대한 간략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실에서 본 강 검사가 아닌 다른 공판검사가 소년을 신문하기 시작했다.
― 〇〇〇〇년 11월 〇〇일 오후 2시경, 보호소년*은 창성시에 있는 해경병원에서 아버지를 병원 관계자 모르게 데리고 나왔지요?
― 예.
― 왜 나왔나요?
― 아빠가 가자고 했습니다. 아빠가 해적놀이하러 바다로 가자고 했습니다.
― 아버지는 전신마비 환자로서 말을 하지 못했는데, 보호소년은 어떻게 아버지가 말을 했다는 것인가요?
― 아빠가 제게 눈으로 말했습니다.
― 눈으로 하는 말을 보호소년은 어떻게 알아들었다는 말인가요?
― 아빠는 언젠가 바닷가에서 말했습니다. 바다의 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거라고. 마음을 모으면 느낌이 열리고, 느낌이 열리면 눈이 열린다고. 그래서 아빠가 말한 것처럼 마음을 모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들렸습니다.
― 그 아버지의 말이 해적놀이하러 바다로 가자던 것이었나요?
― 예.
― 걷지도 못하는 전신마비 아버지를 어떻게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나요?
― 아빠를 바퀴의자에 태워 비상구 계단을 통해 나왔습니다.
― 왜 비상구를 이용했나요?
―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누나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랬습니다.
― 어린 보호소년 혼자서 환자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끌고 비상구 계단을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내려왔나요?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 소년이 나와 함께 휠체어를 들고 내려왔다고 하면 큰일이었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소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마에서 땀이 났다.
― 제가 뒤에서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조심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 밖으로 나왔을 때 아무도 없었나요?
―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 선착장까지는 어떻게 갔나요?
다시 한번 조마조마했다. 내 차를 타고 갔다고 하면 어쩌나.
― 병원을 나와 산책길 지름길을 통해 큰 도로까지 나오니 택시 한 대가 왔습니다. 그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 택시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 그 전날 의사 선생님이 아빠의 엉덩이에 난 상처를 치료한 후 가운을 벗어 놓고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가운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훔쳐 두었습니다. 그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어 택시비를 주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환자를 태웠기 때문에 두 배로 달라고 하여, 할 수 없이 택시요금을 두 배로 더 주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진짜인 것처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까? 물론 소년이 저렇게 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다. 그러나 소년의 저 진술이 과연 거짓말일까? 소년의 마음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년은 스스로 건 최면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선착장에서 섬까지는 어떻게 갔나요?
― 지갑에 있는 돈으로 배를 탔습니다.
― 그 배의 요금이 얼마였나요?
― 학생인 제가 이천 원, 어른인 아빠가 사천 원이었습니다. 만 원짜리를 주고 사천 원을 거스름돈으로 돌려받았습니다.
나는 그 둔덕 뒤 길가에서 꼭꼭 접은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내보이던 소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 배를 내려 보호소년의 집으로 갔나요?
― 예.
― 집에서 무엇을 했나요?
― 저녁을 먹었습니다.
― 저녁은 누구와 함께 먹었나요?
― 아이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 아이들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나요?
― 마을 어른들이 계셨지만 밥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 저녁을 먹고 보호소년은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지요?
― 아닙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과 마을 어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요?
― 예.
― 다른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보호소년은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웠지요?
― 예.
― 왜 태웠나요?
― 아빠가 해적놀이 하자고 했습니다.
―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인가요?
― 예.
― 보호소년, 말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유독 그때만 말을 했다는 것인가요?
― 아빠의 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습니다. 아빠의 가슴에서 쿵쿵거리는 심장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보호소년은 아버지의 심장이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휠체어에 태웠다는 말인가요?
― 예.
― 보호소년은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모래사장으로 갔지요?
― 예.
― 무얼 하려고 갔나요?
― 해적놀이를 하려고요.
― 보호소년,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해적놀이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 해적놀이는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바다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아빠가 그렇게 말했어요.
― 그 말이라는 것도 아버지의 심장에서 나오는 말이었나요?
― 예.
