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구나 싶었던 계절이 3도까지 떨어졌다. 바람까지 불어올치라면 겨울 같은 추위가 살에 에인다. 맨발로 방바닥을 딛는 것도 이제는 발이 시려워진다. 때가 참 무섭다. 말없이 알짤없이 할 일을 한다. 정신차리고 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있는 시곗바늘처럼 그렇게 때가 무섭게도 흘러만 간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다. 긴 연휴와 함께 온 나라가 축제 한마당이다. 가을을 보내기 아쉬워 그때에만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하는 주최 측의 마음이라고 믿어야 맞겠지만….. 그러하기엔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진정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축제는 고대 농경사회에서 추수 이후 하늘 앞에 감사와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기 위한 일종의 신성한 의식이었다. 축제를 통해 구성원들의 결속력은 강화되었고, 또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곳에도 축제가 한창이다. 벌개미취, 쑥부쟁이, 마타리, 구절초 등 가을 대표꽃들이 마지막 용을 쓰듯 한철의 끝자락이다. 들판의 이름 모를 꽃과 야생화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자연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심고 가꾼 정원이라고는 하지만 참 심난하다. 풀인지 꽃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계, 미처 정돈할 겨를이 없는 틈을 타고 꽃을 피워낸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식물들, 개념 없이 남은 식물들을 이리저리 빈 공간에 찔러놓아 구멍 난 양말을 꿰매놓은 듯한 경관들. 그 틈사이에 각종 버스킹 공연과 조형물이 즐비하다. 조악한 알전구들이 즐비하게 빛을 내며 밤을 밝히기까지 한다. 그 넓은 공간에 그저 바람소리와 맑은 공기, 그곳에 자생하는 식물들의 향긋한 꽃내음과 풀향기,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사람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곳이다. 찢어지다 못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는 저품질의 음향과 야바위 시장에서나 볼법한 조악한 천막,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먹거리들, 그리고 소방서, 경찰서, 보건소 등 각 기관에서 차출되어 나온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흥행 실패’ 텅 빈 부스와 그래도 관람객 수는 역대급이라며 무인계수기에 찍힌 정녕코 정직하지 않은 숫자를 절대신 여호와 하나님, 유일신으로 그 순간만큼은 맹신하며 직원들에게 진실한 숫자라며 믿음을 강요하는 주최 측.
그들 사이로 다시 올 일은 없을 거라며 나가는 수많은 관람객들의 표정을 그들은 보지 못했고, 볼 이유도 없다. 숫자만 기록되면 그뿐이니 말이다. 그들에게는 분명 관람객 숫자 달성이라는 추수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였으나, 축제를 찾는 일반인들은 그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공짜 찬스 외엔 의미가 없었다. 축제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겐 당연히 축제가 아닌 피곤한 일의 연속일 뿐이다.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말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들의 축제에 불을 지피울뿐이다. 어차피 숫자만 채우면 뒤도 안 돌아볼 윗분들이니, 직원들은 축제의 주인으로 함께 기뻐할 수가 없다. ‘그저 저렇게 숫자라도 채우면 우리를 더 이상 괴롭히진 않겠지… 그것만도 어디야’하는 직원들의 푸념소리가 들려온다.
무인계수기 앞을 혹여 누가 볼까 윗분 중 한 분은 단 한순간도 무인계수기 옆을 떠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카운팅하기 위해 또는 혹여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커플이 손을 잡고 게이트를 통과한다. 숫자가 하나만 올라갔다.
제발 그 손을 놓으세요!
소리치는 그의 말에 커플은 놀라 손을 뗐다. 당황한 그 커플 표정에 머쓱한 모양인지…
“두 분이 손을 잡고 같이 통과하면 방문객 수가 1만 세어지거든요..”
찌질하지만, 그들에겐 대단한 충성자다.
1인당 6-7번 왔다 갔다 하는 숫자를 카운팅해서 방문객 수를 몇 배로 뻥튀기하는 것은 당연해도 그 중 1이라도 감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세상 둘도 없는 놀부다.
모녀와 부자지간, 연인 간 손을 잡고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안내 방송을 해야 할지 냉소적인 웃음으로 서로에게 묻는다.
“제발 그 손을 놓으세요!”
웃프다.
지저분한 정원들 사이를 잠시 걸으며 머리가 아파온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집에 발을 디딘것마냥 정신이 사납고 마음이 심란하다. 차라리 보지 않은 것만 못한 헝클어진 경관들. 망가지고 황폐해진 정원들 사이로 그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거하게 열고 축배를 든다. 성취감에 도취해 그 하수구를 막고 있는 머리카락 한뭉치같은 묵직한 타락을 그들은 보지 못한다. 상관없다. 입이 찢어지도록 기쁘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축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차피 집행해야 할 예산, 이왕이면 더 좋게 더 의미있게 쓸 수는 없을까. 이왕이면 해야 할 일, 정직하게 하면 안 될까? 이번 한 번만 이라며 거짓말을 정당화하지만, 이번 한 번이 말하는 이번의 유효기간은 하루였고, 그 하루는 1년 365일이었다. 내일은 없을 것처럼 거짓말하고, 내일은 또 내일의 거짓말과 논리를 만들어내는 은밀한 잔치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 누구도 이 거짓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뽑혀지는 꽃이 되어 설령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을 가졌다 하여도 또 짓밟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무 대범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들 한다. 그리곤 말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국민들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범죄행위를 했다고 정당화하지 않고, 자녀들은 부모의 부도덕한 행위를 사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양심이 너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