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가장 성스러운 인류애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
내가 ‘싫기만 한 사람’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주변 이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저마다 용의 선상에 놓는 인물들을 읊어주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누가 봐도 싫기만 한 사람의 부류로 속할 것 같은 이들의 이름이 들려왔을 때 내가 그들에게 일말의 인류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유일한 예외는, ‘싫기만 한 사람’ 글에서 소개한 캐시미어 팀장님이다.)
그런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던 인물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최근에 다니던 회사의 상사였던 사람이다. 그의 첫인상은 꽤나 젠틀했다.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 이유가 없는 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말을 어쩜 이렇게 조리 있고 야무지게 하는지, 그와 대화를 적어도 한두 마디 이상 나눠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첫눈에 알아봤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나는 처음부터 그를 동경했었다. 어쩌면 이때 생겨난 티끌만 한 동경의 조각 하나가, 지금까지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그에 대한 인류애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그는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박사 같은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선을 넘지 않는 적절한 배려로 주위 사람들을 현혹시켰지만 조금이라도 빈정 상하는 일이 생기는 순간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대학시절부터 그랬다고 한다. 툭하면 후배들에게 윽박지르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다만 재밌는 건, 그가 같은 팀 안에서도 유난히 나에게 더 큰 친밀감을 표현했고 또 동시에 그만큼의 적대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남다른 친밀감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식사하는 걸 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매일 밖에서 그와 둘이서만 식사를 하던 내가 여느 팀원들처럼 회사 안에서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겠다고 용기내어 말한 날, “그럼 저는 누구랑 먹나요?”라고 단체 카톡방에 공개적으로 압력을 넣었을까. 그는 밥을 먹으면서 도통 말을 하지도 않거니와 입맛이 아주 까다로운 편이어서 그와 식사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뭐, 나는 그와 그런대로 식사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나도 굳이 먼저 말을 하지 않았고 그가 말을 꺼내면 나는 적당한 말들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그런 그가 나와 단둘이 점심시간에, 회사 앞 백반집에서 김치찌개를 퍼먹던 중 나에게 지난 연애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밥을 먹던 중 어떤 이야기를 꺼낸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사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선택받은 기분이 들어서 아주 묘했다. 정말 죽도록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주 조금 기뻤던 것도 같다. 그가 평소에 팀원들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그의 나이를 여태 모르는 팀원도 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이 회사에 와서 연애를 두 번째 하고 있고 통상 본인은 연상보다는 연하가 잘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이렇게만 보면 그가 나를 아주 어여삐 여긴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도록 나를 혼쭐 내는 날이 아주 많았다. 아니, 사실 거의 매일 혼쭐이 났다. 조금 억울한 건 특별히 내가 ‘크게’ 잘못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큰 일보다 자잘한 일을 챙기지 않았을 때 더 크게 노발대발했다. 하루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SNS 프로필 이미지를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전화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세요!”라고 (팀원들의 말에 의하면 사무실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사무실에 있던 회사 사람들도 적지 않게 놀랐겠지만 나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당했을 때보다 더 큰 비참함이 나를 덮쳤다. 스스로를 똘똘하다고 생각해온 내가 타인에 의해 쓸모를 완전히 부정당해버렸으니, 재기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은 듯했다. 일터에서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은 애초에 고이 접어 넣은 나였는데 막상 이런 이야기를 팀장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 이상 사는 이유조차 없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필 그 주는 비가 그칠 줄 몰랐다. 나는 몇 날 며칠 하염없이 떨어지는 비를 보며 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진 내 마음의 빗방울들이 모여 깊은 웅덩이가 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서서히 가라앉으며 익사하는 중이었다. 일터에서의 ‘사소한’ 일을 사는 이유에까지 결부시켜버리다니, 내가 오버스러워 보이기는 해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삶에서 어쩌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터에서 자기 효능감이 바닥을 보이게 되니, 내 삶의 기둥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그래도 깡 좋은 나는, 마침 비가 그쳤을 때 K 직장인답게 털고 일어났다. 그와 또다시 김치찌개를 퍼먹으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사형선고를 받은 듯했던 그날 밤을 떠올리면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 나는 여전히 그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그토록 마음이 쓰이는 걸까. 이옥섭 영화감독님이 <서울 체크인>에서 했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만약에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버려요.” 어쩌면 나도 n연차 직장인으로서 이와 비슷한, 생존 기제가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싫기만 한 사람’ 폴더에는 누구나 한 두 사람밖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정말 내 인생에서 최고로 싫은 사람 월드컵을 해서 결승에 진출한 딱 한 두명만 그 폴더에 넣어야 한다. 그 이상의 에너지를 쏟기엔 우리의 착한 마음들이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싫은 사람들은 어느 폴더로 가야 하는가? ‘싫은데 마냥 싫지만은 않은 사람’ 폴더가 그래서 필요하다. 역설적이지만 내 마음도 싫어하는 그와의 공생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를 마냥 싫어하지는 않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