― 보호소년은 그 모래사장에서 아버지를 낡은 목선에 태웠지요?
― 예.
― 그 목선은 누구의 배였나요?
― 아빠의 배였습니다.
― 보호소년은 그런 낡은 목선에 아버지를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냈지요?
― 아닙니다. 아빠가 그렇게 바다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빠의 말씀대로 해드렸습니다.
―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배에 태워 달라고 하였나요?
― 해적놀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배에 태워 주면 잠시 후에 해적 깃발을 달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 그 말도 보호소년이 아버지의 심장을 통하여 들은 말인가요?
― 그때는 아빠의 심장에 귀를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으로,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 보호소년, 전신마비 환자인 아버지가 어떻게 해적놀이를 한다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때까지 고분고분하게 신문을 하던 검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역정을 내며 말했다.
― 할 수 있어요. 아빠는 바다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검사 아저씨, 정말이에요. 해적놀이는 바다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아빠는 이제까지 한 번도 제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소년이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방청석에 앉아 있던 어린 마이클이 발딱 일어섰다. 그리고는 허리에서 나무칼을 빼 검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 맞아요. 피터 대장 말이 맞아요. 후크 선장이 해적놀이하자고 했어요. 나도 들었어요. 쿵쿵 해적놀이, 쿵쿵 해적놀이, 그랬단 말이에요.
이번에는 존이 발딱 일어섰다.
― 맞아요. 쿵쿵 해적놀이, 나도 들었어요.
이번에는 웬디가 일어섰다.
― 저도 들었어요.
투틀즈와 슬리가 동시에 일어섰다.
― 우리도 들었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 조용, 조용! 아니, 이 아이들이 어떻게 법정에 들어왔지? 이 아이들 보호자가 누굽니까?
중간에 앉은 재판장이 말했다. 판사는 물론이고 정리도 그때까지 아이들이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알고서도 그대로 놔두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일어서서 판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 아이들을 법정에 둘 수는 없어요. 데리고 나가세요.
― 판사님, 이애들은 저 아이와 같은 섬 아이들입니다. 같은 섬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자랐습니다. 형제처럼 같이 지내는 아이들입니다. 저는 이애들의 담임선생입니다. 판사님, 이애들이 저 아이의 재판을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이애들이 저 아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지 않습니까.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피고인석에 서 있는 소년을 ‘저 아이’라고 지칭하면서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재판장에게 부탁했다. 재판장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러나 한 번만 더 법정을 소란하게 하면 모두 퇴정 시키겠습니다. 주의하세요.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판사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절하고 아이들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이들이 골난 표정으로 힐끔거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판사에게는 공손하게 말했지만, 그러나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은 그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꼭 말아 쥔 두 주먹을 무릎에 얹은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판사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 그래서 보호소년은 해적놀이를 하기 위해 전신마비 아버지를 목선에 태웠나요?
― 예.
― 보호소년은 아버지를 목선에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냈지요?
― 아닙니다. 제가 떠내려 보낸 것이 아니라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빠가 말했습니다. 나를 배에 태워다오. 잠시 후 바람이 불면 해적 깃발을 달고 돌아오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 보호소년, 이곳은 엄숙한 법정이야. 네가 장난하는 곳이 아니야.
검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 장난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란 말이에요. 판사님이나 검사님은 저보다도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보았잖아요? 그런데 아이인 저도 들을 수 있는 아빠의 말을 왜 듣지 못하나요? 저보다도 훨씬 더 어른이면서…….
그때 또다시 마이클이 발딱 일어섰다.
― 맞아요. 후크 선장은 돌아온다고 했어요. 달님이 나한테 말했어요.
존이 일어섰다.
― 달님이 하는 얘기를 나도 들었어요.
투틀즈, 슬리가 동시에 일어서서 외쳤다.
― 우리도 들었어요. 달님이 말했단 말이에요.
웬디가 일어서서 두 팔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말했다.
― 맞아요. 큰 돛이 달린 배를 타고 오겠다고 했어요.
