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가 되지 못한 야왕의 쓸쓸한 퇴장
김태균과 박찬호로도 역부족
2011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한화는 2012 시즌 전 화끈한 전력보강을 하며 가을야구 진출을 목표로 했다. 이글스 프랜차이즈 출신 김태균이 2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화에 전격 복귀했다. 그리고 ‘한국야구 역대 최고 투수’, ‘MLB 동양인 최다승(124승) 투수’ 박찬호가 입단했다. 박찬호는 미국에서 선수 생활 말년을 보내고 있을 당시 “은퇴는 한국에서 하겠다. 자신의 고향팀인 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박찬호는 마지막 선수 생활 1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화에 입단했다.
비록 한화 돌풍의 주역 가르시아와 재계약은 안했지만 김태균의 가세로 타선의 파워와 정교함이 더해졌고 김태균, 최진행의 거포 듀오를 중심으로 장타 폭발을 기대할만한 타선이 되었다. 한편 박찬호의 가세는 선발 마운드에 투수 한 명 이상의 영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박찬호의 영입으로 선발 마운드는 지난해보다 두터워졌고, 한화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 투수들이 박찬호와 함께 생활하며 얻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박찬호의 경기 전 등판 준비와 성실한 자기관리, 미국과 일본 등 해외야구를 경험하며 얻은 노하우가 젊은 투수들의 기량 발전과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야구의 전설 박찬호와 미래 전설을 예약한 ‘괴물’ 류현진이 같은 팀 선발로테이션에 있다는 것 자체가 야구팬들에게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자 꿈과 같았다. 한화는 지난 시즌 마무리투수로 맹활약한 바티스타까지 재계약하며 선수단을 강화했고, 선수들도 가을야구 진출을 목표로 의욕 있게 시즌을 준비했다. 팬들도 슈퍼스타들의 가세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한화는 전국적 인기구단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류현진, 박찬호, 김태균 세 선수가 함께 있다고 야구가 생각대로 잘 되는 건 아니었다. 2012 시즌 개막전, 한화는 에이스 류현진을 내고 패했다. 류현진은 6이닝 3실점(2자책)으로 퀄리티스타트 했지만, 한화타선이 1점 밖에 못 내며 패전투수가 됐다. 한화의 출발은 시작부터 꼬였다. 개막전 이후 3연패에 빠졌다. 그리고 간신히 첫 승을 했다. 팀에 첫 승을 안긴 승리투수는 KBO 데뷔전을 치른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데뷔전에서 6.1이닝 2실점 퀄리티스타트를 하며 본인의 시즌 첫 승이자 KBO 데뷔 첫 승 그리고 팀에 개막 3연패를 끊는 시즌 첫 승리를 안겼다. 그러나 첫 승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3연패 그리고 1승 또다시 4연패에 빠지며, 시즌 전 전망과는 다른 최악의 출발을 했다. 한번 승리하고 연패 그리고 한번 다시 이기면 또 다시 연패가 반복되는 지독한 부진 속에 4월 한 달간 5승 12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5월에도 11승 16패로 부진한 행보가 이어졌다. 공격 쪽에서는 4번 김태균의 뒤를 이어 개막부터 5번 타순에 위치한 최진행의 시즌 초반 부진이 심각했다. 김태균이 없는 지난 2년 동안 팀의 4번 타자로 큰 역할을 해줬던 최진행은 예상치 못한 타격 슬럼프 속에 김태균과 시너지 효과를 전혀 내지 못했다. 타율과 홈런, 타점 등 공격 주요 기록들이 지난 1, 2년에 비해 많이 하락했다. 개막 첫 12경기 타율이 채 1할도 안 되는 극심한 난조에 빠졌다.(12경기 0.088 34타수 3안타) 한화가 4월 달에 연승 한번 못하고 추락한 데에는 최진행의 부진이 가장 컸다. 다른 타자들도 작년에 비해 타격지표들이 전체적으로 하락하며 팀타선은 시즌 내내 응집력을 보이지 못했고 김태균만 홀로 고군분투했다. 지난 시즌 맹활약했던 가르시아의 공백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타격보다 더 심각한 건 투수진이었다. 시즌 전 구상했던 선발투수진과 불펜이 전부 붕괴되며, 시즌 중 몇몇 투수들이 보직을 이동하는 등 혼란에 빠졌다. 특히 마무리 투수 바티스타의 부진은 한화가 시즌 초반 순위 싸움에서 밀려나는데 결정적이었다. 