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류현진, 류현진은 한화
한화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었다. KBO 통산 최다승 투수 (210승)와 통산 다승 2위 정민철(161승)을 필두로 선발 로테이션이 탄탄했고, 마무리는 한화 레전드 중 한 명인 구대성이 뒷문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여기에 19살 고졸 신인 류현진이 입단하면서 한화 마운드는 더 견고해졌다. 공격력은 김태균, 이범호, 외국인 용병의 화력을 바탕으로 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상대팀에게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최강 한화는 투타 모두 강한 전력으로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해는 한화의 마지막 황금기로 남게 된다. 그러나 한화에 조금씩 전력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베테랑 3인방 송진우와 정민철 그리고 구대성에게 오랫동안 의존한 마운드는 2006년 이후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괴물’ 류현진을 제외한 20대 젊은 투수들은 베테랑들에 밀려 자리를 못 잡고 기량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류현진은 20대 초반에 이미 리그를 지배하는 뛰어난 에이스로 성장했지만, 과거 빙그레 시절부터 한화로 간판이 바뀌기까지 팀의 역사를 함께 해온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은 노쇠화와 함께 더 이상 1군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둘 은퇴했다. 한화의 황금기 시절은 그렇게 마감됐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에이스 류현진을 중심으로 마운드 리빌딩에 들어간 한화, 투수진은 어떻게 구성이 됐으며, 류현진을 뒷받침해준 투수들은 과연 누구인지 살펴보자.
2010년 한화는 새 감독으로 ‘해태왕조 멤버’이자 선수 시절 유독 찬스에 강해 ‘해결사’란 별명을 갖고 있던 한대화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감독경험이 없는 초보 사령탑 한대화 감독은 당장의 성적 욕심은 내려놓고, 오직 리빌딩을 목표로 팀을 과감하게 재편해 나갔다. 한화는 팀의 투타 주요 전력들이 빠져나간 탓에 남은 멤버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같았고 불가피하게 리빌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다. 리빌딩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한화는 투타 젊은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기량을 끌어올려 주축 선수로 성장시켜 강팀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계획에 돌입한다.
하지만 리빌딩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때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던 한화 타선의 핵 김태균과 이범호가 2009년을 끝으로 나란히 일본 진출을 선언하며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 투수진은 류현진 외에는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허약 그 자체였다. 류현진이 리그를 지배해도 한화 투수진은 리그 최약체였다. 오죽하면 ‘류-패-패-패-패’로 불렸던 한화 마운드. ‘류현진이 등판한 날은 팀은 승리, 류현진이 등판 안하는 날은 팀은 패배’라는 공식이었다.
사실 한화에는 가능성 있는 유망주 투수들은 매년 있었다. 2006년 입단 당시 류현진(2억 5천만원)보다 계약금을 2배 이상 받은 입단 동기 유원상(5억 5천만원)은 매년 한화의 기대주로 많은 선발등판 기회를 얻었지만 더딘 발전으로 한화 팬들에게 늘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한대화 감독 부임 후에도 선발로 풀타임 소화했지만 150km에 가까운 빠른 볼을 갖고도 제구 불안과 장타 허용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9년에는 5승 10패, 방어율 6.64, 69 볼넷, 23 피홈런, 2010년에는 5승 14패, 방어율 5.50, 69 볼넷, 20 피홈런. 2년 연속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한화는 2011년 유원상의 보직을 불펜으로 이동시켰고, 결국 시즌 중반 LG로 트레이드되었다. 한화의 대표적인 유망주 실패 사례다. 하지만 유원상은 시작에 불과했다. 또 한 명의 우완 파이어볼러 김혁민은 2009년 24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 14패, 방어율 7.87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2010년 고작 9경기 등판 후 어깨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2011년에는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줬다. 5월 한 달간 6차례 등판해 퀄리티스타트 3번, 방어율 2.43을 기록하며 잠재력이 폭발하는가 싶었지만, 6월 이후 6연패에 빠지는 등 한 시즌 내내 기복이 심한 투구를 보였다. 8월말 삼성전에서 7이닝 동안 1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압도적인 투구를 보이며 에이스급 투구를 보여줬지만, 종종 극심한 제구 난조로 이닝 초반 대량실점으로 무너지며 팀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지는 못했다. 류현진과 원투펀치를 이룰 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 구단 입장에서 많이 아쉬웠다.
또 한 명의 대형 유망주인 좌완 파이어볼러 유창식. 2011년 계약금 7억원의 거액을 받고 입단해 ‘제 2의 류현진’으로 불린 유창식도 신인 시절부터 1군에서 많은 등판 기회를 얻었지만 팬들의 기대감을 저버렸다. 유창식 역시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구속에도 불구하고 제구 불안으로 상대팀들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단이 인내심을 갖고 ‘제2의 류현진’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기회를 부여했지만 선발 한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2015년 기아로 트레이드됐다. 김혁민과 유창식도 한화의 유망주 실패사례에 이름을 올렸다.
