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볼이 알려준 균형 잡기 노하우
한 번은 PT 선생님께서 짐볼 위에 배를 대고 사지를 공중으로 쭉 펴보라고 하셨다. 누구한테 보여주지도 못할 기괴한 모습이겠군, 흠흠, 하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짐볼 위에 배를 올리고 팔다리를 뻗으려는 순간 중심축에 있던 짐볼에서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휘영 청 휘영 청, 그보다는 파닥파닥이 어울리겠다. 그렇게 온몸으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이 제삼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남사스러울 것 같아서 머쓱한 표정으로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균형 잡기가 너무 어려운데요! 어휴,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사람은 저 밖에 없겠죠?”
그때 선생님께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을 주셨다.
“원래 흔들리면서 균형을 맞춰가는 거예요. 충분히 흔들리세요.“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 고여있던 감정샘에 퐁, 하고 떨어지더니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파장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강력한 것이 되었다. 어느 순간 제주의 바다처럼 찰싹거리는 거센 파도가 되어 샘이라고 칭할 수 있는 영역 밖으로 흘러넘치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그때의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흔들리는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덜 흔들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만으로 3년 즈음되던 때였다. 벌써부터 걱정이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내가 광고일을 본업으로 선택한 게 맞는 처사일까?, 이러다가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근데 돈은 언제 벌지?, 지금처럼 벌면 평생 돈 못 벌텐데. 어른들 말에 무언가를 시작하고서 홀수년이 되면 고민이 많아진다고 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면 이쯤 되면 정해야 돼! 이 일 잘 맞는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고 3년이 지나면 이쯤 됐으니 진짜로 정해야 돼! 이 일 안 맞는 것 같으면 지금 당장 틀어야 돼!,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 이상 시간이 지나면 빠꾸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많이들 말해왔다. 사실 결과적으로 나의 경우 5년이 지나면 에이 다른 거 해봤더니 별거 없더라, 라는 생각이 들 예정이었지만 만 3년을 지난 나에게는 아직 그런 생각이 들어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그때 내가 있었던 회사는 나에게 두 번째 회사였다. 그 회사는 내가 들어가고서부터 약 서너 해 동안 연봉동결이라는 대단한 결심을 임직원들에게 선포하게 된다. 그 꿍꿍이를 알 턱이 없었던 나는 순진하게 그 회사에 갔다. 회사는 월급의 액수 빼고 모든 면에서 마음에 쏙 들었다. 사실 내가 첫 회사에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할 때 연봉을 삭감당했기 때문에 월급이 터무니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몇 년이나 동결까지 당하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첫 회사 동기들은 훨씬 더 많이 벌고 있을 텐데, 나는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도 작게라도 장만하고 싶은데, 내가 그때 옳은 선택을 한 게 맞을까? 이직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미 지난 일이지만 나는 내가 이직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자주 되물었고 후회하지는 않았으나 종종 죄스러워했다. 회사생활 해봤으면 이제 자아실현은 접어둘 법도 한데 왜 나는 그게 안되었을까?, 라고 스스로를 탓하면서.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사이드잡, 즉 제2의 수입원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매일 퇴근 시간 즈음 본업모드가 꺼지기 무섭게 부업모드로 태세가 전환되었다. 그때 나는 어떤 일을 부업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을 참 많이도 했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돈이 벌리는 일이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뭐가 있지? 하고 머리를 싸매고 몇 날며칠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는 순도 100%의 호감을 가진 술에 대해 다뤄보기로 결심했다. 그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는 매거진 같은 콘텐츠를 만들자, 하고 짧지만 굵게 SNS 계정을 운영했다. 청사진은 거창했다. 크루원이 필요해서 함께 일하는 마음 잘 맞는 직장 동료들을 포섭했다. 그들도 내가 설파하는 세계관에 심취한 나머지 술을 좋아하거나 잘하지도 못하면서 나와 함께 술을 자주 마셔댔다. 술을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우리는 나름대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결국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본업에서의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돈이 당장 벌리는 수익모델을 만들기 어려울 것 같으니 영향력 있는 채널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수입원으로 본업을 삼으며 취미생활처럼 브런치와 유튜브를 운영하게 되었다. 지금은 취미생활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 나에게 부수입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현실을 하루하루 고되게 살아내고 있네, 하고 생각하던 나에게 흔들려도 된다고 말씀해 주신 선생님의 말씀은 말도 못 할 정도로 큰 위로가 되었다. 균형 잡기의 핵심이 흔들리기라니, 충분히 흔들리는 게 균형을 잘 잡는 노하우라니! 내가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게 쓸모없는 과정이 아니라 균형을 잘 잡기 위한 초석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이마를 탁 짚을 수밖에 없다. 선생님은 몸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을지 몰라도 어쩐지 나에게는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다. 삶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이쪽저쪽 신경 쓸게 너무나도 많은 게 인생이니. 그래서 우리는 자주 흔들린다. 하지만 흔들려도 괜찮다. 충분히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는 감각을 익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