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26화

사람을 깔보면 죽는다.

-‘지금의 나’가 있게 된 계기랄까?!

by 이태승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종과 주인>(김남주)


네가 내게 ㄱ자를 가르쳐줬나. ㄱ자를 가르쳐줘야 알지. 왜 ㄱ자를 알아야 하는지, 내게 그 이유를 알려줬나. 내가 ㄱ자를 알면, 오히려 네 생명이 위태로운 걸 네가 아니까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았으면서. 이제 ㄱ자를 모른다고 깔보냐.


넌 낫을 잡아보기라고 해봤냐. 네가 깔보는 건, 네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난 깔봄을 당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래서 죽였다. 날 깔본 널. 낫의 쓰임새는 이렇게도 쓰인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깔보면 죽는다.


태어날 때부터 ㄱ보다 A를 먼저 아는 놈들아. 네 집에 지게(보통 짐을 옮길 때 사용하는 거로, 생긴 모양이 A와 유사)도 없으면서도 A자를 아는 놈들아. 돈으로 가짜 논문을 만들고, 돈으로 거짓 스펙을 만들고, 돈으로 학벌을 만드는 개 같은 놈들아<PD수첩(2022년 6월 14일)>. 가짜와 거짓의 개들아. ㄱ짜와 ㄱ짓의 ㄱ들아.

난, 박정희 시대 때 태어났다. 정말 몰랐다. 쿠테타가 뭔지 독재가 뭔지. 그냥 살았다. 전두환, 노태우 시대에 이십 대를 지냈다. 몰랐다. 민주화가 뭔지. ‘그냥’ 살았다.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폭도가 될’ 뿐이었다(신철규). 단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을 뿐인데.


민주화가 뭔지를 알지 못하게 한 당국의 탄압이 하나의 요인이라면,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돈이 없었음이 또 하나의 요인일 거다. 먹고 살기 바빴다. ‘몰랐다’라는 이유에 핑계를 대는 거다.


삼십 초반(1990년대 초중반)에 민주화 시대가 되었다. 내 개인의 경제력도 나아졌다. 조금이나마 주변을 살필 여유가 됐다.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음이 거저 된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 덕분이다. 평생 잊지 않겠다.


종: ‘ㄱ’, 모른다.

주인: 모른다면 다냐.

종: 모른다면 다냐면 다냐.


밥이 법이다. 밥이 우선이다.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부터 먼저 제대로 가려야 했다. 존재와 의식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신앙과 사회생활 그리고 자녀교육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나’가 있게 된 계기랄까?!


법이라!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

그래 지키기는 지키되 어디 한번 물어나 보자

땅을 일구어 봄에 씨앗 뿌리고

이마에 땀 흘려 태양 아래서

곡식을 키운 사람은 누구이고 가을이면

도둑고양이처럼 와서 알곡을 걷어간 놈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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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끼 순 날강도 놈들

학식과 덕망의 똥통에 대갈통 처박고

만세삼창 부르다가 급살맞아

사지를 쭉쭉 뻗고 뒈질 양반놈들아.

<아나 법> (김남주)중에서.


SPC기업에서 노사 분쟁 중이다. 이미 약속한 법을 지키라며, 노동자가 50여 일 넘게 밥을 굶으며 투쟁했다. 요즘 날강도들은 법도 지키지 않고, 밥도 빼앗는다. 날강도 놈들, 지네들이 만든 법이면서도.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가 확실해진 시대다. 그런데도 정신을 가다듬고 살기가 절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분명히 말한다. 이젠 ‘그냥’ 살지 않겠다. 낫을 든 주인으로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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