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메이 Oct 20. 2021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착각

여러분께 미션을 드렸으니, 제가 수행한 미션도 한번 공유해보겠습니다.

예전의 저는 식비와 외식비, 사교비용, 금융비용, 꾸밈비용, ‘시발비용’순으로 많이 썼습니다. 

먹는 걸 좋아해서 새로 생긴 음식점을 검색해서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 술 한 잔, 커피 한 잔 하는 걸 즐겼어요. 기분파라서 술을 먹을 때면 단지 좀 멋있어 보이려고, 그날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제가 스스로 술값을 계산하는 일도 꽤 자주 있었습니다. 사실 비용 부담에 대한 이야기 없이 모인 술자리가 끝난 순간, 모두가 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습니다. 나보다는 남들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남들을 위해 돈을 쓸 때가 많았던, 쿨한 척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가 너무나 궁금하고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회사를 다니다 보니 적당한 옷과 가방, 화장품도 갖춰야 했습니다. 그나마 화장을 잘 할 줄 몰라서 상대적으로 화장품에는 돈을 많이 쓰지 않은 편이지만 대신 귀걸이나 팔찌, 반지 같은 장신구들을 잔뜩 샀습니다. 회사 근처의 번화가나 백화점에 자주 가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한다는 혼자만의 명분으로 충동구매를 일삼았고, 프리미엄 진이 유행할 때는 한 벌에 20만원이 넘는 청바지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소문난 ‘빵순이’답게 빵과 각종 디저트 같은 군것질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심지어 신용카드는 3개나 있었죠. 1회에 10만 원 이상 크게 쓰는 돈은 거의 없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5만 원 이하의 소액 결제건들이 카드값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실제 가방도 많이 샀는데 어설프게 돈을 아낀다고 싸구려들만 사다 보니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방이 없습니다. 20대 때 제가 대체 무슨 가방을 매고 다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네요. 그러면서도 제가 사치를 한다거나 과소비한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체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내가 번 내 돈으로' 기분을 내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한마디로 예전의 저는 실속 없는, 남 좋은 일만 하고 다니는 ‘사교형 인간’이었던 셈입니다. 남들에게 “싫다”는 소리를 잘 못하다보니 친구에게 돈을 떼인 경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친했던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돈이 없다고 했더니, 현금 서비스 받아서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그 전화를 받고 바로 회사 ATM기로 달려가서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현금 서비스 버튼을 눌러 40만원이라는 거금을 보내준 어이없는 일도 저질러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왜 그랬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우정을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저는 “꼭 갚겠다”는 그 친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지만, 결론은 여러분의 예상대로 연락이 끊겼고 저 말고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려갔다는 소문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지요. 지금까지도 그 친구에게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저와의 우정은 40만 원 짜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은 제가 얼마나 남 좋은 일을 많이 해온 ‘K-도터’의 화신이었는지를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랬던 저도 바뀌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의 저는 어떨까요? 

식비와 외식비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은 그래도 지출 1위네요. 하지만 저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이 늘어났고, 사교비용과 시발비용이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체크카드만 쓰고 있고, 대출을 다 갚았기에 금융비용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의 관계를 재정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심해서' 잡던 술자리 약속을 줄여나갔습니다. 지금처럼 ‘코로나 시대’였다면, 최소한 술값과 관련 비용은 줄이기 훨씬 쉬웠겠지만, 그때는 술자리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퇴근할 때 저녁 약속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고,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전화해서 술 먹자고 약속을 잡지 않았더니 약속이 꽤 많이 줄어들더군요. 신기하죠? 

술자리가 줄어들자 술값은 물론이고 택시비나 대리비, 해장비용까지 굳었습니다. 기분 따라 쓰던 돈이 줄어들자 신용카드를 없앨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퇴근길에 백화점이나 번화가에 들리는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고, 꾸밈비용을 현저히 낮출 수 있었습니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쓰려고 노력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신용카드를 모두 없앨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좀더 심플하게 살고 있습니다. 

퇴근길 술 한 잔 대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익숙하고, 집으로 가지 않는 날이면 누군가를 만나 술 대신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를 마시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일찍 자리를 끝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술자리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먹자고 한 자리가 아니니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게 됐습니다. 사교형 인간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파악한 후 당신만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당신이 돈을 모으기 위해 가장 필요한 첫걸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의 소비를 들여다보셔야 합니다. 카드사 고객센터에 문의하면 카드 명세서 다 보내줍니다. 요새 나오는 가계부 앱만 잘 활용해도 소비 기록을 분석해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이 되고 싶은 당신과 소비가 말해주는 당신의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당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파악해보시겠습니까?           

이전 02화 돈을 모으고 싶다면? “너 자신을 알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