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뉘시오?
“뉘 집 아고? 누구 아들이고?”
“누구긴 누구예요 아부지 아들이죠!”
할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는 열 살베기 손주의 대화다. 참 똑똑한 대답이다. 여기서 ‘뉘=누구’, ‘뉘 집=누구네’, ‘아부지 아들=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버지면 되었지 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인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는 말도 되니 말이다. 한때 안방을 강타했던 각시탈이 나타난다면 그 누구도 ‘ 니 누구고?’ 묻지 않을 것이다. 각시탈은 각시탈이니 말이다. 자기 이름 석자와 족적으로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덤을 갖다 쓴다. 부연이나 미화를 위해서 말이다.
교복 입은 학생의 거죽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부모와 가족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이 더해지면 포장이 제법 풍성한 정체성 내지는 자기 브랜드를 갖게 된다. 임꺽정이나 홍길동에게
“당신은 뉘시오?”
“나요!”
라고 할 것이다.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만 보아도 그가 그인 줄 알 것이다. 각시탈처럼 말이다. 박사 시절 동기 중에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부회장이 있었다. 그는 영업사원으로 시작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까지 오른 진정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이미 박사학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음에도 브랜딩을 배우러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대학로를 뚜벅이 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는 언제나 운전기사와 수행비서가 학교까지 모셔왔다. 영향력 있는 교수와 선후배, 동기들에게 그는 찐이었다. 득과 실에 대한 계산이 매우 빨랐고, 실에 대해서는 1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어서 모르는 분야는 책 100권을 사서 독파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우린 그를 이 부장이라 불렀다.
여하튼 그런 그가 은퇴 후에 1인 기업, 브랜딩연구소를 차렸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이 부장의 소식에 피식 웃으며, 과연 이 부장은 이 부장이다 싶었다. 사람들은 조직브랜드와 개인브랜드를 착각하는데 개인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가져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임꺽정이 ‘금강산 소속 아무개’라고 하지 않고 임꺽정이 임꺽정이듯 나의 색깔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그는 그고, 나는 나이며 그녀는 그녀인 자신만의 색깔말이다.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세대로서 조금만 튀면 혼났고, 튀는 것에 부담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굳이 튀는 것을 쑥스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은 기관명이나 부서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편에 속한다.
같은 기업임에도 부서에 대한 인식의 차별로 하대하고 상하 위계를 잡으려 한다. 수평과 소통을 통한 효율성과 인권경영을 표방하지만, 업무기능과 구성원의 본질적인 역량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정체성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결과다.
정부조직 간에도 눈에 띄게 서열이 존재한다. 예산을 주무르는 갑 중의 갑 기획재정부부터 소규모의 방송통신위원회, 산림청 등과 감찰기관인 감사원, 국가정보원 등에 이르기까지 국가공무원이라 하더라도 레벨이 다르다. 기관의 정체성과 브랜드가 구성원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실상 그들을 대해보아도 자존감이 정말 다르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업무에서 배어 나오는 성향이 사람의 성향에도 물드는 것 같다.
지자체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사무관만 되어도 왕 살아 먹을 만큼 권위가 높으나 국가직의 경우에는 말단 실무자처럼 일을 죽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기관브랜드가 권력기관이면 직급에 상관없이 그들 앞에 주눅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 국민은 국가정보원 9급 공무원을 일반 행정기관 5급 사무관보다 더 크게 볼지도 모른다.
현직에 있을 때는 그렇다고 치지만, 은퇴하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두 분의 노신사 이야기다. 한 분은 기차에서 만난 1932년생 할아버지다. 노신사는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저는 1932년생으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어요. 서울대를 나왔죠. 지금은 아이들이 주는 용돈으로 겨우 살아가지만 정말 잘 나갔었죠”
“...............”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낡은 지갑 속에서 고이 보관된 노신사의 학생증이 생각을 사로잡았다. 젊고 또리또리한 모습의 청년이 과거에서 손을 흔든다. 그 노신사께서는 자신과 서울대를 동일시하는 것 같다. 서울대를 나온다고 해서 인생이 서울대급은 아니다. 서울대는 수학하기 위한 교육기관 중의 하나로 다만,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일 뿐이다. 당신의 삶이 지금 충만하다면 처음 만난 이에게 그렇게 존재를 어필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노신사는 사법기관의 국가공무원 1급으로 퇴직한 재판관이었다.
‘전 1급공무원, Y대학교 법대 졸업, ◯◯◯’라고 써진 명함을 내게 건넨다.
현직을 떠난 지 10년도 더 지나셨다.
사람은 태어나서 근 30년은 배우고, 약 30년은 일하고, 나머지 인생은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30년을 조직인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직급과 인생의 급수는 다른데 이것을 착각하거나 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 인생인가 싶다.
동기나 선배들을 만나 담론을 나누다 보면 우린 이런 대화를 종종 한다.
“제 아무리 한 나라의 왕, 대통령이라 해도 임기가 정해진 고급 계약직 공무원인걸요. 직업이 대통령이지 인생이 대통령급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공감하고 공감한다. 업을 수행하고,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자신의 본질의 색을 다시 드러낸다. 나라는 캔버스에 그려진 직업들 위에 한층 더 성숙하고 풍성해진 자아를 보이면 된다. 어쩌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만들지 못해서? 아니면, 혹여라도 자신이 홀대당할까 두려운 것일까? 전직 대법관이라고 하면 잘 대해주고, 덥수룩한 머리, 고무줄 늘어진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나오면 동네 아저씨로 대접받는 것이 기분 나빠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배우처럼 대통령도 되었다 마을 이장도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삶에 승진이 있는가? 승진은 없지만 성장은 있다.
삶에는 직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급은 삶의 품격이다.
스치듯 만난 두 노신사가 내게 묻는다.
“그나저나 그대는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