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57
나무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의 말에 나는 주저 없이 땅바닥에 앉아 새하얀 종이 위에 대뜸 나무 한 그루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이 그림 그리며 낙서하듯 나 또한 별생각 없이 연필 끝으로 하얀 몸을 마구 간지럽혔다. 금세 그 괴롭힘은 종이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퍼져나갔고, 고도의 세심함과 더해져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가 눈앞에서 외로이 자라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밑에는 날카롭고 굵은 뿌리가 자리했고, 명암으로 표현된 그림자가 그 옆에서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소싯적에 뭣도 모르고 화가를 꿈꾸기도 했던 인간 앞에 그렇게 한 그루의 나무가 삽시간에 종이 위로 웅장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서 몇 분 뒤, 그가 조용한 방으로 나를 은밀히 불러냈다. 텅 빈 방 속 외딴 책상에서 우리는 그 그림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앉았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그의 시선은 내가 그린 나무로 향했다. 그는 내 그림 속 나무를 뚫어져라 보고는 흠칫하며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 주름이 사방으로 찌그러지며 알게 모르게 심오함을 드러냈는데, 곧이어 그가 경직된 입주름을 피며 말을 꺼냈다.
"지금 나무가 종이를 꽉 채우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무척 크게 그렸단 말이죠?"
내가 봐도 나무가 A4 용지를 가득 채울 만큼 크게 그려져 있었다. 물만 좀 더 뿌려주면 금방이라도 나뭇가지가 종이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어쩌면 미완인 상태로 마무리된 그림으로 보이기도 했다. 곧바로 그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 보면 나뭇잎들로 그 속을 완전히 빼곡하게 채워 넣었어요. 빈틈이 안 보여요."
실제로 나는 나뭇잎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다 그렸다. 나무속에 허전함이 존재하지 않게끔 빼곡히 그 속을 잎으로 채워 넣었던 나였다. 나무 끝까지 차오른 잎들은 얼핏 봐도 그 수가 족히 몇백 개는 되어 보였다. 그는 다시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꺼냈다.
"생각이 엄청 많은 것 같아요. 고민도 많아 보이고...."
예상치 못했던 그의 말에 조금 놀랐지만, 그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반갑게 대답했다.
"아, 네..."
"맞습니다. 미래에 관한 생각이나 제가 앞으로 뭐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에서 무얼 얻어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고요. 제 나름대로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낭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그냥 그런 것들에 관해서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습니다."
절절한 투로 종이가 나무에 잡아먹힌 이유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가 내 말을 듣고는 다시 그림을 보고 또 말을 이었다.
"여기 뿌리를 보면, 크고 단단한 나무뿌리가 땅을 잡아주고 있는데 이게 불안하다는 증거거든요. 혹시 불안한가요?"
내 눈에도 그림 속에서 무척 굵고 장엄한 뿌리가 큰 나무를 힘겹게 지탱해 주며 몰래 땅 밑으로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요.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스스로 의심했다. 사실 복잡한 생각들과 고민들이 결국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기에 내가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깨닫는 중이었다.
"뭐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이라던가 뭐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것이 있다던가 그런 거 있잖아요. 정말 불안한 게 없나요?"
"네. 불안한 건 전혀 없습니다."
거짓말이었다. 불안하지 않을 수 없는 나무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종이 주위로 뿜어져 나왔다.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이라기보다는, 남들에게 싫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무지 애쓰는, 조금의 실수에도 나를 미워하진 않을까 생각하는 그러한 불안들이 그 뒤에 항상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항상 나를 몰아댔다. 하루도 빠짐없이 미래를 계획하고 걱정하며 온종일 근심에 빠지는 나였다. 어쩌면 정말 장차 생명에 위협이 될 것만도 같았다. 그렇기에 그에게 털어놓은 대답은 솔직한 감정이 아니었다. 왜인지 그날은 마냥 방을 회피하고 나와 얼른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더군다나 살면서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인간이었기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거부 반응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니 그가 한시름 놓으며 말했다.
"그럼 상담할 필요 없네요."
