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유구유언 02화

I부. 가족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by 이태승

결혼한 이후부터 줄곧 강조한 말이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가족 중 누구에게 기쁜 일이 생길 때, 함께 축하해주면 두 배로 기쁘고, 슬픈 일이 생길 때, 함께 위로해주면 슬픔이 반으로 준다. 그게 가족이다. 가족에게 늘 하던 말이다.


결혼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기본 취지야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거다. 표면적 상황은 바뀌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아내와는 2년 전까지는 하루 평균 두세 시간 대화를 나눴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32세인 아들은 독립하여 별도로 가구를 이뤘다. 사회복지사로 직장에 근무한다. 28세인 딸은 함께 생활하지만, 예전만큼 ‘함께’ 하지 못한다. 딸이 무척 바쁘기 때문이다. 영문학박사 학업과정에 있다.


누가 내게 물었다.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냐고. 대답이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감사하다. 그만큼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傍證(방증)으로 믿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웬만하면 이런 식으로 지냈으면 한다.


딸과의 관계는 어떤가. 대답이다. 딸이 내게 정말 잘한다. 자기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난 거의 O.K다. 학교 등하교 운전이 대표적이다. 다른 일도, 내게 ‘재잘재잘’한다. ‘나보다 더 잘하는 딸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빠는 행복한 줄 알아!’ 딸이 하는 말이다. 인정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이 글을 본 친구 딸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난리 칠 게 뻔하다.


아들과 딸의 미래는 알 수 없다. 자신들이 개척할 일이다. 부모(나)로선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내) 생각이다. 간섭과 참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긴, 그 정도 나이가 됐으면 뭘 하든 자신의 책임 아래 결정하고 실천해야 할 거다.


부모(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요청하라. 가능하다면, 도와줄 거다. 그러나 엄청나게 부담된다면, 불가능하다고 명확히 밝히리라. 부모(나)에게는 부모(나)의 삶이 중요하니까.


솔직하게 고백한다. 내 글을 누가 읽을 건가. 재미가 있냐, 감동이 있냐. 여는 글에는 장황하게 썼지만, 그건 한갓 내 ‘바람’에 지나지 않을 거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럼 누가 읽었으면 좋겠는가. 물어 뭐하나. 나를 포함한 ‘내 가족’, ‘네 명’ 뿐이다.


혹, 아들과 딸이 각각 결혼할 계획이 있다면, 그 배우자 될 사람들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 참, 말한 김에 분명히 해두자. 그 배우자 되고픈 사람들은 시험을 칠 거다. 출제 범위는 바로 이 ‘책’이다. 열 문제, 주관식이다. 90점 이상이면 불합격이다. 날 너무 많이 알면 다치기 때문이다.


그 시험의 채점자는 아들과 딸이다. 아들과 딸은 책 내용을 다 암기하고 있을 게 확실하다. 아들과 딸은 이 세상 최고의 효자, 효녀이기 때문이다. 유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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