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나보다 똑똑한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가 섞여있을 테니까
나는 내가 술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퇴근 후 좋아하는 회 한접시에 곁들이는 사케, 친구들과 고기를 구우며 마시는 소주, 분위기 좋은 곳에서의 칵테일... 그 모든 것을 너무너무 사랑했다. 참, 늦은 야근이 끝나면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서 홀로 캔맥주를 딸 때의 그 청량한 소리도 빼놓을 순 없겠지.
9년이나 다녔던 회사에서 ‘드디어’ 퇴사했을 때, 이제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하며 신나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졸업하기도 전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단 한번도 자유인의 신분(?)으로 음주를 즐겨본 적이 없었다. 내 주변에는 뮤지션이나 포토그래퍼 등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평일 술자리가 한창 달아오를 때 혼자 머쓱하게 자리를 떠야할 때가 많았다. 알게 모르게 동경해온 그 망나니(!) 라이프를 드디어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내일 마감이 있는지 전체 회의가 있는지 중요한 업무가 있는지 따져보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 자유인의 음주!
2주간은 정말 신나게 술을 마셨다. 시간 걱정 주량 걱정없이 쭉쭉 마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뭐랄까, 좀 지겨웠다. 술이 지겹다고?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놀랐다. 나는 술을 아주아주아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이자) 동생인 A가 자기 입사시절 추억을 더듬어 답해줬다.
A는 입사하자마자 ‘나쁜 팀장’ 때문에 1년 간 고생했다. A의 팀장은 권력을 행사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매년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쥐잡듯 잡았다고 한다. 일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혼나면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 리더 아래에서 A가 할 수 있는 일은 버티는 것 뿐이었다. 다른 선배들도 일을 도와주면서 “다음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나아질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단다. 자기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퇴근 길에 그날 있었던 일들, 들었던 말들이 떠올라 울면서 전철을 타던 날들. 그 기억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하기 위해, 그나마 잠을 좀 자기 위해, 그렇게 버티기 위해 A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단다. 우리 앞에 놓인 술잔을 흔들면서 A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없으면 나는 지금까지 회사 못 다녔을 걸요. 언니도 그랬던 거 아닐까?”
환경이 바뀌면, 이제까지 확실하다고 믿었던 나의 어떤 부분도 바뀌는구나.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어김없이 술이 당기던 스스로를 보며 알콜 중독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사뒀던 책이 읽고 싶고 밤의 한강을 걷고 싶고 지저분한 방을 정리하고 싶었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은, 신선한 상태의 나는 술 없이 못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나보다 3개월 먼저 퇴사한 후배 S는 최근에 “몇년 째 안 읽히던 책이 읽히기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S가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더니 “선배, 저 국문학 전공했어요”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에? 내가 소설 얘기 할 떄마다 책 읽은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고 손사래를 치길래, 싫어하는 줄 알았지. 그렇게 말했더니 S는 웃었다. “그때는 회사일로 매일매일 머릿속이 복잡해서 종잇장 위에 쓰인 문장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따뜻한 수필을 읽으면 이까짓게 뭔데, 하는 못된 마음만 들고. 소설을 읽을라 치면 나랑 상관없는 얘기 아닌가, 싶어서 책을 닫게 돼고요. 이제 취향이 변했나보다 했지, 나도.” 그날 우리는 스무살 초반에 습작했던 시와 소설 얘기를 부끄러운 졸업 사진 들추듯 복기하며 한참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라는 게 우리를 얼마나 많이 바꿔왔던걸까?
나와 비슷한 변화는 꼭 퇴사를 해야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원래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업무의 부서로 갑작스레 이동하게 된 내 친구 J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원하지 않는 곳으로 부서 이동 배치를 받은 J는 한동안 주말만 되면 잠을 몰아자느라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 잘 모르는 일에 집중하느라 고되서 그런가? 근 10달 간 그런 생활이 반복되는데도 그렇게만 짐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년이 채 되지 않아 원래 업무로 복귀하자 놀랍게도 주말성 기면증(?)이 사라졌다. 주말을 되찾았고 다시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게 돌아오고 나서야 J는 깨달았다. 그토록 쏟아지던 잠은 현실 도피었다는 것을. 회사의 방식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업무 능력을 하향 평가 받은 것 같아서,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버텨야 하니 선택한 적응법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보다 더 똑똑해서, 가끔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취하곤 하는 것 같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어쩌다 내가 이렇게 돼 버렸지?’ 자책하기도 하고, 나이 탓을 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 이렇게 되더라~” 하는 식으로 타인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하기도 한다. 그 변화는 실제 모습 위에 덧 씌워진 일종의 보호색 같은 건데 말이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그게 어떤 모습이라도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못 본 척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 찬찬히 검문하고 내 안에 들여보낼 예정이다. 거기엔 분명 나보다 똑똑한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가 섞여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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