― 조용, 조용! 얘들이 도대체 왜 이래? 보호자, 한 번만 더 이러면 정말 퇴정 시키겠어요.
재판장이 신경질적으로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고는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앉은 채로 숨을 쌔근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여전히 꼭 말아 쥐고 있는 두 주먹이 무릎 위에서 바르르 떨렸다.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판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마이클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골이 나서 씩씩거리며 들고 있던 나무칼로 제 무릎을 툭툭 쳤다. 그녀가 말없이 마이클의 손을 꼭 잡았다.
― 그리고 보호소년에게 경고합니다. 검사의 말대로 이곳은 엄숙한 법정이에요. 아빠가 눈으로 했다는 얘기나 아빠의 심장이 했다는 그런 얘기는 이 법정에서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해요. 보호소년은 아빠가 직접 입으로 한 말이나 직접 몸으로 한 행동을 사실 그대로 얘기하세요. 이 법정은 보호소년의 머릿속 생각이나 상상을 얘기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검사는 계속 신문하세요.
재판장이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경고하고는 검사에게 말했다. 검사가 다시 소년을 신문했다.
― 보호소년은 아버지를 목선에 태워 바다로 보낸 후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 네버랜드 참호에 숨어서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 네버랜드 참호? 그것이 무엇인가요?
― 아빠와 해적놀이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피터 팬과 아이들의 네버랜드 은신처입니다.
― 그래서요? 그곳에서 보호소년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 제가 혼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모두 왔습니다.
― 이거 참, 그래 그곳에서 보호소년은 아이들과 함께 있었나요?
― 예.
― 그럼, 아버지의 말대로, 잠시 후 아버지가 정말 해적 깃발을 펄럭이며 돌아왔나요?
― 아뇨,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보호소년은 어떻게 했나요?
― 계속해서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아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 그 이유는요?
검사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빈정대는 표정으로 말했다.
― 아빠가 깊은 밤을 틈타 네버랜드를 기습 공격하기 위하여 우리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아빠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검사가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하, 하고 한숨을 토해 냈다. 검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 그런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요?
― 예.
― 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요?
― 그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빠가 오지 않는 것은 그 비바람 때문에 늦어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다행히 배는 뒤집히지 않았지만, 그 비바람 때문에 의식불명의 아버지가 추위에 떨다가 배 위에서 사망했지요? 보호소년이 아버지를 목선에 태워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배 위에서 그렇게 죽지는 않았겠지요?
― 경찰관 아저씨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아빠는 목선을 잘 몰았습니다. 배가 뒤집히지 않은 것은 아빠가 목선을 잘 몰았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진짜 후크 선장보다도 배를 더 잘 몰았습니다.
― 보호소년은 그때까지도 그 네버랜드 참호에 있었나요?
― 예, 아빠가 기습 공격을 해올 것 같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 늦은 밤이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지요?
― 예, 그래서 저는 새벽이 되어 바람이 잔잔해지면 아빠가 분명 네버랜드를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그 새벽이 되어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지요?
― 예. 그런데 아빠 대신 스미 갑판장이 왔습니다.
― 스미 갑판장은 누군가요?
― 아빠의 배, 해적선 졸리 로저호의 갑판장이었습니다.
― 정말 그 스미 갑판장이 왔더란 말인가요?
― 예, 스미 갑판장이 해적선을 타고 악어가죽 갑옷을 입고 왔습니다.
― 그 스미 갑판장이 무슨 말을 하던가요?
― 자기가 후크 선장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엄마를 노예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 그러니까 지금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보호소년이 아니라 그 스미 갑판장이라는 말인가요?
― 예. 그때 스미 갑판장이 분명히 말했습니다. 내가 후크 선장을 처치했다고.
― 보호소년, 왜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해? 넌 지금 꿈속 일을 실제로 착각하고 있어. 계속 이런 거짓말로 장난할 거야?
검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마이클이 또다시 발딱 일어섰다.
― 아니야. 스미 갑판장이 후크 선장을 해쳤어. 대장은 거짓말하지 않아. 대장은 피터 팬이야.
아이들이 동시에 일어서 입을 모아 함께 외쳤다.
