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행복한 독수리 최강 한화 <2>

대전의 해결사 한대화의 귀환

by 김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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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가 아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한화의 시즌 최종순위다. 만년하위권에서 놀고 있는 한화선수단. 만나는 팀들마다 쉽게 연승을 헌납하며 상위권으로 진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화. 그사이 한화는 연패를 거듭하며 최하위권에 자리 잡는 상황. 매년 야구팬들은 재방송을 보는 것 같다. 2006년은 한화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한 영광의 연도이다. 그 해 한화에 19살 괴물 투수가 입단했다. 이 선수는 다승(18승), 방어율(2.23), 탈삼진(204개) 3개 부문 전체 1위를 달성하는 괴물 같은 활약을 보였고, 이닝 수도 200이닝을 돌파했다. 그는 KBO 역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동시 수상하는 선수가 된다. 훗날 그 괴물은 2019년 사이영상 2위를 차지한 메이저리그 대표 투수가 됐다. 그 괴물이 바로 류현진이다.


류현진이 데뷔하던 2006년, 한화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화의 가장 빛났던 시절이다. 하지만 2008년 5위로 추락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긴 암흑기가 찾아왔다. 그 암흑기는 전성기의 류현진이 활약하던 시절에도,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 지난 암흑기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2010년으로 돌아가 보자.


꿈에 그리던 고향 유니폼, 감독 되어 다시 입다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최하위를 기록한 한화 이글스는 2009년을 끝으로 김인식 감독과 결별을 결정하고 고문으로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시 삼성 수석코치 한대화를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2009년 9월 30일 한화는 한대화 신임 감독과 계약기간 3년, 총 8억원(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선수시절 ‘해결사’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한대화 감독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8회 역전 3점 홈런을 치며 대한민국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7회까지 2대 0으로 지고 있던 한국은 8회 말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로 동점을 만들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그리고 계속된 2사 1, 2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5번 타자 한대화였다. 그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왼쪽 폴대를 맞히는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리는 명장면을 국민들께 선사했다. 극적인 홈런을 치고 홈에 들어오던 한대화를 맞이하기 위해 선수들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던 감동적인 장면도 당시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한국은 한대화의 역전 홈런을 앞세워 숙적 일본을 무너트렸다. 그것은 한국 야구사에 한대화라는 해결사의 등장을 알린 서막이었다.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 신흥초, 한밭중, 대전고에서 선수로 성장한 진정한 대전 토박이 한대화는 다음 해 1983년 대전을 연고지로 출범했던 OB베어스에 1차 지명되어 프로에 데뷔한다. 다음 해 OB의 연고지 이전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향 대전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다시 타이거스로 트레이드 되어 광주로 내려가 8년간 활약한 후 LG, 쌍방울을 거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고향 팀 유니폼을 다시 한번 입어보지 못하고 은퇴했다. 프로 15년간 통산 성적이 타율 0.279, 163홈런, 712타점으로 수준급 성적을 보였고 7번의 우승(해태 6회, LG 1회)과 함께 KBO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8회 수상(1986~1991, 1993~1994)으로 3루수 부문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갖고 있는 최고의 3루수 중 하나였다.


한대화가 대전에 돌아왔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팬들에게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지만 고향팀에서 제대로 선수 생활을 못해본 것이 유일한 한이었던 한대화는 마침내 감독으로 대전으로 돌아왔다. 한화팬들은 해결사 한대화가 기적을 일으켜주길 바랐다. 국가대표 한대화가 한국 야구의 영웅이라면 이제 한화팬들은 대전 야구의 영웅 한대화가 필요했다. 지금 한화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해결사 한대화는 고향으로 돌아와 대전 시민들에게 선물을 안겨 줄 수 있을까? 한대화 감독은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내다보고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강팀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돌아온 대전 토박이 한대화 감독이 과연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역전 홈런처럼 고향 팬들 앞에서 시원한 역전 홈런을 안겨줄 수 있을까? 한화팬들은 충청도 사나이의 해결사 본능이 발휘되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독수리


한화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었다. KBO 통산 최다승 투수 (210승)와 통산 다승 2위 정민철(161승)을 필두로 선발 로테이션이 탄탄했고, 마무리는 한화 레전드 중 한 명인 구대성이 뒷문을 단단히 막고 있었다. 여기에 19살 고졸 신인 류현진이 입단하면서 한화 마운드는 더 견고해졌다. 공격력은 김태균, 이범호, 외국인 용병의 화력을 바탕으로 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상대팀에게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최강 한화는 투타 모두 강한 전력으로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해는 한화의 마지막 황금기로 남게 된다. 그러나 한화에 조금씩 전력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베테랑 3인방 송진우와 정민철 그리고 구대성에게 오랫동안 의존한 마운드는 2006년 이후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괴물’ 류현진을 제외한 20대 젊은 투수들은 베테랑들에 밀려 자리를 못 잡고 기량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류현진은 20대 초반에 이미 리그를 지배하는 뛰어난 에이스로 성장했지만, 과거 빙그레 시절부터 한화로 간판이 바뀌기까지 팀의 역사를 함께 해온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은 노쇠화와 함께 더 이상 1군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둘 은퇴했다. 한화의 황금기 시절은 그렇게 마감됐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에이스 류현진을 중심으로 마운드 리빌딩에 들어간 한화, 투수진은 어떻게 구성이 됐으며, 류현진을 뒷받침해준 투수들은 과연 누구인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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