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발작이 처음 나에게 찾아온 날

말로만 듣던 공황발작?

by 건빵진소라

한강의 물살이 반짝반짝 넘실거리는 모습이 한눈에 훤히 들어오는 어느 고층빌딩의 회의실 안. 여느 때처럼 회사 동료와 일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어떤 게 어떻게 트리거가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알 길이 없지만 갑자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했다. 어느 순간부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온몸에서 기력이란 기력이 모두 녹아 발밑으로 빠져나가고 오로지 육체만이 껍데기처럼 간신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사지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치직소리를 내며 노이즈가 잔뜩 낀 티비 화면처럼 앞이 뿌연 상태로 힘겹게 회의실의 창문을 열고 그 틈으로 숨을 쉬었다. 헤엑, 헤엑. 옆에 있던 동료는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뭐, 심각한 상황이란 걸 알아도 그녀는 성격 상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몇 분 동안 좁은 창문 틈 사이로 들숨 날숨을 반복하다가 나는 회의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듯이 앉았다. 의자의 바퀴가 드르륵 뒤로 빠지면서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나를 받아냈다. 심장은 펄떡거리는데 여전히 어지러웠다. 같이 있던 동료가 뭐라 뭐라 이야기를 했는데 잘 듣지 못했다. 나는 동료에게 미안하지만 회의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조퇴를 하겠다 말하며 회사를 나섰다. 회사 밖으로 나왔는데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원래도 잘 넘어지는데 이러다가 앞으로 꼬꾸라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정신과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당이 떨어져서 그런 줄 알고 집 안에 있던 초콜릿을 모조리 먹어댔는데. 혈당 스파이크가 올 정도로 와구와구 먹었는데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아 어리둥절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증상이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 동안 머뭇거리다가 회사와 같은 오피스 빌딩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당일 예약은 어렵다며 내일 아침에 일찍 병원에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채로 병원에 갔다. 내가 정신과에 오다니.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철딱서니 없게도 나 스스로를 안쓰러워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만 같아 살짝 흡족했던 것도 같다. 이런 내 모습이 어이가 없어 속으로 '정신 차려!'를 외치다가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에 들어섰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책상은 아주 깨끗했다. 드라마에서 봤을 땐 뭐 이것저것 올라와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본 건 고작 마우스와 키보드 정도? 처음 서울에 온 시골소녀처럼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더니 선생님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셨다. 어떤 건 확실하게 대답했고 어떤 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마우스를 드르륵드르륵 했다. 나한테 진짜 정신질환이 있는 건가? 손에 땀이 조금 났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나를 일시정지하게 만들었다.

"우울장애가 있으신 걸로 보입니다. 경미하게 양극성이 있는 것도 같구요. 그리고 어제의 케이스로 봤을 때 공황장애까지는 아닌 것 같고 공황발작이 왔던 것 같아요."

우울장애? 양극성? 공황발작?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동안 이유도 모르고 힘들어했던 마음에 충분히 그래도 됐다는 명분이 생긴 것만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우울증과 불안증세, 불면증을 완화시켜 주는 약을 먹게 되었다. 약을 먹어도 공황발작은 간간이, 그것도 불시에 나를 찾아왔다. 준비태세를 갖추지 못한 상태의 나는 면역력이 약한 아기처럼 속수무책으로 발작을 온몸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끙, 하고 견뎌내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물론 병원에서 비상약을 처방받은 덕분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마음의 병을 가지게 된 데에 복잡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겠지만 누군가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당시에 함께 일하던 동료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사실 나는 그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녀는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와 달리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재밌는 사람이었다. 탁 내뱉는 한 마디에 잘 설계된 유머가 깃들어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센스에 감탄하곤 했다. 나는 그녀의 입담을 흠모했다. 그녀도 그걸 알아차린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나는 이내 깨닫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나와 그녀의 관계가 비극이라 표현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고 나는 그녀의 솔직함에 자꾸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소라씨, 저는 소라씨가 이런 행동을 하면 너무 불편해요. 이런 행동은 안 해주시면 좋겠어요."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몇 대 뚜드려 맞은 것만 같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나를 불편하다고 표현하니까. 면전에서 불편하다는 말을 듣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마음을 준 사람에게서 듣는 거라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책상 아래에서 손을 쥐어뜯었다. 그게 자해와 유사한 행동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상처만 받는 건 아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회사생활의 고단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초조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쿵짝이 잘 맞는 사람과의 수다만큼 위로가 되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그녀와 나는 상처에 무딘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 그녀도 상처를 받았을 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상호작용이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지만 서로를 상처 주는 것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고서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웃는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관계 맺기에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따끔한 성장통을 앓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고맙다. 그녀를 만난 후로 나에게 뾰족한 가시를 들이미는 사람들을 봐도 예전보다 덜 당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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