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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진소라 Jul 12. 2023

추진력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지구력 없이 무한한 방향의 추진력만 있는 사람

 나는 추진력이 강한 편이다. 무슨 일이든 잘 벌인다. 술이 너무 좋은 나머지 술에 대한 나의 취향과 경험을 전하는 콘텐츠 계정 Note.A를 운영해보기도 했고(지금은 고양이 사진 올리는 계정으로 쓰고 있다), 일상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갑작스럽게 유튜브 계정 '건빵진소라'를 만들어서 근근이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나처럼 생각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생각의 정리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NOTERS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뭐든 시작이 쉬운 편이다. 무엇을 시작하든 간에 일을 벌이는 건 나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구력의 부재다. 

 추진력만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 때 배운 것들을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왠지 관성이 있는 것들은 한 번의 힘찬 출발만으로도 계속 뻗어 나아갈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다지 관성이 있는 재질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힘찬 출발 이후 속도를 유지해 주는 건 지구력의 영역인데 내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나는 지구력이 빵점이다.

 지구력이 빵점이라는 걸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은 다이어트를 하면서였다. 고백하자면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한 달 반 만에 15kg을 감량하는 데에 성공했다. 바로 한약과 침의 힘으로 말이다. 그 뒤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내 체중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항상 벅차게 오르내렸다. 그럴 때마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시작하리라, 다짐하곤 했는데 늘상 그렇듯 스타트는 좋았지만 완주를 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다운 형상마저 사라져 버릴까 싶어 늘 노심초사하면서도 끝끝내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고꾸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요즘 운동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지구력의 부재를 실감하게 된다. 시작은 비장하고, 끝은 시작만큼이나 창대하게 쓰러진다. 그런 스스로가 답답하고 한심해서 한 번은 트레이너 선생님께 비법을 여쭤보았다.

 "선생님, 저는 일을 하든 운동을 하든 추진력은 좋은데 지구력이 딸리는 것 같아요. 지구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선생님은 의아한 눈빛으로 답했다.

 "그냥. 하면 돼요."

 비법은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라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출발선에서 발을 뗀 이후로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지금 눈앞에 놓여있는 이 야채를 먹는다고 5kg이 빠질까? 정말?', '술 마시면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지방을 분해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나는 간이 크니까 괜찮지 않을까?', '5kg 빼면 지금 있는 옷 다 다시 사야 할 텐데 그럼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근데 5kg 빼서 뭐 하려고 했더라?' 잡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잡생각은 나의 발목을 잡는다. '왜 해야되더라?'

 한번은 누군가 김연아 선수에게 스트레칭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는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김연아 선수는 뭐야, 이 질문, 하는 눈빛으로 피식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해요 하기는. 그냥 하는 거지."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사실 전교 1등이 되는 비법, 살을 빼는 방법, 마라톤에 완주하는 방법은 뻥안치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냥 하면 된다. 그냥. 정말 그냥. 근데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이 두 글자가 이렇게나 묵직하게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문득 세상에서 제일 대하기 어려운 단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에 대한 호불호를 물어볼 때 우리는 곧잘 "그냥"이라고 얼버무려버린다. 누군가 기분을 물어봤는데 대답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그냥"이라고 우물쭈물 거리며 말한다. 그냥은 그렇다. '그냥'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본심을 숨기고 싶을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런 '그냥'이 행동과 붙으면 무지막지하게 힘이 세진다. 그냥 뛴다, 그냥 공부한다, 그냥 쓴다, 그냥 한다. 묵묵히 자기 할일을 해나가는 근사한 사람의 모습이 된다.       

 추진력 만으로는 완주를 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나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일에서나 출발선에 섰을 때 가졌던 비장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출발할 때 느꼈던 그 추진력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발 더 나아가보려고 한다. 방향은 잃지 않되 속도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아야지. 그냥, 저냥, 그냥 나아가야지.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언젠간 근사하게 어딘가에 닿겠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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