그 외에 2010년 입단한 안승민도 2011년 시즌 7승을 하는 등 잠시 팀의 기대주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쳐 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일반적인 야구선수들과 달리 회사원 같은 외모에 점잖게 안경을 걸친 얼굴로 팬들에게 안과장이란 애칭까지 얻으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평균 구속 140km대의 느린 직구와 제구력만으로 승부하는 안승민은 압도적 구위를 가진 유형과 거리가 멀어 팀이 기대하는 강력한 우완 에이스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다음해부터 구위 하락으로 상대 타자들에게 많은 피안타와 피홈런을 허용하다 선발 로테이션에서 밀려나 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겼다.
타선도 리그 최약체로 전락해버렸다. 그나마 팀의 거포 유망주로 기대 받던 최진행의 잠재력이 폭발해 2010년 32홈런으로 홈런 부문 2위를 기록하며 김태균, 이범호의 해외진출로 인한 빈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최진행 홀로 고군분투하던 타선은 상대팀에게 전혀 위압감을 주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타선의 라인업이 다른 팀들에 비해 파워나 이름값에서 많이 떨어졌다.
한화는 2010년 시즌 전 두산에서 백업 역할을 하던 이대수와 정원석을 영입했다. 뛰어난 수비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지는 두 선수의 영입에 큰 기대를 건 팬들은 별로 없었다. 두산 시절 이대수는 손시헌의 군 입대 후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며 두산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상무에서 제대한 손시헌이 복귀하자 백업으로 밀려났다. 1군에서 38경기에만 출전하는 등 주로 2군에 머물렀다. 내야수 정원석도 대주자와 대수비 전문요원으로서 두산에서 알토란같은 역할을 했지만 직전 시즌 두산의 두터운 선수층에 밀려 1군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전 소속팀 두산에서 1군과 2군을 들락날락하던 이대수, 정원석이 이적하자마자 주전 라인업에 선다는 것 자체가 한화 타선이 허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두 선수가 한화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좋은 기록을 남긴 것은 한화 입장에서도 큰 행운이었다. 주전 2루수 정원석은 이적 첫해 2010년, 33살 나이에 처음으로 프로 데뷔 후 첫 규정타석을 채우며 타율 3할, 106안타, 7홈런, 42타점, 출루율 0.388, 도루 14개를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한화의 새 주전 유격수 이대수도 안정된 수비와 기대 이상의 타격 솜씨로 2011년 타율 0.301, 110안타, 8홈런, 50타점을 기록했다. 그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기록했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2011시즌을 보냈다. 두 선수의 활약은 한화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라인업의 무게감은 떨어졌고 많은 득점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화의 타선이었다.
한화는 2010시즌 6월 8일 공격력 강화를 위해 기아와 3대3 트레이드로 베테랑 장성호를 영입하며 타선 강화를 노렸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장성호는 기아에서 1607 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06, 출루율 0.400, 1741 안타, 195홈런, 882 타점을 기록한 KBO 대표 강타자다. 그러나 한화 유니폼을 입은 장성호는 전성기 시절에 비해 배트 스피드가 많이 떨어지며 상대 투수의 직구에 고전을 하는 등 전체적인 공격지표가 하락해 팀 타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0년 장성호는 7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5, 4 홈런, 29 타점만을 기록했다. 타율 0.245은 신인 시즌인 1996년(타율 0.206)을 제외하고 최저타율이었다. 전성기 시절 9년 연속(1998~2006) 3할 타율을 기록한 장성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한화 타선은 특정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무기력했다. 그리고 류현진을 제외한 한화 투수들은 시즌 내내 타선의 적은 득점 지원 속에서 외롭게 마운드를 지키다가 무너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2010년을 되돌아보면 한화는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나름 수확도 있었다. 타선에서는 정원석의 뜻밖의 활약과 더불어 김태균, 이범호가 빠져나간 타선에 최진행이 타율 0.261, 홈런 32개(2위), 92타점(5위)이 새로운 토종 거포로 등장했다. 투수진에서는 팀의 오랜 유망주이자 베테랑 불펜요원 34세 박정진의 재발견(56경기, 2승 4패 10세이브 6홀드 79.1이닝 방어율 3.06 탈삼진 80개)과 괴물 류현진의 맹활약이 있었다. 류현진은 그해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0년 류현진’은 리그를 지배하는 괴물 그 자체였다. 25경기에 등판해 16승 4패(다승 2위), 방어율 1.82(1위), 탈삼진 187개(1위), 192.2이닝(2위), 피안타율 0.220, WHIP 1.01, 퀄리티스타트 23번, 특히 WAR은 10.04였다. 완투 5번(1위), 완봉승 3번(1위), 선발 평균이닝 7.71, 퀄리티스타트 성공률 92%에 이르는 말 그대로 괴물 같은 활약이었다. 시즌 중 역사에 남을 대기록도 작성했다. 한 경기 17 탈삼진(9이닝 기준 1경기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고, 시즌 시작부터 2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이어 나갔다( 2009시즌까지 포함해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2010년 류현진’은 ‘한화의 전부’이자 ‘한화의 심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