그 말을 듣고서는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씩씩한 뒷모습을 그에게 보이며 방을 나왔다. 그러고는 혼자 터벅터벅 방으로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하품으로 나오는 눈물 같으면서도 무언가 모르게 씁쓸함이 희석된 액체가 눈에서 조금 삐져나왔다. 도통 그 눈물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고, 어느새 방 한가득 채워진 스산한 기운이 한 인간을 따돌렸다. 그렇게 갑작스레 싸늘한 외로움이 느껴지며, 이유 없이 눈물이 삐죽 흘러나왔다. 별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이 무척 많은 인간임을 알아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던 것에 감격한 듯했다. 순식간에 방 내부의 공기로부터 완전히 따돌림을 당하며 홀로 깊은 상념에 다시금 푹 잠겼다. 그렇게 나는 그날 그렸던 나무 그림에 또 한 번 나뭇잎을 덧칠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나서도 계속 그 그림 속 나무가 눈에 아른거렸다. 엉뚱한 의미 부여가 아닌가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조금 과했던 나무의 모습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한낱 나무 한 그루로 내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본 것에 마냥 감격스러운 마음이 컸다. 이러한 의구심을 이어 나가 나는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했던 그 검사는 집-나무-사람 검사(HTP)라고 하는 미술 심리 테스트였다. 인격의 양성을 측정하기 위해 설계된 투영 검사법으로 심리 상담을 할 때 흔히 사용되는 검사였다. 내가 그렸던 나무 그림은 그중의 'T'였다. 그림 속 나무는 그리는 그 사람 자체를 의미했고, 지금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현재까지의 삶을 반영했다. 따라서 나무 그림은 한 사람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날 활용되었고, 나는 나무를 그려보라는 분명하지 않은 짧은 지시에 응하고서 흰 종이 위에 내 내면을 자연스레 투영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나무 그림을 통해 해석될 수 있는 요소들은 무수히 많은데, 크게는 뿌리, 줄기, 가지, 잎이며 전체적인 나무의 형태와 모습도 그에 포함됐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자존감이나 인간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방향도 어느 정도 제시해 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그날 내 앞에 외로이 자라났던 것이었다. 언뜻 보면 그날은, 그림이 아닌 내 속을 비추는 거울을 손수 제작했던 날이었다.
투영 검사법인 나무 그림 검사의 결과 해석은 실험자에 따라 주관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따라서 정답도 없을뿐더러 그의 말에는 어쩔 수 없이 주관이 개입되었기에, 나는 여러 해석을 참고해 공통된 해석으로 내가 그렸던 나무에 관해 다시 한번 파헤쳐 보려 했다. 그러나 너무도 제각각이고 추상적인 탓에 마땅한 해석을 찾진 못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었다.
"뿌리를 강조해서 그렸다면 자신감이 풍부한 사람이다. 하지만 뿌리가 뾰족하고 날카롭다면 외적으로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지만, 내적으론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나뭇가지에 달린 잎을 하나씩 자세하게 그려서 채웠다면 기본적으로 불안장애가 있다고 볼 수 있으며, 현실에서 강박증이나 결벽증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잎은 지성과 생명력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잎을 많이 그렸다면 대체로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희망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장황한 해석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했다. 이처럼 내 나무 그림이 무엇을 뿜어내는지를 여러 곳에서 힘들게 찾아보던 중, 문득 한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내가 대차게 하는 정보 수집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불필요한 처사라는 깨달음이었다. 내 나무가 어떤 상태인지 집요하게 알아보는 행위가 스스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문득 깨우치고 만 것이다. 요즘 들어 MBTI에 과몰입한 나머지 주체적인 인간의 성격을 단순히 그 알파벳에 꿰맞추며, 자신을 되레 속이는 현상을 무수히 목격하고 있던 탓에 이 나무 그림 해석도 그와 똑같다고 느꼈다. 냉담한 해석들에 괜스레 침전되고 있는 내 마음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한 자세한 평가들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나는 그날 누군가가 그림을 빌미로 한 사람을 알아봐 준 것에 감격했던 것뿐이었다.
어차피 내 나무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느닷없이 또다시 누군가 내게 분명하지 않은 짧은 지시로 나무를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그날과 똑같은 나무를 그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당일의 기분 상태와 주변 환경에 따라 조금의 변형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나무의 형태와 모습은 똑같을 것이 확실했다. 하물며 우리가 그 속에서 그리는 나무는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닌, 학습을 통해 얻은 모양을 그리는 것이기에 더더욱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따라서 내 나무는 그 자체로 온전히 내 것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내면의 아름다움만은 사라지지 않듯, 내 나무도 그저 그 자체로 바뀌지 않는, 고상한 나의 풍부한 내면세계였다.