바티스타는 150km 이상의 빠른 공을 던졌지만 제구불안으로 시즌 초부터 블론세이브를 연달아 기록하며 자신감을 잃었다. 시즌 중반까지 슬럼프가 계속되자 한화는 7월 말부터 선발 로테이션에서 안승민을 대신해 바티스타를 선발투수로 보직변경 했다. 선발로 전환하기 전 34경기에 구원으로 나와 불안한 모습(30이닝 1승 3패 4홀드 8세이브 방어율 5.70 43탈삼진 34사사구 피안타율 0.301 WHIP 2.10)을 보였던 바티스타는 선발 전환 이후 10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 5번, 3자책점 이상 점수를 내준 경기는 단 두 번일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최하위권에 처진 한화에게 시즌 중반까지 바티스타의 마무리 실패는 못내 아쉬웠다. 그 외에도 류현진을 제외한 젊은 투수들은 크고 작은 기복들을 보이며 시즌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 선발진에서 가능성을 보인 안승민의 부진이 뼈아팠다. 개막 후 선발투수로 출발한 안승민은 단 4경기만 선발로 나오고 나머지 58경기는 불펜에서 뛰었다. 후반기에는 선발 전환한 바티스타 대신 마무리투수로 뛰며 5홀드와 16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깜짝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바티스타와 안승민이 서로 보직을 맞바꿔 기대 이상의 역할을 했지만 개막전 구상했던 원래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못한 것도 순위 싸움에서 밀려난 이유였다. 이 외에도 지난 2년 동안 한화불펜에서 많은 이닝을 던지며 불펜 에이스 역할을 한 박정진의 부진도 아쉬웠다. 특히 전반기 방어율이 7점대로 너무 높았다.
팀에 시즌 첫 승을 안겨준 박찬호도 상승세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류현진과 원투펀치를 이루며 10승 이상을 기대했지만 많은 나이 탓에 장기레이스에서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과거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시절의 박찬호와는 거리가 먼 성적(23경기 121이닝 5승 10패 방어율 5.06 68탈삼진 52볼넷 11사구 11피홈런)을 냈다.
류현진도 많이 아쉬웠다. 부진해서가 아니다. 정말 ‘괴물’답게 잘 던졌는데 승리를 쌓기가 너무 힘든 시즌이었다. 야구는 투수 혼자 잘한다고 승리가 따라오는 게 아니란 것을 2012시즌의 류현진을 보고 절실히 깨닫게 된다. 데뷔 후 늘 10승 이상은 식은 죽 먹기였던 류현진이 단 9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기록은 정말 특출 났다. 27경기에 나와 182.2이닝(3위)을 던져 완투 1번 포함 9승9패 방어율 2.66(5위) WHIP 1.09(2위) 탈삼진은 무려 210개(1위)를 기록했다. 퀄리티스타트 22번, 퀄리티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 이하) 16번을 기록했다. 심지어 방어율 2.66은 류현진이 우천 속에 등판한 경기에서 기록한 2이닝 8실점 시즌 최악투가 반영된 것이다. 만약 그 부진이 없었으면 류현진의 방어율은 더 내려갔을 것이다. 류현진이 얼마나 시즌 내내 불운했는지는 한화의 최종전에서도 드러났다. 10월 4일 팀의 최종전에 선발등판한 류현진은 넥센을 상대로 무려 연장 10회까지 투구수 129개를 던지며 4피안타(1피홈런) 탈삼진 12개 무사사구 1실점으로 엄청난 괴물투구를 보였지만 팀 타선이 단 1점밖에 내지 못하며 1대1에서 내려왔다. 류현진은 불안한 불펜진과 지독하게 타선이 안 터지는 악재 속에 홀로 한화를 책임졌다. 고독한 에이스였으며 한화 그 자체였다. 여기서 한 가지 비교해보자면 1위 팀 삼성 소속의 장원삼은 그해 17승을 기록하며 다승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방어율은 3.55 157이닝 탈삼진 127개 퀄리티스타트는 14회였다. 1위 팀과 꼴찌 팀의 차이를 장원삼과 류현진을 통해 알 수 있다. 류현진이 만약 1위 팀 삼성에 있었으면 2012시즌 몇 승까지 기록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결국 그해 투수 쪽에서는 류현진이 제일 잘했고, 타선에서는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이 시즌 내내 고타율을 유지했다. 특히 시즌 내내 4할 가까이 치며 한 때 4할 타자 탄생 가능성까지 있을 정도로 김태균은 정교한 타격실력을 뽐냈다.(4월 0.460 5월 0.410)전반기까지 0.398를 기록했고 8월에도 0.403를 기록하며 4할 타율에 도전했지만 9월에 체력이 떨어지며 타율이 하락했다. 하지만 0.363 높은 타율로 시즌을 마치며 타율1위를 차지했다. 안타 수도 151개(3위)에 달했고, 출루율도 0.474로 높았다. 하지만 팀과 팬들이 김태균에게 기대하는 것은 높은 타율과 출루율보다도 4번 타자로서의 역할이었다. 30개 이상의 홈런과 100타점 이상을 기대했지만 두 부문 모두 기대치에 못 미쳤다. 김태균은 16홈런(9위) 80타점(6위)으로 4번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취약한 팀 타선에서 김태균 홀로 상대투수의 집중견제를 받은 까닭도 있었다. 최진행(타율 0.248 17홈런 55타점)의 부진이 김태균에게도 영항을 미쳤다.