― 맞아요. 피터 팬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 조용, 조용, 이 아이들 내보내요.
재판장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말하고는 정리를 손짓으로 불렀다. 정리가 아이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그녀가 발딱 일어서며 울부짖었다.
― 피터 팬 말이 맞아요. 피터 팬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피터 팬 말은 모두 진실이에요. 당신들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들이 이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어떻게 아냐고요?
그녀가 꼭 말아 쥔 주먹을 아래위로 흔들고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정리가 그녀의 팔을 잡고 끌었다.
― 이거 놔요.
그녀가 정리의 팔을 뿌리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깜짝 놀란 정리가 다시 그녀의 팔을 잡고 강제로 끌었다. 그녀가 다시 정리의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 그녀의 눈에서 소나기 같은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정리에게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거의 주저앉은 자세로 눈을 부릅뜨고 판사와 검사를 차례로 쏘아보며 울부짖었다.
― 당신들이 영혼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요? 당신들의 가슴에 영혼이 있기나 해요? 인간의 참된 영혼이 무엇인지 당신들이 알기나 하냐고요? 저 아이는 지금 아빠의 영혼과 교감하고 있는 거예요. 저 아이는 아빠의 영혼의 소리를 들었던 것이에요. 피터 팬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피터 팬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고요.
아이들도 그녀를 따라 함께 울부짖었다.
― 피터 팬은 거짓말을 안 해요.
― 피터 팬은 거짓말을 안 해요.
정리가 당황한 동작으로 그녀를 일으켜 강제로 끌었다. 다시 일어선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 이거 놔요. 내 발로 나갈 테니 끌지 말라고요.
그녀의 세찬 저항에 정리가 팔을 놓자, 이번에는 그녀가 소년을 바라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눈에서 폭포 같은 눈물이 흘렀다.
― 피터 팬, 선생님은 널 믿어. 선생님은 너의 영혼을 믿어. 너의 순수를 믿어. 아빠의 영혼도 믿어. 여기 있는 어른들은 너희들의 순수한 영혼을 재판할 자격이 없어. 어른들의 말에 굴복하지 마. 아빠의 영혼이 시키는 대로 해. 네 영혼이 시키는 대로 해. 피터 팬, 선생님은 너를 사랑해. 널, 사랑해. 잊지 마.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눈물을 흘리며 말을 마친 그녀는 이제 마이클의 왼손과 존의 오른손을 양손에 잡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 뒤를 웬디와 투틀즈, 슬리가 따랐다. 출입문에 당도한 마이클이 그녀에게 왼손을 잡힌 채 멈춰서 돌아보았다. 그녀도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웬디 등 나머지 아이들도 고개를 돌렸다. 소년과 그녀, 아이들의 눈길이 서로 오갔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소년을 보고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소년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마이클이 그녀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내어 손등으로 눈물을 쓱 문지르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나무칼을 빼 들었다. 마이클이 먼저 검사를 겨누고, 다시 칼끝을 판사에게 돌려 겨누며 당돌하게 말했다.
― 아저씨들은 나빠. 모두 다 거짓말쟁이들이야. 씨이~.
검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허허, 실소를 터트렸다. “거 참.” 누군가 방청석에서 탄식했다. 여선생과 아이들은 그렇게 법정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제 법정에는 소년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들의 소란이 가라앉자 검사가 다시 소년을 신문했다.
― 스미 갑판장이라는 것은 보호소년이 지어낸 말이지요?
― 아니에요. 스미 갑판장이 정말 왔단 말이에요. 해적선 돛대 꼭대기에 엄마가 매달려 있었어요. 분명히 보았어요.
― 그래서 보호소년은 어떻게 했나요?
― 그래서 저는 스미 갑판장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칼을 들고요.
― 보호소년이 피터 팬이 되어 스미 갑판장과 칼싸움을 했다는 말인가요?
― 예.
이제 검사는 소년을 아예 정신이 이상한 아이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검사는 오히려 소년과 어처구니없는 말싸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 그 칼싸움 결과는요?
