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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요일 Nov 25. 2022

아픔, 눈물, 젖어가는 우리

D-403

  눈물을 사랑해서. 눈물로 무언가를 두둑이 채워 넣는 순간을 사랑해서. 나의 가련하고도 너절한 마음이라던가, 내 앞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병든 마음이라던가. 누군가의 공허함을 눈물로 달래주는 것. 따뜻함을 좋아해서, 되도록 따스한 눈물과 말로 내가 아끼는 사람의 괴로움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   

   

  이토록 눈물로 채워지는 관계 너머의 애틋함을 소중히 하는 인간의 속에는, 준비된 울음이 쌓여만 간다. 언제 쓰일지 몰라 맘 깊숙이 슬픔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나지만, 매번 금방이면 넘쳐버릴 듯이 차올라 하품만 해도 눈 주변이 흥건해진다.     


  그러나 나의 좁지만 깊은 관계는 이미 눈물로 부족함 없이 채워져 있는 터라 더이상 얕아질 겨를이 없어 보인다. 알코올이 섞인 눈물로 가득 찬 우리 관계는 몹시 심오하고 불투명한 탓에, 다른 누군가가 들춰볼 수도 없다. 무언가를 더 채울 틈도 없이 너무도 깊어진 우리의 관계. 이렇듯 나는 눈물로 많은 것을 덮어버리고 쌓아버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썩 깊지 못한 얕은 관계가 내게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가벼운 관계는 아직 많은 것이 들어있지 못하다. 기어코 속에 쌓아뒀던 눈물이 드디어 쓰일 때가 온 것. 이러한 관계가 더욱 깊고 진해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겐 많은 양의 눈물이 필요하다. '눈물'이라고 하는 감정 섞인 액체가 우리 사이를 강하게 잡아당기기에. 아픈 눈물과 혼합된 사랑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드니까.      


  그래서 알코올을 좋아한다. 적당한 알코올과 동반되는 우리만의 눈물 섞인 이야기는 서로를 짙은 풍부함 속에 빠뜨린다. 다소 진지한 어투로 상대에게 전하는 가슴 아픈 무언가는 결국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위로로써 엄숙히 다가간다.      


  내 통증에 한 잔, 네 통증에 한 잔.      


  여러 차례 서로의 통증에 흐느끼다 보면 우리는 어쩌면 눈물이 희석된 알코올에 흠뻑 젖는다. 취기 속에서 마음의 빗장을 풀어헤치는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욱이 깊어져만 간다.      


  그토록 찾았던 우리의 진실된 모습. 많은 양의 눈물로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단지 그러지 않을 뿐이었던 안일한 관계. 그런 관계만을 애태우며 기다리다 지쳐버린 나는, 그에 걸맞은 인간을 찾자마자 곧바로 상대를 짙은 눈물에 담가버린다. 적당한 외로움에 휩싸였던 것처럼 보이는 인간은 계속해서 눈물 한 잔과 알코올 한 방울을 삼킨다. 그러고서 눈 밑으로 그것들을 조용히 흘려버린다. 눈앞에 잔을 떨어뜨리며 우리의 몸과 정신을 축축이 적셔버리기까지. 구별이 잘되지 않는다. 우리는 뭔지 모르는 액체의 무언가에 푹 빠질 뿐이라서. 눈물은 단지 내 꽉 찬 눈물샘에서 무심히 쫓겨나와 바깥으로 버려질 뿐이라서. 눈물이든 알코올이든 우리의 얕은 관계를 무언가로 채워 그 속을 깊게 만들면 그만이라서.     


  그렇게 흠뻑 젖은 채로 마시는 알코올은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눈물에도 특별히 무언가가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서로의 통증에 취해 우리 외의 다른 것들을 제대로 식별하기가 어렵다. 계속해서 우리는 서로의 통증에 건배한다. 반복적으로 상대의 아픔을 감싸주다 보니 괜스레 내가 더 아프다. 술잔에 피 한 방울이 섞여 들어가 버린 것일까. 갈수록 피 맛이 나는 듯해서. 서로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아낌없이 받아 마셔주는 것만 같아서. 고통을 대신 느끼고 싶어 하는 우리. 그냥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알코올을 빌려 내게 전해주는 통증들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지금껏 꾹꾹 참아왔던 상처를 내게 들켜버린 탓에, 눈물샘에서는 나가지 못해 안달 난 물들이 신이 나서 그곳을 빠져나온다. 서로의 통증에 아릿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기에, 상대방의 미세한 감정의 떨림이 나의 눈물샘을 툭툭 쳐버린다. 공유되고 마는 우리의 숨겨둔 아픔과 슬픔들. 우리 사이는 난데없이 바깥을 노니는 눈물로 가득 차,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흠뻑 젖는다. 퇴영적 상태였던 눈물이 진취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상황. 눈물이 우리의 안면을 흥건히 적시며 눈 앞을 가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가운데, 피와 눈물이 섞인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아픔을 마시고 있는 아찔한 순간, 드디어 우리가 깊은 관계에 도달했음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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