4월 13일 8위로 떨어진 한화는 순위를 한계단도 끌어올리지 못하며 일찌감치 최하위를 확정지었다. 지난 시즌의 돌풍은 이어지지 못했고 선수단이 목표했던 가을야구 진출의 꿈은 허무하게 접어야 했다. 그 와중에 시즌 후반 한대화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자진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2년 8월 29일 넥센과의 경기를 앞두고 구단에서는 ‘한대화 감독이 성적부진을 이유로 자진사퇴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경질에 가까웠다. 105경기 동안 39승 2무 64패의 성적을 내고 7위와 5게임차 뒤진 꼴찌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비록 지난 시즌 돌풍을 일으켰고, 시즌 전 김태균과 박찬호라는 두 대형 스타의 가세로 전력이 보강되어 주변에서는 가을야구까지 기대했지만 4월초부터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진을 거듭하였다. 결국 구단에서는 시즌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잔여 28경기를 남기고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해결사가 되지 못한 감독 한대화
한대화 감독은 한화에서 3시즌 동안 147승 6무 218패(0.402)라는 성적을 남겼다. 지난 2010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한대화 감독은 최하위권 전력으로 매해 시즌을 치러왔다. 구단은 미래를 위해 유망주 육성을 전적으로 맡기고 당장의 성적을 강요하진 안았지만, 한대화 감독은 성적 부진 속에 구단의 눈치도 봤을 것이고 심적으로도 많이 쫓겼을 것이다. 그러나 한대화 감독은 하위권 성적 속에서도 팀의 미래를 위해 인내를 발휘하며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고 몇 명의 선수는 주전으로 도약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타 팀에서 빛도 못보고 방출된 이대수와 정원석은 각각 주전 유격수와 주전 2루수로 도약했고, 거포 유망주 최진행 또한 한대화 감독의 기대 속에 4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2010년 32홈런으로 한 단계 성장했다. 비록 기대했던 투수 유망주들은 확실한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지만 한대화 감독은 젊은 투수들에게 꾸준한 선발 기회를 부여하며 팀의 미래의 초석을 다졌다. 또한 부드러운 리더쉽으로 팀의 덕아웃 분위기도 밝게 하는 등 선수와의 소통에도 능했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를 구사하며 ‘예끼’라는 유행어로 팬들에게 웃음도 선사했다. 그러나 계약 마지막 해인 2012 시즌 구단의 대폭적인 전력보강으로 가을야구까지 기대했지만 결국 한대화 감독은 시즌을 다 치루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됐다. 슈퍼스타 한두 명이 가세한다고 해서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기에는 한화는 선수층 전체가 허약했다. 한대화 체제에서의 3년 성적은 8위, 6위, 8위로 마쳤다. 한화는 한용덕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하고 잔여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한화 이글스는 8개 구단 체제에서 치러진 마지막 시즌을 8위로 마감하는 아쉬운 역사를 남겼다.
2012시즌이 끝난 후 한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7년 동안 에이스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 최고 투수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팀을 떠난다.