― 제가 이겼어요. 제가 스미 갑판장의 악어가죽 갑옷 틈새로 가슴을 찔러 처치했어요.
― 그런데 보호소년이 처치한 그 스미 갑판장은 어디로 갔을까요?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참 만에 겨우 말했다.
― 몰라요.
― 보호소년이 봤다는 그 해적선은 어디로 갔을까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소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 몰라요.
검사가 근엄한 표정으로 신랄하게 추궁했다.
― 보호소년은 그날 아버지를 낡은 목선에 태워 바다로 떠내려 보냈지요? 그날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비가 내렸지요? 그래서 배 위에 있던 아버지가 추위에 정신을 잃고 죽었지요? 이제는 인정하지요?
소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긴장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아, 결국 저 아이가 버티지 못하는구나. 저 아이의 순수한 영혼이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마는구나. 안 돼. 피터 팬! 굴복하지 마. 아버지 후크 선장의 목소리를 들어 봐. 나는 속으로 외쳤다. 순간 소년이 고개를 치켜세웠다.
― 아닙니다. 그날 스미 갑판장이 아빠를 해치지 않았다면 아빠는 분명히 돌아왔을 겁니다. 검은 해적 깃발을 펄럭이며 돌아와 네버랜드를 공격해 왔을 겁니다. 나는 그런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 이상입니다.
검사의 신문에 대답하는 소년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울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꽉 미어지며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해적놀이를 한 소년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마음을 모으면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소년의 말을 생각이나 해볼까? 어린 자기도 들을 수 있는 아빠의 말을 어른들은 왜 듣지 못하느냐고 따지는 저 소년의 말을 판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여선생과 마찬가지로 내 눈에서도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소년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 선생님, 울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목선을 탄 아빠가 해적 깃발을 펄럭이며 네버랜드를 공격해 오는 그날을요.
나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만 법정을 나오고 말았다.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진정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통행로 옆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나무벤치에 그녀와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 환상의 새 의사 선생님이야. 선생님.
나를 먼저 발견한 웬디가 달려오고,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몰려왔다. 나는 두 팔을 가득 벌려 달려오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안았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도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코도 훌쩍거렸다. 어린 마이클이 고개를 뒤로 바짝 젖히고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 선생님은 왜 울어요?
― 으응?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틈을 두고 말했다.
― 후크 선장을 건강하게 치료해 주지 못해서…….
― 괜찮아요. 그래도 후크 선장을 보내 주셨잖아요.
투틀즈가 뚱뚱한 몸을 비틀어 보이며 우스꽝스럽게 말했다.
― 맞아요. 바퀴의자 둥지에 태워서요.
슬리가 휠체어를 미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 그래서 신나게 해적놀이를 한 걸요.
존이 말했다.
― 선생님은 환상의 새가 맞아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웬디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나는 선 채로 아이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쓰다듬어 주다가 돌아섰다. 내가 몇 걸음 걸어 나왔을 때 그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 저, 선생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 그날 일요일, 내가 서울 집에만 가지 않았더라도…….
소년이 그렇게 된 것이 마치 자기의 잘못인 것처럼 그녀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나는 차마 그녀를 쳐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날카로운 비수가 심장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속으로 아, 하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 피터 팬은 어떻게 될까요?
―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강 검사의 말이 떠올랐다. 존속살인죄, 그것은 형법전에 기재된 범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범죄 중의 하나가 아닌가? 자책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다시 한번 심장의 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보았다. 시리고 파란 하늘은 소년이 감내해야 할 아득한 영어(囹圄)의 시간만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끝내 그녀의 얼굴조차 마주 보지 못하고 그대로 걸어 나왔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 순수하고 천진한 아이들과 그 여선생의 눈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소년과 그 여선생, 아이들을 찾지 않았다. 그들도 나를 찾지 않았다.
* 보호소년 ; 형사재판에서의 ‘피고인’에 해당하는 말이다. 성인의 경우에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라고 부르지만, 이 소설에서와 같은 소년범의 경우 피고인이라는 호칭 대신 ‘보호소년’이라고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