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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메이 Oct 24. 2021

신용카드는 나의 적

신용카드에 대해 할 말은 간단합니다.


갖고 있다면 없애라. 

갖고 있지 않다면 아예 만들 생각을 하지 마라. 


신용카드 혜택이 많으니까 잘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아뇨,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돈이 더 많고, 할인 혜택 알림을 받을 때마다 여러분은 소비의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나 좋은 혜택을 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제력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참새와 같고, 카드사의 마케팅과 할인 유혹은 사이렌의 노래소리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용카드가 없다면 절대 만들지 말고, 있다면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저는 햘인마트에 갔다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사은품을 준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스무 살 때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수입이 없는 대학생에게도 마구잡이로 카드를 만들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신용카드의 한도가 얼마였는지 기억나지는 않고, 아무런 소득도 없던 제가 왜 카드를 만들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고등학생이던 동생이 그 신용카드를 들고 나가 200만원 넘는 돈을 긁었다는 사실만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동생은 그 카드로 자기가 갖고 싶던 옷을 잔뜩 사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었다고 후에 고백했습니다. 까맣게 모르고 있던 저는 커다랗고 빨간 글씨의 압류 통지가 우편으로 날아오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카드사에 전화했다가 언제까지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악몽에 시달리며 저 돈을 갚지 못하면 어쩌나 떨었지요. 부모님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통사정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 집은 그걸 갚아줄 돈이 없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계획을 접고 학원강사를 비롯한 각종 알바를 무리해서 구했고, 그 돈을 고스란히 내가 써보지도 못한 돈을 갚는데 써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쓰디쓴 경험을 했지만,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 틀림없습니다. 취직하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세 개씩이나! 두 개는 어떻게 만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는 사무실에 찾아와 카드 발급 판촉하는 아저씨가 너무 안쓰러워서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가 아니라 바보같은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지만, 그때의 저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습니다. ‘만들기만 하고 안 쓰면 되지’ 생각했지만, 그것은 제 생각이었을 뿐 너무 당연하게도 그렇게 될 리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심리는 묘해서 돈이 없다고 생각할 때와 돈이 없어도 카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소비 여부가 달라집니다. 살 것은 많고 버는 돈은 적던 제게 신용카드는 마법보다 더 멋진 무엇이었습니다. 당장은 돈이 없지만 카드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고 어차피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니까! 세 개의 카드에서 각각 3~40만원씩을 긁었고(지금은 대체 뭘 그렇게 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늘 별로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월급의 반 이상이 카드값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카드가 두 개일 때도 각각 3~40만원을 긁었는데, 카드가 하나 늘어나자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는 마법(?)이 펼쳐지기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카드값이 빠져나가고 나면, 교통비와 점심, 핸드폰비와 각종 경조사비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통장을 스친다’는 표현 그대로였고, 월급을 받아도 낙이 없었습니다. 당장 나 자신이 쓸 수 있는 현금은 너무 적었고, 결국 또 카드를 쓸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심지어 ‘리볼빙’이 뭔지도 모르면서 리볼빙도 해봤다가 겨우 갚기도 했습니다. 


리볼빙을 겪으면서 카드를 줄이겠다고 다짐했지만 3개 카드 중에 1개 카드를 없애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겨우 한 개로 줄였을 때, 이미 제 나이는 30대 후반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소비의 늪에 빠집니다. 저 역시 그 시절에는 길 가다가 싸구려 귀걸이 고르는 게 취미였고,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소소하게 뭔가를 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손톱 손질이나 마사지, 가벼운 소품 사기처럼 기분 전환을 위해 쓰는 돈이 얼마나 짜릿한지 알기에, 아예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겪어본 사람으로서 장담하건대, 잠깐 돈 쓰는 재미보다 돈 모으는 재미가 훨씬 더 쏠쏠하다는 말도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신용카드를 없애기 위한 노력의 과정은 힘들고 지난했지만, 그 결과만큼은 아주 달콤합니다. 일단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지 않고, 지출 통제가 가능해집니다. 현재 저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있고, 어쩌다 은행에 갈 때마다 "하나 만드시라"는 권유를 받곤 하지만 여전히 만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지름'의 화신이던 저도 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를 없애는 것부터가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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