뿌리가 날카롭든, 잎이 지나치게 많든, 나무가 지나치게 크든 간에 결국 그 나무는 나의 변하지 않는 내면의 모습이었다. 부러지지 않는 이상 언제 어디서 찍든 크게 변하지 않는 X선 사진처럼, 한 인간의 속 모습을 바깥으로 끄집어낸 한 장의 그림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내 나무의 아름다움을 지키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그 모습을 존중하며, 외려 더 소중히 가꿔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나무는 바뀌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 것이기에,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바라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불안해 보이는 내 나무가 어떤 것들을 내포하는지에 관한 해석들은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 나무의 모습에 대한 냉소한 평가들에 괜히 혼자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긍정적 평가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불필요한 자만과 나태에도 나 자신을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혼자 스스로 의심하며 쓸데없는 걱정에 쩔쩔매기 싫었기에, 이미 충분히 크고 복잡한 나무 곁에 또 다른 심오한 가시덩굴을 심을 여유는 없다고 느꼈다. 설령 정말로 불안하다 하더라도 남들이 그 그림을 고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쳐도 내가 직접 가지를 부러뜨리고 잎을 잘라내며 스스로 바꿔야 하기에, 그렇게 나는 주위를 둘러싼 불필요한 잔가시들로부터 내 소중한 내면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다.
얼마 전, 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못했던 가장 오랜 친구가 내 나무를 보러 와주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내 나무를 바라봐 주고 그 곁을 잠시 머물며, 따스한 손길로 잎을 쓰다듬어 줬다. 그 덕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가지들과 금방이라도 썩어버릴 듯한 잎들이 위로받으며 다시 싱그러움을 회복했다. 그녀는 지쳐 있던 내게 시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뜨겁진 않은 물을 군데군데 뿌려주며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나의 날카로운 가지들은 힘을 축 빼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나의 크고 복잡한 나무에 대해 괜찮냐고 물어봐 줬던 그와 그녀는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부러뜨리며 내 내면을 갉아먹는 인간이 아닌, 온전히 내 나무를 인정하고 그저 곁에서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내게 필요했다는 것을. 어쩌면 복잡한 무언가로 둔갑한 내 나무의 심연을 그저 들여다봐 주는 사람들의 곁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로써 실마리가 풀렸다. 그날, 그와의 짧은 대화 속의 나는 단지 악취를 풍기는 썩어버린 은행잎을 조심스레 털어놓는 은행나무였다. 잘 심겨 있는지, 흔들리지는 않는지에 대해 내 상태를 검사받는 것이 아닌, 그저 간절했던 지나가는 인간과의 눈맞춤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 장의 나무 그림을 통해 변하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나무를 향한 냉담한 평가들에 현혹되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닌, 내 나무를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나무 그림 속에서 대화와 공감을 갈구하고 있는 한 인간의 뻗은 두 팔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나무 끝까지 차오른 무성한 잎들을 맘 편히 털어놓을 곳이 내게 필요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짧은 대화와 나무 그림이 내게 많은 것을 안겨줬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내 나무를 의심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불안정한 자세에 흔들리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믿고 지켜내자고. 어쩌면 기이한 모습을 가진 나의 복잡한 나무를 사랑하자고. 지나치게 잎과 가지가 많고 굵고 첨예한 뿌리를 가졌지만,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고, 그것이 나 그 자체임을. 내 안의 불안, 걱정, 고민들은 그 자체로 내 나무의 형태일 뿐이고, 자연스레 피어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는, 그저 숱한 변화의 한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내 나무 그림 속에는 은밀한 성장이 깃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잎과 가지의 지나친 풍부함이 외려 더 넓은 들판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며, 나무가 어울리는 들판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내 나무가 그 어떤 나무보다도 안정적이고 아름다움을 지녔음을 또 한 번 온몸으로 느끼며 나의 모습을 그대로 믿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무속에 싱그러운 나뭇잎을 덧칠해 나가며 더욱 그 짙음을 배가시키고 있다. 아무리 굵은 상념의 흑연 가루로 그림 속을 더럽힌다 한들 내 나무의 아름다움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나무임을 기어코 내게 들키고 말았으니. 하지만 더 큰 종이를 가져와야 할 것 같다. 얼마나 내 나무가 더 크게 성장할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