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96
소심하게나마 반항심이 묻은 행동을 취했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이곳에서만큼은 강렬한 반항. 내가 그렇게 순진무구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 나도 성질이 만만찮게 더럽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내비쳐진 순간이었다. 불순함에 맞선 합리적 반항심, 결여된 인간성에 맞선 합리적 저항심은 내게 짜릿함을 선사했다. 연속되는 맹목적 순종 속의 어설프고도 소심한 반항은 무척 통쾌한 일탈이기에. 그러나 내 반항심이 온전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악의에 맞선 도전적 적대심이 튀어나온 것이 아닐까.
이곳에는 불쾌한 연기가 여러 군데서 마구마구 피어나는데, 어쩌면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일뿐더러 편견 따윈 집어치운 채 혐오하는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애석하게도 내 삐뚤어진 후각에서 그리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 어떤 상황에 한해서는 몹시 주변에 폐를 끼치는 그 무언가와 관련해서 나의 권리 행사를 위해 파생된 반항이었다.
욕할 거리를 찾아 신이 났는지, 어떤 사소한 문제 하나로 내게 핍박 아닌 핍박을 주고 있는 그날의 상황이었다. 무척이나 사납고 공격적이었으며, 꼬리를 바로 내리지 않은 내 대답에 대해 닦달을 해대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온전히 제 잘못입니다, 기분 나쁜 것 전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눈높이가 내가 더 위에 있는 탓에, 억지로 바닥을 향해 있는 눈동자와 푹 숙인 고개로 어쩔 수 없이 내가 그의 아래에 있음을 명백히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내뱉은 말과 속마음은 서로 성격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속에서는 어쩌면 그를 더 약 올릴 수 있는 시원시원한 말들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입 밖으로 나가지만 않았을 뿐, 힘들게 꾹꾹 눌러뒀던 터라 놓으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수 있었다.
불쾌함이 가득 찬 이야기에서 드디어 벗어났나 싶었던 찰나, 분이 다 안 풀렸는지 뒤를 돌아 다시 나를 바깥으로 불러냈다. 담배꽁초가 즐비해 있는 곳 위에 놓인 의자에 앉고서는 충고를 더 이어 나가려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래. 더 해봐라.’ 실컷 흘려들어 줄 생각에 마냥 기대감이 앞섰다. 아부를 더 세게 떨어줘야 할지, 조금만 버릇없어져 볼지에 관한 어처구니없는 고민에 휩싸이기 직전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충고랍시고 쏘아대는 꼴사나운 말들이 주절주절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느샌가 담배가 물려 있는 그의 입이 불쾌한 연기와 함께 허세에 찌든 충고들을 연거푸 뿜어댔다. 딱 내가 경멸하는, 하찮기 짝이 없는 자세를 취한 채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결국 순간적인 적개심이 나를 에워싸며 찌그러진 미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말들 끝에 갑자기 외딴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다기에, 겉으로는 몸을 꾸벅 앞으로 움츠리며 덧붙은 충고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지만, 속으로는 욕을 날렸다. 잘도 큰 도움이 될 것만 같았던 그 방법의 내용은 이랬다. 누군가 네게 무슨 말을 하면 이유가 없어도 죄송하다는 뜻을 먼저 밝히라는 것. 잘못이 없어도 냅다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는 것이 네가 살아남는 법이라고 우습게 지껄였다. 내겐 그저 뒤떨어지고도 구태의연한 궤변으로밖에 안 들렸다. 좀 전의 상황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아 그 문제에 관해 내 입장을 충분히 밝혔던 것이 무척 꼴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순전히 굴복하는 척으로 그 같잖은 충고들을 끊어냈다.
