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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요일 Nov 23. 2022

뜨거움 속 뜨거움은 따뜻함으로

D-457

  이미 무더운 여름 속에서도 다정함을 불러일으키며 기분을 좋게 만드는 뜨거운 촉감은 존재했다. 지독하게 뜨거운 날씨 속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 촉감. 뜨거움 속 뜨거움은 내게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빨래 개기. 뜨뜻하게 다 말려진 빨래들을 다시 새로 꺼내 입기 위해 잘 정리해 놓는 일. 이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환영이라 말을 건네고 싶다. 무언가 바쁜 일상에서 평온한 마음을 갖고 간신히 여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 앞에 놓인 뒤죽박죽의 갖가지 옷들을 아득히 쳐다보면서 이들을 어떠한 순서로, 어떠한 각과 모양으로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나 자신이 되게 단순하고 순수해 보이는 착각에 이른다. 내가 과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니, 나 되게 여유로운 사람이었네, 하며 자아도취에 빠지곤 한다. 이러한 착각마저도 이 순간만큼은 용서되기 마련이다. 여러 개의 수건과 속옷, 그리고 양말, 옷들은 온갖 것들이 섞인 무더기 속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영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아무리 말 없는 천, 면 쪼가리라 한들 자기들과 다른 촉감의 것들과 계속 붙어 있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어떤 것부터 반듯하게 펴 줄까나. 뒤집혀 있기도, 조금 구겨져 있기도 한 빨래 중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손에 집어 들어 뒤집힌 부분은 다시 원래대로 해주고, 조금 말려들어 간 곳이 있으면 잘 펴준다. 반듯하게 양옆으로 접어주기도 하고 돌돌 말아주기도 한 다음, 흐트러지지 않도록 모양을 만들어 주어 예쁘게 개어주면 끝이다. 그러면 이들은 옷 서랍 속에서 서로 부대끼는 일이 없게 된다. 이 과정을 여유롭게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하다 보면 눈앞은 깔별로 놓인 옷가지들로 하나의 작은 마을을 이룬다. 각각의 옷가지들이 각을 맞추어 동일한 촉감끼리 잘 쌓여 있는 모습들에 별안간 감격을 해버리는 나. 그러나 이 우아하고도 별 볼 일 없는 과업은 노래 두 곡이 채 끝나기 전 결실을 맺는다.

   

  빨래 개기의 핵심은 이 과업에 동반하는 내 여유로운 마음에 있다. 일상 속 단순한 것에서 비로소 여유를 찾고 싶어 하는 기질 때문에 건조기에서 빨래를 찾을 때면 아주 신이 나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극도로 꺼리기 일쑤이다. 빨래를 개는 것이 재미도 없을뿐더러 무척 귀찮고 지루하다고 느낀다. 물론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이 과업을 마주했다면 무심히 외면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나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대했다. 대게 스트레스성으로 다가오는 과업을 무척 기대되고 설레는 다가옴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 심산이었다.

    

  널브러진 빨래들을 앞에 두고 나는 먼저 바깥의 소음이 잘 들리지 않도록 귀를 완전히 막아버린다. 그 순간,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순식간에 혼자만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러고서 빨래를 갤 때만 특별히 들을 수 있는, 그냥 내 멋대로 그렇게 정해둔 한 곡의 노래를 트는 순간, 나는 이 노래와 이 과업의 하모니에 빠져든다. 주변에 아무런 이도 없이 나만 누릴 수 있는, 나 혼자만 초대된 파티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고서 파티에 걸맞게 나뿐만이 느낄 수 있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홀로 여유로운 춤사위를 펼친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쪼록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이렇게 사소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한 후로 나는 좀처럼 단 하루도 즐겁지 않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상의 단순함으로부터 여유로움을 찾아 오늘의 나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는, 따뜻한 촉감으로 날 반겨주는 그 짧은 순간은 내게 따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방금 나왔지만, 결국 따뜻하고 보드라운 촉감으로 내 손끝에 다가오는 그것들은 뜨거움 속에서 어떠한 것이 뜨거움인지 모르게 한다. 액자식 뜨거움은 결국 내용에 따뜻함을 담아냄을 나는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너무나 무더운 요즘 날, 오히려 서로를 뜨겁게 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쩍 예민해지는 하루 속에서, 차갑게 대하기보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내 앞에 놓인 뜨뜻하게 건조된 빨래들처럼 하루의 끝에 다정하고도 부드러운 촉감으로 타인에게 다가가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우리 모두 뜨거운 여름날을 뜨거움으로 맞서 산뜻하게 날려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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