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아론 Dec 04. 2017

연애는 원래 '잘 안되는 거'야

한 사람과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가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얘기는 남의 연애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담에 멋들어진 연애 소설을 쓰고 싶어서, 재료를 모으는 중이다! 라고 설명하고 다니지만 실은 그냥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을 좋아하고 연인 관계가 되고 헤어지고… 그 과정은 누구에게나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누가’ ‘누구랑’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천 개 만 개로 다양해지는 게 매번 신기하다. 최근 주변에 연애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해보면 늘 많았던 것 같긴 하다. 연애하면서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은 다 SNS 속에만 있나보다. 그런데 최근 연애 고민들의 주범(?)이 한결 같다. 


바로 ‘소개팅’이다. 소개팅 하기 전의 걱정, 소개팅 하고 난 후의 망설임, 몇 차례 애프터 데이트를 하면서 생겨나는 고민들….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소개팅이란 무엇인가 상상해본다. 사실 나는 소개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제 결혼을 해버려서(?) 더 이상 기회가 생길 일도 없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소개팅이란 영원히 미지의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속앓이 하게 되는 소개팅이란 대체 무엇인가. 궁금증을 안고 소개팅 한 사람들을 관찰한 바, 몇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 소개팅은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매칭 게임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는 신성한 과정을 게임이라고 하는 게 썩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켜본 바에 의하면, 소개팅으로 만난 사이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들기 전에 서로가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면 이뤄지기도 한다. “아직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근데 좋은 사람인 거 같아.” 20대 중반, 소개팅으로 커플이 된 친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놀라 자빠졌던 기억이 있다. “야! 좋아 죽을 것 같아서 사귀어도 헤어지는 판에 무슨 소리야!” 하지만 그렇게 큰소리 쳤던 내가 더 빨리 헤어졌다. 슬로 스타터였던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천천히 가까워지면서 나름 탄탄한 연애를 했고(물론 그들도 이후 언젠가 헤어졌다). 


둘째, 소개팅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다. 원래 사람이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와 진짜 내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첫인상과 두어 시간의 만남만으로 연애를 결정하는 소개팅이라면? 그 격차가 더욱 커져버리는 것. 마치 ‘쇼윈도에 놓인 기분’으로 상대가 좋아할 만한 행동과 말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진짜 내 모습을 좋아해주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어쩐지 자연스럽게 나를 보여주는 게 어려워지는 거다. 


셋째, 잘 되지 않았을 경우에 양쪽 모두에게 심적 타격이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나는 상대가 마음에 들었는데, 상대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당연한 일이다. 거꾸로 나는 상대가 마음에 안 드는데 상대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해도 힘들어진다. 마음에 부담이 생기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로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닌데 완전히 싫지도 않은 상태가 지속되다가 흐지부지 멀어진다. 저 사람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가? 어제 저녁에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메시지를 먼저 할까 말까…. 별의별 사소한 고민들을 겪다가 찜찜한 여운만 남기고 상대와 헤어지는 거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소심함이 증폭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주변에서 아무리 “네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둘이 안 맞아서 그런 거”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는 것 같더라. 


마지막으로, 소개팅을 연달아 하다 보면 오히려 연애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할 수 있다.  밀당을 하면서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순간들은 어쨌거나 감정을 소모시킨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 자신을 어필하고, 동시에 그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캐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은 따지고 보면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잘 될 듯하다가 없느니만 못 한 인연으로 끝나버리는 관계가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이렇게까지 연애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행복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어서 시작한 소개팅이 결국 외로움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다니. 


소개팅 성공 확률을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10퍼센트도 안 될 거라 확신한다. 3퍼센트에도 못 미칠지도. 그런데 곰곰이 따지고 보면 누군가를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연애를 한다는 건, 소개팅이 아니라도 성공 확률이 낮은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 동시에 연애를 할 정도로 서로 잘 맞는다는 것은 인생에 몇 번 없는 기적 같은 일이니까. 


사실 나는 소개팅이 굉장히 이상한 제도(?)라고 생각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어느 날 만나서, 갑자기 연애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게 굉장히 부자연스럽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다른 방식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를 건 없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혼자 끙끙 앓다가 마음을 접기도 하고, 도서관이나 강의실에서 한눈에 반한 사람이 누군지 찾아 헤매다 포기하기도 하고, 동아리에서 삼각관계에 얽혀 멘탈이 부서지기도 하고…. 소개팅에 실패하는 것만큼의 온갖 고초(?)를 겪는다. 


친구 사이였다가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경우에도,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귀기 시작하니 전혀 다른 사람이더라”고 토로하는 일이 많다. 그러니까 소개팅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 없다. 소개팅이라는 루트를 거치지 않아도, 원래 연애란 기본적으로 ‘잘 되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 오래도록 사랑할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이라면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한 사람과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를 스쳐 지나가야 하는 법이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원래 그렇다. 이러다 영영 연애 못 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에 우울해하며 주저앉지 말 것. 언젠가 당신이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인연이 있는 곳까지 오는 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다. 분명.


Illustrator 키미앤일이


작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h.ro_

이전 14화 인간 관계에도 디톡스가 필요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