계속해서 하찮은 참견과 실속 없는 말들이 늘어지는 모습을 정중히 듣고만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그 이전에 내 면상 바로 앞에서 뿜어대는 못마땅한 연기에 이미 반항심이 가득 찬 머릿속이었다. 폐를 끼치는 것들에는 가차 없이 위아래가 없어지곤 하는 정신줄. 끝내 참지 못한 방어 기제 속에, 담배 물린 그의 입과 뿜어져 나오는 불쾌함을 앞에 두고 찌그러진 표정과 함께 의자를 잡고 뒤로 물러났다. 거리낌 없이 불쾌한 기색을 내보이며 그에게서 멀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 고약함에서 벗어나기 부족했는지, 중간에 한 번 더 의자를 뒤로 끌어내 앉고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순응을 내보였다. 몹시 경멸하는 냄새를 가까이서 억지로 맡고 있기에는 도저히 내 순결한 후각이 용납하지 못했다. 그 불쾌한 악취를 맡지 않을 권리가 내겐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은근슬쩍 반항심을 드러낸 내 행동에 기분이 조금 나빴는지, 그의 얼굴은 자그마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어찌나 심장이 쫄깃하면서도 통쾌하던지.
숨길 수 없었던, 어쩌면 합리적 반항심이 조금이라도 묻어 나온 나의 행동 이후에 그가 했던 역겨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옛날 성격 나오게 하지 말라던, 하찮은 체면치레에 불과한 그 보잘것없는 문장이 아직도 애잔하게 들린다. 어째서 우월감에 사로잡혀 그러한 말들을 내뱉는 것일까. 어째서 오해를 풀 생각은 추호도 없이 무턱대고 핍박부터 해대는 것일까. 과거에만 머무르려 하는 어리석음이 이 외딴곳을 더 후퇴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는지. 변화를 꾀할 생각이 전혀 없는, 회귀하려고만 하는 구태의연한 머릿속은 대체 무엇으로 가득 찼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이보다 더 다양하게 결여된 인간성이 눈에 잡혀가고 있는 탓에, 더 큰 적개심과 반항심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여 있는 어설픈 집합체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맹목적 순종 속에서 내뱉던 인사치레가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 하고 있으니. 바싹 마른 입술 뒤로 합리적 반항심이 잔뜩 묻은 문장들만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금세 삼켜내려 애쓰는 중이다. 그런 인간들로 인해 쓸모없는 적의를 내 안에 둘 필요가 없기에, 괜히 내 마음을 애써 태우지 않는다. 어설픈 인간들에게는 어설프게 대하면 된다. 어설픈 인간들은 결국 어설픈 삶을 살 뿐이니까. 남들을 이유 없이 험담하고 깎아내리는 데 삶의 가치를 두는 그들에게 괜한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외려 그들 덕분에 내 정신과 마음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져만 갈 뿐이다. 그들의 악행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애석함이 내 온몸을 감싼다. 저렇게도 살아갈 수 있음에 인간 결여의 신선함을 깨달으며 웃음이 절로 나는 것이다. 간혹 적대심이 내 속에서 툭 튀어나와 그들을 향해 도전적인 성격을 띠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 또한 별다른 노력 없이 그들을 어설프게 대할 뿐이니까. 다만 이곳에서는 나의 그 어설픔이 반항심으로 치부된다. '합리적'이라는 낱말을 내가 그 앞에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온갖 부조리와 악행에서도 맹목적 순종만이 시류에 올라타는 더러운 곳이니 내가 조심히 해줄 수밖에. 경멸하는 것들에는 애써 아첨하지 않는 냉철한 인간이라, 즐겁게 삼켜내며 나 자신을 더욱 가꿔나가는 데 주력할 따름이다.
어설픈 인간들에 맞서 어설퍼지는 내 감정은 반항이라는 가면이 씌워진 채 이곳을 힘겹게 살아간다. 또 한 번 삼켜내는 것은 그 어설픔이 낳는 그들의 쓸모없는 참견이다. 그들은 나를 괴로움에 빠뜨리려 안간힘을 쓰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한다.
이처럼 주변의 흥미로운 결여는 우릴 더 자극할 뿐, 결코 우리 인생에 있어 불순물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자격이 없다. 그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더 나은 시각을 갖도록 하는 희생양일 뿐이다. 결국엔 그들의 가련한 삶만이 더 어설퍼질 뿐이니, 괜히 속에 담아두며 나 자신을 고통으로 내몰 필요가 없다. 고통은 그들이 받을 터이니. 우리는 단지 불순한 것들을 과감히 뱉어버리고, 순결한 목구멍 너머로 즐겁게 그 어설픔을 삼켜내면 그만이다. 우린 우리대로 어설프지 않게 잘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