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에게 용서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올해 환갑이다.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姓名(성명)도 이길태승으로 바꿨다. 엄마의 姓(성)을 함께 썼다. 올해 10월부터는 세미캠핑카로 여행할 계획이다. 일단 3년 정도는 국내 여행을, 이후로는 세계 여행을, 그 이후로는 우주여행을 꿈꾼다. 팔자 좋다. 꿈꾸고, 실천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진짜다.
주변 친구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한다. 현실적인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 아직 독립하지 않은/못한 자녀들, 그에 따른 경제력 부족 등의 어려움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배우자의 건강도 염려된다. 몸에서 보내는 건강에 대한 적신호는 하루하루 달라진다. 늘어가는 지인들의 訃告(부고)는 가슴을 여미게 한다. 동기동창의 訃告(부고)는 더 마음을 저민다.
누구나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인생’이다. 부인할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다. 이건 다 똑같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모습은 다를 수 있다.
누군 평화롭게 감사해하며 간다. 누군 두려워하며 고통스럽게 간다. 그 둘의 차이는 왜 발생할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종교, 건강, 재산, 가족, 친구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난 소망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평화롭게 감사해하며 갈 수 있길.‘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는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을 떠날 때, 평화롭게 감사하며 ‘홀가분’하게 가길 원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있는 그대로’ 알려지길 원한다.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내 삶의 궤적이 조금도 왜곡됨이 없이 전해지길 원한다. 긍정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정면교사로, 부정적인 면이 있었다면 반면교사로 삼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쓰는 첫 번째 목적이다.
사람 모두는 다르다. 달라서 다툰다. 개인 간, 단체 간, 국가 간 분쟁과 전쟁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호기심 많은 나는, 상대의 다른 점 덕분에 더 끌린다. 다르기에 오히려 배울 것이 많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와 ‘너’가 만날 기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독서’다. 독서를 통해 정말 다양한 ‘너’를 만날 수 있다. 내 삶과 결부된 ‘너’의 삶을, 독서를 통해 확인함으
로써 내 삶이 충만해진다.
내 삶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진다. 넓어지고 깊어진 시/공간에서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거다. 다툼은 줄어들고, 평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글을 쓰는 두 번째 목적이다.
때론 삶에서 슬픔으로 인해 절망에 빠질 때가 있다. 절망은 삶을 나락으로 밀어낸다.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만 고통스러운 것 같다. 어쩌랴! 이대로 끝낼 수는 없잖은가! 주변을 돌아봐야 할 이유다.
사실 자세히 살필 기회가 있다면, 주변 사람 중에는 ‘나’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사람도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름 꿋꿋하게 이겨낸다. 그들을 통해서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살면서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으면 좋은 이유다. 자신이 ‘죽을 정도로 괴롭다고 했던 일도, 지나 보면 정말 별 것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 ‘내’가 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는 마음이 이 글을 쓰는 마지막 목적이다.
글을 쓴 사람으로서, ‘독자’가 됐으면 하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는 ‘나’다. 환갑을 맞아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찰/반성하며, 현재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숙고하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 건지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며 살길 원한다.
두 번째는 ‘아내’다. 부부로서 삼십여 년간을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을 거의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음은 서로 잘 알고 있다. 남편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민을 베풀기를 바라면서.
세 번째는 ‘아들과 딸’이다. 아빠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자신들 삶의 나침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나친 욕심인 줄은 알고 있지만.
네 번째는 ‘친구’다. 가까이서 지켜보며 함께 지내며, 서로를 격려하며 위로하며,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관계다. 때론 갈등과 오해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이해하면서 풀어지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나’를 다시 보여주고 싶다.
다섯 번째는 형제자매를 포함한 ‘친인척/지인’이다. 친밀하게 알고 지내는 친인척/지인들에게 ‘난, 이런 사람이야(입니다.)~’를 전하고 싶다. 혹, 그동안 오해가 있었다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원한다.
모두에게 용서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2.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
이길태승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크게는 두 시기로 나뉜다. 어려서부터 30대 중반까지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엄마(길 운월 권사님) 그리고 이후로는 장인(장 신식 장로님)이다. 삶의 도리와 가족에 대한 희생 그리고 신앙의 근본을 가르쳐 주셨다. 두 분 모두 그립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여러 장르 중, 소설을 더 좋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학원에서 가르칠 때, 가끔 하던 말이다. ‘사람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 사람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고 살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뜻으로 했다. 학원 선생님으로서 어찌 보면 당연히 할 말이다. 사업적 목적을 배제하더라도.
지금은 글쎄다. 학원업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껏 살아보니 경험상 상당 부분 다르다. 세대가 변해서 그런가, 문화가 변해서 그런가. 아니면 거의 모든 게 변해서 그런가. 주변에서도 실제 많이 확인할 수 있다.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에서도 우등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예를 들면 끝이 없다. 다들 얼마든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테니.
하고 싶은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싶은 걸 하라!’ 사람이 산다는 게 뭔가. ‘나는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가 아니다. 그냥 각자가 하고픈 걸 하면서 사는 거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게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BTS, (피아노) 임윤찬, 손흥민---더 열거하랴!
책을 출간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어서 한다는 거다.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이길태승은 사람이다.
3.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로.
(실제 음식이 맛있는) 유명 맛집에 가면, 음식 먹는 순서 및 방법이 나오곤 한다. 그 지침대로 하면 훨씬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입으로 먹기 전, 눈과 코가 먼저 작용하여 뇌를 흥분시킨다. 입속으로 들어가면 혀에서 시작하여 입안 전체를, 다음은 뇌로, 그다음은 가슴으로 내려간다. 그다다음은 그 맛집으로 계속하여 발걸음을 저절로 내디딘다.
이 글을 읽는 순서 및 방법이다. 첫 번째 여는 글, 두 번째 닫는 글, 세 번째는 총 세 개 부로 나뉜 본문을 여는 앞글이다. 그다음부터는 독자 마음 가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서 읽으면 된다.
각 단편을 읽은 후에는, 책을 잠시 내려놓고 묵상하길 바란다. 1분 정도가 적당하다. 이길태승이 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꼭 생각하라. 그럼, 눈은 맑아지고 뇌는 살짝 (기분 좋게) 복잡해지는 듯하나 가슴에서는 어느새 감동의 물결이 이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다음은 발걸음을 옮길 거다. 독자 개인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로. 뭘 더 바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