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79
수술이 끝난 뒤에는 다시 병실로 돌아와 무뎌진 병상 위에 그대로 힘없이 고꾸라졌다. 너저분해진 수술용 환의와 마취가 덜 풀려 모호해진 정신은 멍하니 애꿎은 천장만을 향한 채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눈 옆으로 몇 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그 액체는 어느새 귓속으로 들어가 속을 축축이 적셨다. 수영 후에 귀에 들어간 물을 옆으로 기울여 무심히 툭툭 빼내듯, 누워있는 채로 살포시 고개만 틀어 좁은 구멍으로 숨어버린 슬픔을 마지못해 덜어냈다. 몸을 크게 움직이지 못하는 탓에 갑작스레 흘러버린 눈물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못했다. 오랜 금식으로 인해 괜스레 달콤한 것에 구미가 당겼는지 문득 어릴 적의 기억이 스쳤는데, 마침내 그 회상으로부터 비롯된 서글픔이 좀처럼 힘이 없는 육체와 정신을 비집고 흘러나온 듯 보였다.
병상 끝에 눕힌 눈시울을 금세 붉어지도록 만든 건, 소박함과 애틋함이 혼재된 어릴 적의 우리였다. 조그맣던 우리는 특별한 날에 여러 과자를 품속에 두며 한꺼번에 많은 당분과 행복감을 함께 흡입하곤 했다. 어째선지 그 순간만큼은 설탕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쓴 듯 달콤함의 환락에 취해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주 갖진 못했던 그 특별함은 단순하고도 까다로운 조건을 품었는데, 그 풍부한 달콤함을 쟁취하기 위해선 나 또한 학교로부터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했다. 보통의 종이보단 두꺼우며 궁서체의 진지함으로 한 사람의 칭찬을 이리저리 적어놓은 소중한 종이 쪼가리. 꽤나 얻기 힘든 그 종이를 누나와 각각 하나씩, 총 두 장을 받아오면 그 특별한 하루가 성사되는, 어쩌면 모두가 나쁠 것이 없는 우리만의 달콤한 약속이었다.
그 달콤함을 향유하기 위해서 나는 하루빨리 하교하는 가방 속 책들 사이에 뿌듯함이 끼워져 있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내가 먼저 손에 쥐었을 때는 남은 한 장의 소식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고서 비로소 두 장이 모두 모였을 때 부모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보물이라도 찾은 듯 세차게 달려나갔다. 여러 종류의 단맛을 한곳에 모아놓고서 다 함께 앉아 단란한 분위기 속에 그 다양함을 음미하는, 어찌 보면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작고 소박한 자리였다. 그러나 우리만의 조그마한 기쁨이 그 널브러져 있는 단맛 곳곳에 희석되어 있었다. 뿌듯함이 입안 가득 퍼져나가며 달콤한 향기를 속에 내뿜었는데 그 느낌이 바삭했다. 받아온 종이에는 매번 다른 칭찬이 적혀 있었고, 그 위로는 매번 다른 과자의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 소박한 자리는 차츰 사라져 갔다. 어느샌가 저마다의 바쁨과 치열함 속에 우리만의 달콤한 약속은 없던 일이 됐다.
그때만이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애틋함에 금세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병상 위에 딱 붙어 있던 등이 저절로 들렸다. 그 소박함 속에 우리만의 애틋함이 피어있었다는 사실에 눈시울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부족함 속에 어렵게나마 피었던 사랑의 기억이 지금의 내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이다. 오랜 기억 속 애틋함이 자아낸 여운이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며 외딴곳에 홀로 놓인 나를 한없이 처량하게 만들기 위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무력함에 건조해진 낯에는 침울함만이 떠올랐다. 창 너머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를 내보였지만, 발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그 의지를 무참히 꺾어버렸다. 외려 그 통증은 나를 가만히 병상 위에 내버려 두며 불온한 상상에 더 깊고 심오하게 잠기도록 나를 부추겼다.
