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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요일 Nov 23. 2022

구겨진 하루를

D-6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그냥 혼자 마음의 정리랄 것이 필요한 것 같아


늦은 밤,

오늘따라 왠지 무겁게 밟히는 악셀 페달에

썩 좋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카페로 향했다.


축축이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카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어니언 베이글을 시키고

자리로 돌아와

집에서 가져온 한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오늘따라 이 책이 맛있어 보인다.


받아온 진동벨이 끝까지 안 울려서

주문한 커피와 베이글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였다.


커피 한 모금과

베이글 한 입,

그리고 책의 한 페이지를 천천히 씹으면서

오늘 하루의 끝 맛을 음미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그 세 가지를 함께 음미하다 보니

슬슬 배부름을 느꼈다.


카페를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에 내 복잡한 마음을

훠이훠이 날려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노래를 귀가 터지도록 크게 틀어놓고

근처 해안 도로로 핸들을 잡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어지럽게 흐트러진 생각들은 놓아주고

더 단단해져야 할 것들은 날아가지 않게 꽉 붙잡았다.


감사하면서 살자.


이렇게 자유롭게 내 생각들을 뛰어놀게 할 수 있는,

어쩌면 쉽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바다 가까이에

내가 살고 있다니.


바다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와중에

저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돌아오는 월요일엔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그래서 더욱더 파도가 진하게

내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파도 소리와 함께

스스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걸 원하는지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소함에 미소 지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한 후로

꽤나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무언가 걸린다.


공허함과 외로움이 때때로 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요즈음,

온전히 나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있다.


지친 내 스스로를 보면

나에게 처해진 상황을 탓했었는데,


정작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 건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꾹 잡아두었던 나였다.


오늘의 나는 왜 행복했는지,

왜 피곤했는지, 왜 예민했는지, 왜 우울했는지.


섬세하게 내 상태를 돌아보며

내 단단한 마음을 다시금 두드려보면서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지만,

오늘은 그냥 건너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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