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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Jul 16. 2019

인간 관계에도 디톡스가 필요해

인간관계 휴식기를 갖는동안 타인을 배제한 나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번째는 사는 곳을 바꾸는 것이고, 두번째는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고, 세번째는 먹는 음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그럴 듯 한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인간이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환경이 달라져야 제대로된 변화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SNS에서 본 디톡스 주스에 마음을 홀딱 빼앗긴 것도 그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는 곳도 만나는 사람도 바꾸기 어려우니까 먹는 걸 바꾸겠단 결심이랄까. 그무렵 슬금슬금 불어나서 제자리(라고 믿어왔던 몸무게)로 쉬이 돌아오지 않는 몸 상태도 한몫했다.


디톡스 주스란 매분 매초 농땡이 칠 궁리만 하는 나와는 달리, 열심히 먹고 마시는 주인(?) 덕분에 잠시도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는 위장에게 ‘휴식기’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혹했다. 맞아 맞아. 낮에는 대충 먹고 저녁에는 술과 음식을 잔뜩 흡입하길 반복했으니 내 위장은 그동안 얼마나 피곤했겠어. 얘네들(?)한테도 휴식이 필요할 거야. 그리하여 (평소에 거의 먹지 않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착즙했다는 디톡스 주스 한 박스가 내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3일간 디톡스 주스를 마신 결과 약간의 감량 효과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당연히) 원래 몸무게로 돌아갔다.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내게 남은 게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한번도 다이어트다운 다이어트를 해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의도적 허기’를 느끼는 경험을 한 것이다. 꼬르륵 꼬르륵 음식을 넣어달라는 우렁찬 소리와 몸을 배배 꼬게 만드는 배고픈 감각이 지나가자 신기하게도 가벼운 허기가 익숙해졌다. 이거구나. 덜어내는 것, 비워내는 것, 채우지 않고 여백으로 두는 것, 그렇게 쉬게 하는 것.... 글로만 읽었던 관념적인 것들이 몸으로 느껴지니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의도적 허기’가 필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곧 깨달았다. 바로 인간 관계였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한 데다가 에디터라는 직업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내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향 또한 한 몫 했다. 주로 내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을 얻게 해주는 인간관계지만, 언젠가부터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무렵 나는 마치 더부룩한 속에 계속해서 음식을 집어넣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혼자 있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곤 했다. 그런 만남이 스스로에게 좋을 리 없었다. 웃고 떠들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오히려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사적인 관계에서 느꼈던 과부하는 곧 공적인 관계, 회사 생활로도 넘어왔다. 사적인 관계와 달리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선택한 만남, 내가 선택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괴로움은 더더욱 배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누군가와 부딪힌다는 것이, 꼭 인간적인 충돌이 아니라는 걸 이미 깨친 상태인데도 마음이 머리를 따라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사무실 안에서 숨쉬는 것마저 수월하지 않아서 옥상에 올라가 심호흡을 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정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사람이 싫어지고 있구나. 어느 금요일 밤, 애정해 마지않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망가지니 보고싶던 친구를 만나도 대화가 자꾸 겉도는 게 느껴졌다. 결국 사소한 말에 쓸데없이 혼자 상처를 받고 씁쓸함을 삼켰다.


그날 이후 내 일정을 다 비웠다. 있던 약속들도 한달 뒤로 미루거나,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사실 그게 어떤 ‘디톡스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내가 사람들을 찌를까봐, 다치게 할까봐, 그래서 모든 걸 망칠까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혼자를 견뎠다. 하루 이틀 쯤이야 괜찮았지만 날짜가 늘어날수록 낯설고 괴로웠다. 종일 혼자 있게 된 주말에는 이유없이 펑펑 울기도 했다. 



다행히 그 기간이 지나자 좀 더 편안해졌다. 단식할 때 속쓰림과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면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마음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심심한 시간 사이사이로 지난 일들과 사람들이 흘러들어왔다. 미워서 그냥 구겨 처박아두었던 사람도 펼쳐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자주 마주쳐야 하기에 상처받지 않은 척 해야했던 사람과의 관계도 다시 되짚어봤다. 멍하니 있다가 내가 잘못 뱉었던 부끄러운 말이 떠올라서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오래된 사람들과 함께한 사진을 찾아보며 그리움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고나니 언제랄 것도 없이 아, 이젠 됐다, 하는 마음이 드는 때가 찾아왔다. 오래된 체증을 내려놓고 한층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내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혼자를 자처하는 동안 사람들이 멀어질까봐, 홀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외롭고 우울할까봐. 그리고 불신도 있었다. 며칠 혼자 있는다고 뭐 달라지겠어? 달라진다 한들 금방 돌아오겠지. 


물론 우리는 평생 수많은 인간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잠시 단식을 하면서 내 몸을 좀 더 선명하게 느꼈던 것처럼, 잠시 인간관계 휴식기를 갖는 동안 타인을 배제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겼던 크고 작은 얼룩들은 그제서야 눈에 띄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 연인, 오래된 친구, 매일 보는 동료(학교든 직장이든)들과 낯선 타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산다. 그 안에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도 없다. 때로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관계를 정리해야할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서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자연 치유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붙어 있을 때는 그조차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끊임없이 우겨넣으면 속에서 탈이 나는데,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가끔은 잠시 쉬어가주어야 계속해서 건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적절한 사회 생활을 위해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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