항생제는 달콤하지 않았다. 불쾌하고도 시원한 느낌을 주며 피부를 뚫고 들어와서는 무기력함을 머리끝까지 전했다. 곧바로 온몸이 축 늘어졌다. 잠시만 외로움이라는 병에 시달리라는 듯이 완전히 나를 고립시켰다. 주변과의 접촉이 일절 존재하지 않도록 내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는 병상 가림 커튼마저 그 고립을 더욱 확실하게 굳히는 듯했다. 외딴곳 속에서도 또 다른 외딴곳에 놓여 온갖 악감정에 휩싸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것들은 나를 완전히 옭아맸다. 옆에 슬며시 놓인 ‘낙상 주의’라는 네 글자가 처음으로 가슴에 꽂혔다. 정말 금방이라도 떨어질 수 있었다. 조금만 놓으면 외로움이라는 절망 속으로 무참히 빠져버릴 것만 같은 기묘함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분명히 주의가 필요했다. 병실 전체에 흐르는 고요함 또한 외려 더 큰 비명으로 다가왔다. 이곳은 흥미로움이랄 만한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은 편협함에 휩싸여 더 엉망진창이 돼버렸고, 발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통증이 악랄한 형태를 갖춘 채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왔다. 세균을 억제하려 내 몸속으로 들어온 항생제가 썩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행이라는 나쁜 감정을 죽이지는 못했으니까. 외려 부작용으로 더 큰 무기력함을 지닌 채 내 몸속을 마음껏 쏘다녔다. 어쩌면 외로움은 나쁜 감정이 아니기에 억제하지 못했나 싶은 망상이 들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실 한편에서 방황하고 있는 정신과 육체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든 마음을 가진 한 인간이 이곳에 고립되어 있음을 누구라도 눈치챘으면 했다. 그 무엇도 탐탁지 않았다. 바깥을 향한 갈망의 크기는 종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허망함에 짓눌린 텁텁한 공기가 내 주변을 맴돌며 절망감을 배가했다. 더러 발끝의 아픔을 에워싸고 있는 답답함은 쌓일 대로 쌓인 권태를 더욱 자극했고, 그 압박감이 온몸에 휘감겨져 나를 옥죄는 것만 같았다. 이전의 자질구레한 일상이 그리울 만큼 무척이나 영양가 없는 하루에 스스로가 싫어졌다. 차라리 얼토당토않은 망상이 진짜였으면 싶었다. 항생제가 외로움이라는 썩어빠진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이유. 좀처럼 사라지지 않던 그 의문이 다시금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세균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들었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그저 더러운 세균 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항생제는 좀처럼 내 몸속에서 그러한 세균 덩어리를 죽이지 못했고, 외려 부작용으로 악랄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항생제로도 죽이지 못한 외로움은 나쁜 감정이 아닌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내 마음대로 '고독'을 외로움으로 받아들이고서는 마냥 세균 덩어리의 악행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 아닐까.
날이 거듭될수록 외로움보단 고독이었다. 그것이 내 상황에 적확한 표현임이 분명한 듯 보였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이는 편이 내가 더 이상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낙상 주의가 내 눈에 밟히지 않게 하려면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바라던 상황은 아니지만, 결국은 스스로 자처한 고독이었다. 내가 단단히 착각했다. 외로움은 홀로 놓인 인간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며 고통 속에 비참히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만, 고독은 외려 내면의 풍부함을 관조하도록 내버려 둔다. 고독은 깊은 고뇌에 빠지게 하며,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 인간의 머릿속을 예술적으로 꾸민다. 그렇기에 고독이 확실했다. 고독이 내게서 외로움을 조금 끄집어내긴 했지만, 그보다 더욱 화려한 감정을 불러냈다. 불온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안온함 속에서 희망감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외로움이었다면 못했을 게 분명했다. 고독이었기에, 마냥 홀로 있는 상태에 불과한 고독이었기에 가능했다. 고통과 통증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잡념에 빠지며 과거로의 회상과 미래로의 희망 또한 목도할 수 있었기에 나는 고독에 빠진 인간임이 확실했다. 미묘하게 거칠긴 했지만 외로움과는 달리 고독은 나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건넸다. 고독이 내 손에 펜을 쥐여줬고, 어렴풋이 뇌리를 마구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과 잡념들을 끄적이도록 이끌었으며, 기어코 여기까지 끌고 와서는 나를 모르는 체했다.
자발적 고립이었다. 애석하게도 스스로가 자처한 고독이었다. 간만에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내가 직접 물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홀로 있는 순간을 내면과의 긴밀한 대화로 끌어올리며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확실했다. 예술가는 운명적으로 고독을 곁에 둘 수밖에 없다. 주어진 삶을 미친 듯이 버티며 그려나가야만 하는 예술가인 우리에게도 고독은 간간이 필요하다. 고독은 나쁜 세균 덩어리 같은 것이 아닌, 여유로운 인간이 한없이 즐길 수 있는 감정이니까. 내게 고요함이 더 큰 비명으로 다가온 것, 바깥을 향한 갈망의 크기가 커져만 간 것, 어릴 적의 애틋함이 떠올라 눈시울에 이슬이 맺힌 것. 아니, 애당초 내면의 상태를 저런 식으로 이상한 낱말들을 조합해 표현한 것. 이것들은 모두가 고독 속에서 기꺼이 일구어낸 감정의 산물이었다.
내 주위를 가로막는 병상 가림 커튼이 그 고독의 우아함을 더욱 극대화했고, 항생제는 달콤한 것이 맞았다. 긴 고독 속에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을 갖도록 나를 애써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달콤한 항생제, 외로움이 아닌 고독에 빠져있던 인간, 내면을 긁어낸 흔적이 역력한 메모장 속 출혈의 자국, 결국엔 그것들이 일구어낸 이 독단적인 낱말들과 문장들. 스스로 외로움을 제쳐둔 채 내 손으로 직접 고독을 쥐어짜 냈고, 고독은 내면의 아픔과 사랑을 긁어냈다. 아직 고독을 제대로 즐기기에는 한참 엉성한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의 순간임을 몇 번이고 되씹고 음미하며, 고독과 더 가까이 지내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외로움과 착각하지 않으며 고독을 실망시키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외로움의 감각적 실재에서 벗어나 쓸쓸함 속에 환락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가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니까. 외로움에 속지 않는 것. 달콤한 외로움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독함 속의 진정한 단맛을 음미하며 의연하게 맞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단한 삶을 헤엄쳐 나가는 우리 같은 예술가들에게 꼭 필요한 또 하나의 생존 수영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