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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Sep 26. 2023

지킬과 하이드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까

사랑과 용서를 인생 노트에 매일 100번씩 쓴다면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때때로 얄미울 때가 있고 야속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밉살스러운 감정일 뿐 마음에 앙금이 남는 그런 못된 미움은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 미움이 오래도록 지속된 적은 없었다. 미움이라는 것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후비파고 쓰라리며 피폐하게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속에는 ‘미움’이라는 씨앗이, 물론 내가 뿌린 씨앗이겠지만, 제 멋대로 자라 칡넝쿨처럼 나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칭칭 감았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면서 미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못나게 만드는지, 그리고 얼마나 인생을 피폐하게 하는지를 진실로 깨달았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미움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역설적인 생각도 같이 말이다. 




미움의 덩굴을 걷어내고

그런 미움의 덩굴을 걷어내고 잘라낸 이후, 나는 다시 가려진 하늘을 볼 수 있었고 바람도 쉼도 햇살도 쪼일 수 있었다. 미움대신 사랑을 택했고, 사랑보다 강한 무기가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모든 아린 마음들을 내려놓았다. 내 사랑의 창고가 비워질 때마다 그분 앞에 매달리며 사랑을 가져다 창고에 쌓고, 또 축나면 그분에게 얻어다 채우며 그렇게 하루하루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분께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때로는 원망도 있었고, 선과 악에 대한 개념마저도 혼미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의 절대적인 선하심과 온전하심을 믿으며 ‘정녕코 그가 행하시리라’하는 믿음을 접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순리를 거슬러 갈 인생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그건 순간의 지킬이 아니라 진정 나였어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해 미음의 덩굴을 모두 걷어내고, 내게 끝없이 칼을 겨누는 자들을 마주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미움조차도 이미 지워버렸는데 그들은 여전히 하이드와 같았다. 반갑게 웃으며 그들을 맞아주었다는 나의 말을 듣고, 친구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한다. 


“너에게도 지킬과 하이드가 있는 거 아니야? 일종의 포커페이스처럼…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식사를 할 수 있어? 그것도 바로 면전에서?”


“난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그저 잘해 줄 수 있다면 잘해주면서 가는 게 인생이잖아. 언제고 사회에서 만날 사람들이고…. 후회가 없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래서 잘 대해주는 것뿐이었어. 내 마음이 아플 거 같아서… 그런데, 그들은 어쩜 그렇게 변함이 없지? 오히려 더 표독스러워진 것 같아. 난 그게 놀랍고 사실 충격적이기도 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지 말이야. 그리고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 놀랍지”


“너에겐 지킬과 하이드가 있는 거고, 그들에겐 하이드만 있는 거지. 넌 아직도 그렇게 세상을 순진하게만 사니? 내가 말했잖아. 그들의 DNA는 악해. 평생 그리 살아왔기에 달라지지 않아. 그뿐이야. 그들에게 변화란 없어”


내 상황을 잘 아는 친구라지만, 그래도 내 속에 들어와 앉아있지 않으니 얼마나 잘 알겠는가.

칼을 겨눴던 자 앞에서 웃어주기까지 내가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과 아픔을 겪었는지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내 안의 지킬이 나와서 그들을 마음으로 품어준 것이 아니라 나의 깊은 상처에서 돋아난 새살이 사랑이 되어서 그랬다는 것을 말이다. 



미디어에 드러낼 성과, 더 높은 곳을 향한 정치적 사회적 야망에 그들의 양심이 마비가 된 것인지 안타까우면서도 씁쓸한 마음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아무렴 그들에게 하이드만 있겠는가. 그들도 누군가의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수없는 보도자료에 사진을 싣고, 광고비를 써가며 언론사에 공들이는 것도 좋다. 그러나 길어봐야 몇 해 정도되는 유통기한이 있는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까치발을 딛고, 거미줄을 닿는 대로 치기보다는 그들이 치려는 줄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들의 영혼을 위한 한 스푼의 양식이라도 되는지,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 주변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양심적 책임은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성경에 그런 표현이 있다. 악인은 결국 스스로 발에 넘어진다고 말이다. 포식하기 위해 살기 위해 쳐 놓은 줄에 결국 자신이 걸려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인생 노트에 매일 사랑과 용서를 100번씩 쓴다면

선하고 역량 있는 리더가 가져야 할 이미지를 영향력 있는 높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는 만큼 매일의 삶의 노트에 사랑과 감사, 그리고 용서를 100번씩만 쓴다 해도 하이드가 지킬을 잡아먹을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이미지는 실체가 아닌 허상이라 비칠 무언가가 없으면 사라지니 말이다. 안개처럼 말이다. 그러나 매일 노력하고 애쓴 마음의 옹이는 남아져 더 풍성하고 단단한 삶의 기반이 되고, 더 나아가 누구든 쉼이 필요한 이에겐 앉을자리를 내어준다. 나의 신념이자 믿음이다. 


고통은 또 다른 파도가 되어 얻을 것을 얻게 한다. 태풍이 불어야 바다가 깨끗해지고 물고기들에게도 먹을 양식이 많아진다. 파도가 쳐야 배가 빨리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이 고통이 감싸고 있는 또 다른 행복과 축복은 무엇일까 눈을 열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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