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아론 Dec 12. 2018

뭔가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당신을 위한, 시작 예찬

시작이란 씨앗 같은 거니까. 심지 않으면? 아예 모르는 거지.

세상에 시작하는 일에 강한 사람이 있고, 그것을 끝맺는데 강한 사람이 있다. 물론 둘을 모두 겸비하고 있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전자에’만’ 특화된 사람이다. 내가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숨쉬기, 술 마시기, 글쓰기 정도인데 이마저도 마지막 항목은 자주 중단했다가 재개하곤 한다.


나는 늘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새로 시작했다. 덕분에 내가 배웠던 일들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베이킹, 작사, 디제잉, 요리, 조향, 발레, 재즈 댄스, 와인, 인터넷 쇼핑몰 운영, 꽃꽂이, 영상 편집, 피아노…. 누군가 SNS에 “원데이 클래스란 돈을 내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하루만에 확인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올렸을 때도 웃지 못했던 것은, 그런 확인을 계속 번복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었다. 하하.


물론 이런 성향을 부끄러워하고 자책했던 때도 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이런 말들을 너무나도 많이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한가지에 집중을 못할까,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이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나…. 그런 생각들이 쌓일수록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해봤는데 별로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으면 어쩌지? 이게 진짜 필요할까? 잘 할 수 있을까? 그냥 시작하지 않는 게 나은 것 아닐까?


소심해지고 겁이 많아질수록 세상의 수많은 고정관념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붙들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시작한다고 꼭 끝을 봐야한다는 법이 있는 걸까. 칼을 뽑았다고 쓸 데도 없는 무를 썰어서 뭐하나. 그냥 고이 칼을 잘 보관했다가 다른데 쓰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세상에는 직접 해봐야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생이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서 알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대학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취업을 생각해야 하는 3학년 무렵, 갑자기 주식에 꽂혀서 주식 동아리에 들어가더니 급기야 증권 회사의 오피스 걸(!)이 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내친김에 여기저기 인턴을 지원해서 어느 작은 증권 회사에서 합격하자 바로 휴학을 하고 몇달간 인턴으로 일했다. 그런데 출근한 지 열흘만에 깨달았다. 아, 여기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한 달이 지났을 때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 이 일 하다가는 얼마 못 가 숨막혀 죽겠네….


물론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나와 그 일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동안은 알 수 없었을 뿐이다. 직접 부딪혀보며 스스로에 대해 세가지를 깨달았다. 1) 업무의 반복성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 2) 거대한 프로젝트 속 하나의 역할을 맡기 보다는 작더라도 스스로 뭔가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욕구 3) 상명하달이 아니라 협업이나 혼자 일하는 것이 어울리는 업무 스타일.


이후 막막한 심정으로 캐나다 시골 마을로 교환학생에 다녀오면서, 다행히 나에게 맞는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을 찾아냈다. 남은 1년간 빡쎄게 대학생 기자단, 패션지 객원 기자, 대학생 패션 잡지의 에디터까지 수차례 경험하고 검증한 뒤에야 안심하고(?) 취업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하다. 무턱대고 질러본 증권사 인턴 시절이 없었다면, 거기서 아닌 걸 깨닫고 재빠른 포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나도 회사도 무진장 고생시키고 나가 떨어졌겠지. 무라도 썰겠다고 덤벼들지 않고, 얌전히 적장에서 물러나 칼집에 내 칼을 고이 꽂아둔 과거의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그 누구라도 “시작했으면 끝을 좀 봐라”, “뭐하러 그런 걸 하냐”는 핀잔들 앞에서 좀 더 당당해졌음 좋겠다. 시작이란 씨앗같은 거니까. 싹이 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싹이 튼 이후에 튼튼하게 자라는 것도 있는가 하면 금방 시들해지는 것도 있고, 꽃이 피는 것도 있고 피지 않는 것도 있고, 사시사철 푸른 것도 있다. 그건 씨앗을 심어서 자란 후에 그제서야 알 수 있다. 심지 않으면? 아예 모르는 거고.


나는 하나의 씨앗에 집중해서 한 그루의 크고 튼튼한 나무를 끈기있게 키워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언제나 푸릇푸릇한 잎사귀들이 보여주는 성과와 거대한 그늘의 안정성 같은 것들을.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다양한 식물들이 피고지며 시시때때로 얼굴을 바꾸는 작은 밭을 가꾸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무성한 정글이, 누군가는 같은 종류의 식물을 빽빽히 심어둔 텃밭이 어울리는 것처럼.


물론 새로운 씨앗을 심을 때마다 여전히 걱정을 한다.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잘 자랄 수 있을지, 이 씨앗을 심는데 나의 시간과 체력과 마음을 너무 소모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유한성은 커다랗게 다가오고 “이제는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은 익숙한 돌부리처럼 나를 넘어뜨린다.


하지만 김연수 작가가 <청춘의 문장들+>에 “나는 삶을 추측하는 일을 그만뒀다. 삶이란 추측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날 뿐이다.”라고 적어둔 것처럼, 나 또한 무언가를 시작하고 계획을 세워가며 몰두할 때 이것의 결과를 추측하려 하지 않는다. 인생은 엄청나게 무작위이고, 예기치 못한 성공과 실패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아프게 하기도 한다. 무엇도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 삶에서,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씨앗을 심고 기를 것이다. 내가 오늘 시작한 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계산하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걸 하는 나 자신을 믿어가면서.


작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h.ro_


 Illust by BAR BAR

이전 01화 나는 정말 나를 잘 알고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